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스타트업인 이유

97
0

얼마 전에 우연히 창업동아리에 같이 참여했던 팀원들과 식사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아직 회사 생활을 경험하지 않은 친구들이라 이것저것 다양한 질문들을 주고받았는데, 한 친구가 나에게 “일반 기업과 스타트업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리고, 잠시 고민한 뒤에 나는 “비전”이라고 답했다. 스타트업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들은 단순히 “불안정한 기업 형태? 혹은 작은 회사? 이제 막 시작한 회사?” 정도로 스타트업을 정의할 수 있겠지만, 내 스스로 느끼고 경험한 스타트업은 바로 “비전”이라는 가치를 제시할 수 있는 회사라고 생각한다. 

가령, 일반 중소기업과의 가장 큰 차이를 설명하자면 중소기업에서는 지금 당장의 매출이 1순위가 되고, 또 그 매출을 위해 대부분의 업무가 진행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예외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쉬운 예로 중고 거래를 위해 사용하는 “당근”이라는 어플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당근은 기업 가치 3조 원 이상, MAU(=월간 이용자 수) 1,900만 명을 가진 유니콘 기업이지만 정작 메인 서비스인 중고 거래만으로는 매출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매출을 낼 수 있는 일보다는 중고거래를 더 많이 알리고, “당”신 “근”처의 마켓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내 위치 주변에 있는 이웃들과 더욱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하는 것에 앞장섰다. 그렇게 8년, 어플 내에 광고를 도입하면서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사용자들은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버는데 정작 당근은 수익을 못 만들어내는 불명예스러운 사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출처: 중앙일보

주변에서 스타트업에 대한 정의와 비전을 물을 때, 늘상 “당근”을 가장 좋은 예시로 드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스타트업은 지금 당장의 수익을 위해서 목을 매지는 않는다. 물론, 수익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당장의 수익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무언가를 위해 좋은 인재를 영입하고, 또 투자 유치를 하며 더 큰 한 방을 위해 많은 리소스가 할애되는 형태로 운영된다. 

사실, 처음부터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일반 사기업에 재직을 하던 당시, 관성적으로 일하고 각자의 업무 R&R이 명확하며, 잘못된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쉽사리 의견조차 낼 수 없었던 그 분위기에 기가 눌렸던 경험이 참 많았다. 그 시기에 느꼈던 건, 이러한 다소 딱딱한 체계에 나는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이었고 조금 더 자율적이되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업을 갈구하다가 “스타트업”을 알게 되었다.

사실, 세상엔 수없이 많은 스타트업이 존재하지만 면접을 준비하던 당시 그럼에도 업계에서 이름 있는 곳에 입사하고자 수많은 회사에 지원하고 또 떨어지는 경험을 했었다. 그리고, 최근 연달아 스타트업만 두 곳을 경험하다 보니 스타트업의 장점과 단점을 더 크게 피부로 느끼는 요즘이다.

아무래도 좋은 점이라면, 젊고 에너지가 밝은 동료들이 많다는 것. 덕분에 흔히 말하는 꼰대를 만나는 일이 드물고, 회사에서 친목을 다지기도 쉬운 환경이 갖춰져 있다. 그리고, 기존에 없었던 일이라도 제안을 하면 적극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덕분에 내 스스로 회사 내에서 업무를 확장하고 싶다면 그 범위를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는 것도 크나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런 장점과는 달리 단점 역시 존재하는데 바로 너무 신생 스타트업의 경우 완전한 “무(無)”체계를 경험할 수 있고, 제대로 된 사수를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물경력이 되기에 아주 쉽다. 

지금 내가 속해있는 회사의 경우, 스타트업이라고 하지만 업력이 짧지 않고 시리즈 D 투자까지 마친 상태라 여러모로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스타트업이라는 사실과 달리 복지도 어느 정도 잘 갖춰져 있고, 근무 환경도 쾌적하고 좋다. 처음에 면접을 갔을 때, “이 일대에 이렇게 좋은 건물이 있다니..” 하고 눈이 휘둥그레졌을 정도랄까. 하지만, 입사 후 시간이 꽤나 지난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내가 정말 성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명확하게 답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체계가 갖춰지다 보면 아무래도 개개인의 성장보다는 회사의 더 큰 성장이 우선 순위로 바뀌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에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다. 그 탓에 어떨 때는 일을 하면서 현타가 올 때도 있고, 동기부여가 잘되지 않아 스스로 회사 밖에서 다양한 자극을 받으며 이 갈증을 채워가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을 돌이켜 봤을 때 나에게 스타트업이 아닌 다른 선택지가 주어진다고 해도 난 스타트업을 선택했을 것 같다. 지금 당장의 가치보다는 먼 미래의 더 큰 가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많은 이들의 땀과 고뇌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걸 믿기에. 또 그 가치에 함께 편승해 나아가고 싶은 사람 중 한 명이기에 앞으로의 선택도 늘 스타트업이지 않을까? 

지금 회사 이후에 어떤 곳에서 또 어떻게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에너지가 충만한 지금은 조금 더 나의 가치를 유의미하게 쓸 수 있는 곳에서 회사 생활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지금 쌓인 이 작은 경험들이 모여 한 명의 좋은 사수로서 또 팀장님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그 날을 꿈꿔본다. 

👇 현지인의 더 많은 콘텐츠는?

 ✅ 브런치https://brunch.co.kr/@appo

 ✅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hyunji.inn/

현지인
글쓴이

현지인

직장인을 위한 서울 현지인 가이드. 신입부터 경력직까지 소소하지만 유익한 회사 이야기를 씁니다.

답글 남기기

다운로드

현지인

다른 아티클 보기

팀원이 갑자기 잠수를 탔다

1년 동안 부업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

일할 맛 나는 회사 베스트 복지 제도 3

아직 구독 전이신가요?
구독하고 더 많은 콘텐츠를 확인해보세요.

이름/회사명

마케터에게 제안하기

마케팅, 강연, 출판, 프로젝트 제안을 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