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도 스포츠처럼, 드라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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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국뽕이 아니다.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요즘 대한민국이 정말 핫하다. 

코로나 이후로, 구대륙 유럽에 있는 지인들 (대대 손손 구라파에서 살아온 현지인들)도, 북미 남미 유럽 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는 옛 동료들도, 그들의 지인들이 한국 특히 서울에 여행을 가야겠다고 그야말로 난리 났다고 연락들이 줄을 잇는다. 젊은 세대뿐 아니라 부모님들도 서울에 효도 여행 보내달라고 엄청 요청하신다고 한다. 

버지니아에 사는 내 동료의 어머님 (미국 밖으로 한 번도 나가 보시지 않은 분)은 틱톡으로 한국의 “밍크 담요”를 접하시곤, 서울에 출장 온 내 동료에게 “꼭 광장 시장에 가서 오리지널 밍크 담요 – 장미 그림이 프린트된”를 사 오라고 주문하셔서, 한정판 스니커즈와 크롬하츠 옷으로 무장한 힙한 나의 동료는 귀국길에 밍크 담요를 노란 박스 테이프로 칭칭 동여 맨 “비닐” 꾸러미를 들고 갔다. 

미국 어머님 효도템 – 밍크담요 

그런가 하면, 예전에 근무하던 독일계 소비재 회사에서는 신입 직원들 중 똘똘한 직원들을 뽑아 해외로 3-6개월 정도 인턴쉽을 보내 주는 제도가 있다. 2018-2019년쯤부터 한국으로 인턴쉽 지원하는 신입들이 너무 많아져서 1년에 2명 이상 못 오도록 제한을 두었는데, 그 경쟁이 지금은 거의 최고조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7-80년대에 미국에 연수 가는 그런 느낌인 것이다. (어쩌면 구라파의 시골 마을에선 “축! 우리 마을 이장 발도프씨네 아들 한국 인턴쉽 합격!” 이런 플래카드가 붙어 있을지도 모른.. 다는 그냥 제 상상입니다). 

서두가 길었는데, 아무튼 한국은 지금 “여러 모로” 핫하다. 밑도 끝도 없이 보내는 세계인들의 열광은 60~80년대까지 이어진 일본 문화에 대한 서양인들의 동경과는 또 다른 것 같다. 당시엔 매체, 정보 및 여행 등이 지금보다 제한적이었을 테니 일본은 “동양의 신비로운 문화를 간직한, 자동차와 워크맨으로 기술도 앞서가는 생소한 나라” 정도의 이미지였다면, 지금 한국은 모든 것이 그야말로 “놀랍고” “신기하고” “따라 하고 싶고” “나도 소비하고 싶은” “쿨하고 멋진” 나라가 되었다. 물론 소셜 미디어의 발달과 세계 여행의 보편화가 큰 몫을 했다는 것은 뭐 너무 뻔한 얘기이긴 하지만. 

넷플에 한국 시리즈나 영화가 뜨면 일단 무조건 보고 평을 남기고.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들은 릴리즈 되는 첫째-둘째 주엔 거의 글로벌 탑 10의 성적에 오른다.) 

케이팝 뮤지션들이 새로운 뮤비를 발표하자마자 달리는 수천, 수만건의 댓글에선 한글을 찾기 힘들고.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던 트레이더스 조 냉동 김밥 붐은 끝날 줄 모르고. (미국 코스트코에서도 출시했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 숫자는 아시아 미술관 중 1위, 세계 미술관 중 6위이고. 

한국 화장품의 수출 순위는 세계 3-4위를 다투고. (일본은 제친 지 오래되었다 – 1위 프랑스, 2위 미국, 3위를 두고 독일과 매년 경쟁 중) 

무슨 얘길 하려고 이렇게 밑밥을 까는가 하면,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사는 분야가 문화 쪽에 포커스 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어쩌면, 매우 조심스럽지만, 한국의 선거판도 세계인의 (적어도 meme 측면으로는)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분야가 된 것 아닌가 싶다. 

특히 “선거 개표 방송” – 그야말로 우리나라 방송계의 발명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다른 나라의 선거 방송들을 찾아보면 약간 바둑 중계처럼 고요하고, 정적이고, 지루하다. 정지 화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리고 선거란 특히 “결과”가 가장 중요하다 보니 다른 나라의 언론들은 선거 결과를 보도하는 데에 더욱 치중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언젠가부터 방송사들이 선거 개표 방송 라이브에 모든 전력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가상 스튜디오 설치는 물론이고, 개표 방송의 테마, 득표율을 라이브로 전달하는 그래픽, 그리고 적절한 BGM까지. 해가 더해 갈수록 “약 빤 것 같은” 짤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걸 보는 외신들은 “한국인들은 정말 미쳤다”라고 하며 선거 개표 방송 자체에 대한 보도도 줄을 잇는다. (BBC 기사) 

축구 국가 대표 경기 찾아보듯 방송 3사 중 어느 방송국 것이 가장 재미있는지 실시간 코멘트들이 소셜을 장식하고, 그야말로 축구 경기 보듯 치맥을 먹으며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실시간으로 응원하는 한국인의 뜨거운 피. 새벽까지 이어지는 개표 결과를 다 보고 나서야 잠이 드는 이 열정. 그리고 이 열정과 감정 이입을 기어코 눈물 분노 환희 모든 감정이 어우러진 드라마로 만들고야 마는 선거 방송과 개인 크리에이터들 (주옥같은 짤들을 생산하는). 

덕분에 정치인들의 인지도와 친밀도도 높아지고, 한국이 정치는 후진국이라는 이미지도 개선되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올해 선거 방송 중 가장 애틋했던 장면

총선 다음날인 4월 11일 어느 회식 장면이라고 인터넷에 돌고 있는 합성 짤 

그런가 하면, 이번 선거처럼 현재 대한민국에서 젠더 갈등과 함께 가장 큰 갈등 중 하나인 세대 간 갈등이 두드러진 선거가 있었나 싶다. (정치 이야기라 초큼 무섭습니다.. 저만의 생각이며 반박 시 선생님들 말씀이 백 프로 옳습니다. 쫄보 올림) 

다른 사람들 말을 듣지 않는 불통 꼰대 – XX 마이 웨이. 요즘은 이런 게 먹힌다니까 답답해 죽겠네 MZ 세대 – 그리고 목소리 좀 내보려다가 이 둘 사이에 끼어서 눈치만 보는, 예전엔 잘 나갔던 X 세대. 

(저는 이 각각이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위 그림에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해 보셔도 되겠습니다. 그림에 없는 사람도 있네요.. 헐헐) 

이상 오늘의 위험한 짧은 생각 끝. 

SAV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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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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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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