아이스박스를 150만 원에 사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구매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비싼 제품 라인은 웬만한 냉장고와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아이스박스 브랜드 ‘예티’는 아이스박스계의 에르메스라고 불리는 브랜드입니다.
©️YETI
예티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아이스박스의 평균 가격은 3~5만 원대였습니다. 그리고 가격만큼 디자인, 성능, 내구성도 그다지 특출 날 것 없이 무난한 제품들뿐이었죠. 하지만 예티는 제일 저렴한 제품이 원래 시장에 형성되어 있던 아이스박스 가격대의 10배 수준인 30만 원부터 시작했습니다.
이 가격대는 캠핑 문화가 활성화된 요즘 시대의 소비자에게도 부담되는 가격인데요. 예티가 처음 시장에 등장했던 2006년에는 더욱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가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티는 출시 이후부터 꾸준히 성장하여 연매출 2조 원을 넘기는 쾌거를 달성했는데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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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티는 아웃도어 마니아인 세이더스 형제(로이 세이더스&라이언 세이더스)에 의해 만들어진 브랜드입니다. 그들은 야외 활동을 즐길 때마다 내구성이 좋지 않은 아이스박스 때문에 꽤나 자주 스트레스를 받았는데요. 그런 경험 끝에 자신들이 만족할만한, 아이스박스계의 끝판왕이라 불릴만한 제품을 직접 개발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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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약에 쓰는 폴리우레탄 소재를 활용하여 내구성을 높이고, 박스의 냉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고무로 감싸 무려 10일이나 보냉력이 유지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세이더스 형제는 완벽한 아이스박스가 탄생한 것에 흡족해했지만 문제는 가격이었습니다. 시중의 아이스박스보다 10배 이상 비싼 가격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소비자에게는 예티를 판매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이더스 형제는 타깃을 일반적인 소비자가 아닌 자신들과 유사한 ‘아웃도어 마니아’로 바꿨습니다. 자신들처럼 야외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기존 아이스박스의 형편없는 기능성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예티 아이스박스를 기꺼이 반길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낚시꾼, 사냥꾼 등 하드코어 아웃도어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제품을 나눠주거나 그들의 동선에 맞춰서 제품을 홍보하기 시작하자 점점 아웃도어 마니아들 사이에서 예티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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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해지자 예티는 광고 또한 아웃도어스럽게 제작했습니다. 특히 내구성을 강조하는 광고가 주를 이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광고는 야생 곰의 공격에도 끄떡없는 내구성을 보여준 광고입니다. 곰에게 예티 아이스박스를 던져주고 내구성 테스트를 한 광고였는데요. 이런 임팩트 있는 스토리들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는데 더욱 큰 불씨를 제공했고 결과적으로 예티는 아이스박스계의 명품 브랜드로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아이스박스를 들고 다니면서 야생 곰의 공격을 받을 확률은 매우 희박합니다. 그럼에도 예티가 이런 광고를 진행한 것은 결국 소비자에게 확실한 ‘말할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래의 문장을 비교해 보면 예티의 전략이 왜 성공했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A : 예티 아이스박스는 카약에 사용되는 폴리우레탄 소재를 사용하여 기존의 아이스박스들보다 내구성을 5배 이상 높였습니다.
B : 예티 아이스박스를 야생 곰에게 던져줘 봤습니다. 맙소사 곰의 공격에도 멀쩡하군요!
둘 중 어떤 메시지를 접했을 때 소비자들은 입소문을 퍼뜨릴까요? 이처럼 자신의 브랜드 제품에 소비자에게 소구하고 싶은, 기존 제품들과 차별화되는 명확한 장점(USP)이 있을 때는 단순히 그것이 왜 좋은지에 대한 증거를 나열하는 식의 자화자찬이 아니라 임팩트 있는 ‘말할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광고를 마주하는 소비자들은 제품 기획자도, 제품 투자자도, 제품 창업자도 아닙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에게 매우 유익하거나 혹은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거리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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