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위해, 왜 질문에 집착하고 있는 걸까”
기자 생활을 하면 취재 대상을 만나서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게 인터뷰입니다. 주어진 자료가 있는 경우는 수월하지만 그것이 없는 상황에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갖고 있는 생각을 말하도록 해야 합니다. 경력이 어느 정도가 되어서는 좀 나았지만, 초기에는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무엇을 물어볼까,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도 계속 머릿속을 떠나질 않습니다. 물론 사전에 질문지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수첩에 적어가서 묻기도 합니다만 말을 듣다 보면 질문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물어야 할 것을 묻지 못한 일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시 전화로 묻기도 했습니다.
기자는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지만, 특히 기자의 일은 사회적 현상의 시작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혀내는 사람입니다. 마케팅 직업군에 있는 사람도 다르지 않습니다. 소비자의 구매 형태를 늘 살펴봐야 합니다. 무엇에 반응하는지, 어떤 것에 지갑을 더 크게 여는지를 말이죠. 그 시작은 질문입니다.
저도 사실 질문을 잘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스스로 문제의 답을 찾아보려고 하고, 상대에게 묻기 전에 먼저 어떤 상황인지를 스스로 인지하려고 합니다.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단해 버리는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의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는 한 명 한 명이 모두 수수께끼라고 말하면서, 그런 수수께끼로 둘러싸여 있을 때는 질문하며 사는 것이 최고라고 말을 합니다.
뭐 그런 사람이야 질문하는 게 일이고 그것으로 밥벌이를 했으니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 된다면 어떨까요? 나의 일이 된다면 말이죠. 사람들은 질문받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우리 스스로가 꺼릴 것이라는 생각을 먼저 하는 게 문제죠. 단, 상대에게 ‘정중하게 묻는다면’이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아이들은 궁금한 게 참 많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때 아이들이 질문을 하면 부모님들은 어떻게 답을 하는지 보세요. “네가 알아서 뭐야, 몰라도 돼”라고 했는지, “아, 그건 말이지, 이런 거야”라고 했는지 말이죠. 질문이 사라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평균적인 아이들은 4만 여개의 질문을 2~5세 사이에 한다고 합니다. 그 수많은 질문을 쏟아낸 아이들은 어디로 간 건가요?
“좋은 질문을 던지는 일은 사람을 취약하게 만든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기에 자기를 보호하려는 세상은 질문이 적은 곳이 된다.”-131쪽, <사람을 안다는 것> 중에서
수업 중에 “다 알겠지, 모르는 사람 물어봐”라고 묻는 선생님의 말에 알지도 못하면서 힘없이 답을 하거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할까 말까 한 적은 없으셨나요?
모른다고 말하는 게 창피한 게 아니라, 모르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게 나를 약하게 만듭니다. 질문은 타인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생략할 이유가 없는 일입니다. 히오다 마사토와 마쓰다 미히로가 쓴 <능력 있는 사람은 질문법이 다르다>에서는 좋은 질문이 가져다주는 효과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좋은 질문이 가져다주는 첫 번째 효과는, 아이디어를 내도록 이끕니다. 두 번째는 참가자로 하여금, 혹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의욕을 불어넣습니다. 세 번째는 문제해결 능력을 길러줍니다. 네 번째는 깨달음을 얻게 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팩트를 구분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누군가를 성장시키고 싶다면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보다는 좋은 질문으로 ‘스스로 깨달을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은 어떤가요? 어떤 질문들이 오고 가고 있는지 들여다봅시다. 내가 하는 질문은 자유로운지,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질문인지. 내가 받는 질문은 또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질문인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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