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디자인 영역은 그래픽도 중요하지만 [이벤트 목적에 맞는 디자인]이 더 중요하다. 사실상 두 가지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된다. 그래서 고민이다. 퀄리티는 당연히 좋아야 하고, 그렇다고 과해서는 안되며 그 비주얼이 이벤트와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목적도 퀄리티도 모두 갖춘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촉박한 일정 속에서 두 가지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받고 반영할 수 있을까? 내가 주니어 디자이너들에게 피드백을 줄 때 퀄리티와 구조 중 어느 부분을 그들의 영역으로 맡겨야 하는가?
세세한 디테일과 큰 구조, 어느 하나 놓치기 힘든 것
입사한 지 1년도 안 되던 시절, 당시 팀장님은 경력이 1년도 안 되는 삐약거리는 병아리 디자이너들의 모든 작업물을 봐주고 이상한 건 옆에 주니어를 앉혀놓고 본인이 직접 디자인을 잡아주기도 했다. 그때 함께 팀장님 밑에서 일했던 디자이너들은 팀장님의 디자인 스킬과 작업방식들을 보고 따라 하면서 퀄리티 면에서 크게 성장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방식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회사와 주니어 디자이너의 단기간 성장을 위한 최선책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생각해 보면 “스킬업”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생각의 성장”에는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인데, 나중에 주니어 디자이너에게 더 큰 프로젝트를 맡기려면 그만큼의 역량을 발휘할 만큼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실 디테일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게끔 큰 범위와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 그들도 언젠가는 “중니어(주니어와 시니어 사이)”를 거쳐 시니어가 되면 나처럼 큰 방향을 잡는 수많은 중요 프로젝트들을 담당할 테니까.
그렇다 보니 “내가 그들의 디테일까지 봐주는 것은 과도한 처사인가”라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주게 된다면 스스로 생각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어떤 시니어는 본인이 직접 고친 시안을 보여주고 다시 롤백(…)하는 케이스도 있었고, 어떤 시니어는 너무 두루뭉술한 피드백을 넘겨서 실무 디자이너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케이스도 있었다. 어디까지 내 피드백 영역인 걸까? 어느 부분까지 내가 가르쳐 줘야 하는 걸까? 아니면 결국 다 가르쳐 줘야 하는가?
둘 다 중요한데, 완급 조절이 중요하다
이전에 크리에이티브 부문장 H님과 면담을 진행한 적이 있다. B팀장님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팀의 방향과 목표에 대해 고민거리가 많은 상황이어서 우연히 사무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H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팀의 고민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가 될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나의 시니어 디자이너의 방향잡기에 대한 면담이 되어 있었다. 당연히 주니어 디자이너들의 성장, 피드백 등에 대한 얘기도 오갔다. (이때 오갔던 이야기들은 앞으로 다른 글에서도 적잖이 나올 예정이다)
디테일의 퀄리티를 높이느냐, 전체적인 큰 구조를 고쳐나가느냐
나의 고민 중 제일 큰 부분은 [디테일이냐 큰 그림이냐]였다. 나는 주니어 시절 디테일의 중요성을 뼛속 깊이 배운 사람인데, 현재 내가 주니어를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디테일도 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업무는 너무 많고, 일은 빨리 끝내야 하고. 작업물 퀄리티는 높아야 하고. 대체 뭘 중점적으로 봐야 할지 고민이라고 H님에게 얘기했다.
H님은 나 혼자 그 모든 것을 챙길 수 없다고 조언했다. 크리에이티브와 디테일, 그리고 전체적인 구조를 둘 다 한 사람이 완벽하게 볼 수는 없으며, 만약에 본다고 해도 이 중 하나는 다른 시니어에게 맡겨도 괜찮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우리 팀의 다른 시니어 Y님이 주니어 디자이너들의 부족한 스킬이나 툴 사용법 등등을 봐주고 있어서 든든하던 차였다. 나 혼자 일주일에 수십 개씩 들어오는 업무들의 디테일까지는 챙기기 힘들기 때문에 이 업무들의 결과물이 원하는 디자인 방향으로 잘 나오고 있는지 크게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내가 욕심내는 디테일과 구조 모두를 함께 보는 것은 업무량과 일정상 무리이다. 그렇기에 팀 내에 시니어가 2명(팀장님 포함 3명) 있는 것은 참 다행이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볼 수는 없으며 대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봐달라고 한다. 더 의논이 필요하거나 중요도가 높은 부분은 다 같이 보면서 방향을 논의한다. 나 역시 디테일을 파고드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더 넓게 보고 피드백을 주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주니어에게 디테일에 대한 것을 온전히 믿고 맡겨야겠지?
물론 둘 중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H님과 얘기하면서 무릎을 탁 쳤던 부분은 또 있었다. 피드백을 볼 때, 어느 지점을 중요하게 보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회사에 막 들어올 무렵 내 옆에 딱 붙어서 같이 디자인을 진행했던 전 대표님이 있었는데, 대표님은 디테일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었다. H님은 지금도 전 대표님한테 요상한 배너가 달린다는 연락을 자주 받는다. H님이 말하길 “전 대표님은 디테일을 꽤 많이 보는 편이고, 나는 좀 더 큰 그림을 보는 편인 것 같다”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내가 전 대표님과 오랫동안 함께 일하다 보니 디테일에 대한 욕심도 있는 듯 하지만, 대신 나는 좀 더 큰 그림과 미래를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조언해 주셨다.
한마디로 무조건! 큰 그림만 먼저 봐야 해!라는 것이 정답이 아니다. 나와 대표님이 디테일을 마구 파고들 때에는 회사 초창기였기 때문에 좀 더 자유도가 높은 상황이었다. 대표님 역시 전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밀도를 높여서 디자인 퀄리티를 높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지금 회사는 그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커졌고, 수많은 디자인 산출물의 큰 방향을 잡아야 하므로 디테일보다 큰 그림이 더 중요해졌을 뿐이다. 만약 내가 현재 회사를 떠나서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이나 성장중인 작은 회사로 들어간다면 피드백을 보는 지점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세한 퀄리티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
나는 이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한 디자이너고, 그래서 이 회사에서 크리에이티브와 퀄리티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그래서 큰 그림도 중요하지만 디자인 퀄리티도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 나도 모르게 자꾸 라떼 얘기가 나오는 고인물 디자이너가 되어버렸지만… 지금의 주니어 디자이너들이 디테일을 허술하게 보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그래픽 영역을 다루는 디자이너고, 결국 퀄리티 높은 아웃풋을 내는 것이 우리 일이니까. 그래서 팀에서 나온 디자인이 퀄리티가 다소 떨어진다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다. 디테일과 큰 그림 둘 다 놓치고 싶진 않은데. 두 가지 사이에서 완급 조절을 잘 해야겠다! 이런 생각은 하루에도 피드백을 보다가 수십 번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래서 어렵다. 디자인 피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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