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내가 접하고 있는 디자인 관련 책이나 강연(콜로소 컨퍼런스라든지…)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그래픽만 보지 말고 개념(스토리텔링, 디자인의 의미 등등)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처음 디자인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생각을 가지고 일하기 쉽지 않지만,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나서는 이 말을 기억하면서 일을 해야 수월하게 일할 수 있다.
그동안 마케팅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나도 주니어-중니어-시니어의 과도기를 거쳐왔고 시니어가 되면서 수많은 경우의 수를 가진 주니어와 중니어 디자이너들과 일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디자이너들을 경험하면서 공통점으로 보이는 [이건 더 이상 연차가 쌓였을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경험하고 + 여기저기서 얘기가 나오는 [마케팅 디자이너의 실수] 몇 가지를 나열해 보려 한다. 아무래도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의 경험으로 얘기하는 것이지만, 다른 필드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도 비슷한 실수를 하고 있으면 이 글을 읽고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되돌아봤으면 한다.
실수 1) 화려하고 예쁜 이미지 또는 그래픽에“만” 집중한다
개인적으로 마케팅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연차가 쌓이면 떨쳐내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심미성]이다. 즉,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눈에 띄어야 살아남는 마케팅 디자인 분야에서는 정말로 퍼포먼스와 디자인 퀄리티 싸움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고 예쁜 디자인은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이 [아름답고 예쁜 디자인]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름답고 예쁘면서도 + 쓰임(사용성)에 맞고 + 디자인을 이루는 요소가 쓰임을 제대로 하는 디자인이 중요하지 이쁘기만 한 디자인은 의미가 없다.
이벤트 페이지 디자인 수십 개의 컨펌을 진행하면서 간혹 콘셉트에 잡아먹힌 디자인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비주얼에 힘을 줘야 하는 영역에는 힘이 들어가야 하지만, 문제는 그 비주얼이 힘을 빼야 하는 영역에서마저 온갖 그래픽이 난무해서 정작 이벤트 내용이 보이지 않았다. 사용자가 정보를 파악하고 다음 행동을 유도해야 하는 요소까지 디자인이 화려하게 들어간다면 페이지 내에서 강약조절도 되지 않을뿐더러 정작 전달해야 할 정보마저 제대로 전달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래픽의 쓰임이 있어서 들어가면 괜찮지만, 의미 없는 꾸밈은 덜어내야 한다.
모두의 워너비 디자인이 담긴 드리블
과거 주니어 시절의 내가 래퍼런스 참고 차 자주 들어갔던 사이트가 비핸스(https://www.behance.net/)와 드리블(https://dribbble.com/)이었다. 홈페이지에 보였던 현란한 그래픽들, 인터랙션들 모두 실제로 구동되는 앱인 줄 알고 나도 이렇게 아웃풋을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봤던 디자인들 중 대부분은 개인작업이었고, 실제로 그런 인터랙션이나 화면 디자인을 구현해서 배포하기에는 수많은 고민과 기술적인 허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한참 연차가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물론 실제로 라이브 된 디자인들도 있지만) 눈물 나는 현실이지만 사실이었다.
디자인 퀄리티는 당연히 좋아야 하며, 주니어 디자이너들은 일하면서 툴(tool)을 이용해서 이 디자인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에 집중한다. 하지만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다면 이러한 예쁜 디자인에 대한 집착(?)에서 좀 더 한 단계 올라와야 한다. 자신이 쌓아 올린 디자인 퀄리티를 베이스로 삼아서 좀 더 심도 있는 고민을 해서 나의 작업물을 더 멋진 디자인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실수 2) 디자인”만” 하고 마케팅, 개발 지식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디자이너는 혼자 일하지 않는다. 다른 유관부서나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한다. 보통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 디자이너만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케팅 디자인 같은 경우 마케터와 가장 밀접하게 일하고 더 나아가서는 개발자, MD 등 더 많은 사람들과 일한다. 협업을 위해서는 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이해하고 그들이 일하는 분야 역시 이해해야 한다.
나에게 “디자인만 알면 안 되겠다!”라고 처음 깨달은 순간은 개발자와 협업할 때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항상 미숙한 시절이었지만, 개발자에게 이미지를 어떻게 전달하고 디자인 QA에서 어떻게 전달해야 편한지 고민이 많았다. 그 이후에 친해진 프론트엔드 웹 개발자에게 코딩의 기초를 스터디받고(개발자님… 지금은 회사에 없지만 잘 계시죠??) 코딩 지식이 쌓이고 나서 점점 편해지기 시작했다. 디자인 외에 개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협업이 훨씬 수월해진 것이다.
(강제로) 개발 지식을 배우게 한 툴 3대장
그 시기를 거치고 나서 다른 사람들도 디자인에 대해서 배우려고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케터도 기획서를 작성할 때에 어떻게 해야 디자인이 편한지 물어봤고, 개발자는 디자인 툴을 직접 익히고 싶어서(당시 개발자와 디자인 협업 툴은 스케치(sketch)와 제플린(Zeplin)이었다) 나에게 어떻게 하면 잘 익힐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도 디자이너와 일을 잘하기 위해 디자인을 알려고 하는 것이다. 그때의 지식 덕분에 지금 피그마로 디자인 툴을 큰 무리 없이 전환할 수 있었다.
마케팅 디자인이라면 당연하지만 마케팅 관련 지식도 당연히 알아야 한다. 카피를 어떻게 작성해야 좀 더 알아듣기 쉬울지부터 실제 마케팅 지표를 보는 방법까지.(물론 완전히 전문적으로 배운다기보다는 내 디자인이 이렇게 영향을 미치는구나 파악하는 정도만 알아도 좋다) 그래야 내 디자인이 어디에 쓰이는지, 어떻게 라이브 되는지, 어느 목표를 가지고 만들어졌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마케팅에 대해서 디자이너도 잘 안다면, 초기 기획서보다 더 나은 디자인을 내서 더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수 3) 커뮤니케이션에 신경 쓰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커뮤니케이션]은 두 번째 실수에서의 얘기와 연결되기도 하겠지만, 세 번째 실수에서 얘기하는 [커뮤니케이션]은 내 디자인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때의 커뮤니케이션을 말한다. 디자인의 결과물을 디자이너 또는 디자인 종사자만 보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의 디자인을 설명해야 하는 순간은 꼭 오며, 이 관문이 최종 관문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몇 년 전, 부문장 H님에게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시안을 1차로 공유하는 시간이 있었다. 열심히 위키에 정리해서 설명하고 공유했다. H님은 알겠다고 얘기하시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위키에 정리한 시안 분류법을 바꿨으면 좋겠어요.”
위키에 표로 정리한 시안들은 철저히 디자인 작업자 위주로 [어떤 기법으로 작업했느냐] [어떤 룩이냐]의 기준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H님은 이 기준 말고 이 시안이 라이브 되는 구좌에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이 시안을 진행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분류를 원하셨던 것이다. 실제로 시안 피드백만큼 이 [분류법]에 대한 얘기도 길어졌지만, 전부 맞는 말이라서 전혀 반박하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이다음 시안부터 시안 분류 기준을 새롭게 잡고 위키를 작성했다.
우리가 작업한 시안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내 디자인이 잘 맞는다고 쉽게 설명하는 언어도 필요하다. 시안 결정은 디자이너만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정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나의 시안을 선택하게끔 설득하려면 그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며, 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글쓰기와 말하기 실력을 갈고닦아야 한다.
이전 브런치 글에서 디자이너가 왜 글을 써야 하는지(글 링크) 얘기한 적 있었는데,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글쓰기 또는 말하기 스킬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일하면서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지만, 일하고 나서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커뮤니케이션 역시 중요하다.
실수 4) 기획서를 꼼꼼하게 읽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실수 4가지 중에 디자이너들이 잘하지 않는 실수라고 생각한다.(생각하고 싶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마케팅 기획은 마케터(또는 다른 기획자)가 진행한다. 그들만의 업무 영역이 있고 침범하지 않는 것이 기본 원칙이지만, 디자인에 맞지 않는 기획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기획서대로 디자인할까 아니면 마케터에게 역제안을 할까?
보통 기획서에는 이 페이지나 배너에 넣어야 하는 정보를 나열하거나 정보를 보여주기 위한 구조를 러프하게 설계한다. 디자이너는 이 기획서에서 중요한 정보들을 파악하고 어느 정보가 잘 보여야 하고 디자인으로 표현할지 고민한다. 이 정보를 파악하는 단계에서 기획서를 꼼꼼히 읽고 어떻게 디자인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기획자와의 핑퐁도 이루어진다.
그러나 간혹 기획서를 제대로 보지 않고 기획서 그대로 디자인하는 케이스도 있다. 물론 기획자와의 대화에서 “이대로 디자인해달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기획자와 대화도 거치지 않고 바로 기획대로 디자인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잘 만들어진 기획서라면 괜찮을지 몰라도 이걸 그대로 기획서로 옮긴다고 하면 (극단적으로는) 생각 없이 디자인한 작업물로 보일 수도 있다.
기획서를 받고 바로 디자인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한번 기획서를 정독하고, 고칠 점은 없는지 누락된 부분은 없는지, 그리고 기획서와 다른 룩으로 디자인해야 하는 부분은 없는지 파악 후 기획자와 얘기하면서 최종 시안을 만들어가야 한다. 급한 배너작업이라도 내가 너무 기획서대로 작업한 것이 아닌지 한 번씩 돌아봤으면 좋겠다.
숀 디자이너님의 [늘지 않는 디자인] 중
최근에 읽은 [늘지 않는 디자인] 책에서 이런 글귀가 있었다. 지금 당신의 디렉터가 기술을 가르쳐 주는지 개념을 가르쳐 주는지 생각해 보라고. 해당 글이 있던 목차에서는 기술보다 설계 개념을 익혀야 디자이너가 성장한다고 말한다. 기술로만 성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정말 기술로만 성장하려면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지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글에서 쓰고 있는 실수 3가지와 그를 뒷받침하는 글이 잔소리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나 역시 그동안 일하면서 “내가 왜 그랬지ㅠㅠ” 하며 이불을 차던 것들이 다 저 3가지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실수 3가지를 요약해 보면 [그래픽이나 기술적인 것 말고 일로서 디자인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다른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배우라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그래픽을 만드는 기술로 성장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이다음의 것(커뮤니케이션, 마케팅 전략, 사용성 고민 등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제 더 한 계단 오르고 싶은 디자이너라면 디자인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의 것들도 함께 해야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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