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중니어) 시절의 나에게 하는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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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갈래?”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얘기하다가 가끔 나오는 질문이다. 요즘 웹툰, 웹소설 등의 콘텐츠의 흔한 소재이기도 한 타임슬립. 만약 돌아간다면 언제로 돌아갈까? 이런 상상을 한다면 완전 현실적인 사실에 빙의해 버리는 나는 아마 [과거를 바꾸면 미래도 바뀔 것]이라는 위험적인 요소를 들어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회사생활을 하다가도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만약에 이제 막 회사에 들어갔을 때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돌아갈래? 그리고 어떻게 할래? 예전에 신규입사자들의 과제 중에 파트장 이상의 디자이너들을 인터뷰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아주 잠깐 파트장이었던 시절에 나 역시 인터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당시 신규 디자이너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요런 뉘앙스였다)

“만약 주니어 시절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그 당시 현생에 치여서 질문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나는 “그렇게 일하면 나중에 미움받는다(…)”라고 해버렸다. 역시 끝까지 냉소적이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나. 그때는 대충 얼버무렸지만, 나의 커리어에 걸맞은 역할을 고민하는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답해줄까. 오늘은 이에 대한 답변을 좀 더 길게 해보려고 한다.

(귓등으로도 잔소리를 안 듣는 그 시절의 나에게 하는 조언)(귓등으로도 잔소리를 안 듣는 그 시절의 나에게 하는 조언)

참고로 완전 병아리였던 신입 시절이 아닌, 이제 한 5년 차가 된 중니어 나자신에게 하는 잔소리임을 알린다.


그 시기에는 실패해도 괜찮아.

무조건 피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해봤으면 좋겠어.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면 나는 [완벽주의 성향]에 가까웠다. 뭐든지 다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고, 명확한 답을 찾고 싶어 했다. 그래서 더 실수를 두려워했다. 내가 실패할 것 같은, 내가 잘 못할 것 같은 일은 피하려고 했다. 시작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이 시절의 나에게 제일 하고 싶은 말은 “실패해도 괜찮아”다. 그때 나에게 직접 이런 말을 해 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듣지 못한 것 같다) 주니어-중니어 때의 실패는 오히려 환영이다. 이때 많이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져봐야 시니어가 될 때 이 경험을 기반으로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다. 물론 시니어가 되어서도 실패할 수 있지만, 경력이 오래된 시니어 디자이너가 주니어-중니어만 큼 자주 실수한다면 그 누구도 좋게 보지 않을 것이다.

내가 5년차 정도 되었을 때에 회사에서 브랜드 및 그래픽 스타일을 바꾸려고 대대적인 과도기를 거칠 시점이었다. 오랫동안 2D 일러스트(라인드로잉)를 기반으로 작업했었는데, 기존 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해서 많이 헤맸고 소위 말해서 매일같이 [까였다]. 나는 칭찬에 크게 반응하는 사람인데 매일 내가 진행한 결과물이 짓밟히니 당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때 위축된 나에게 내가 얘기해주고 싶다. 물론 피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고. 솔직히 누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먼저 부딪혀 보겠냐고. 두려운 것도 당연하지만,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니고 배우는 점이 많다고.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배울 점은 많을 테니까 일단 해보는 것도 괜찮다고. 실패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많이 해보고 그 과정에서 많이 배우라고 하고 싶다.


리더(매니저) 역할의 기회가 온다면

한 번쯤은 해보는 것도 괜찮아.

(5년차부터는 점점 후배 디자이너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5년차부터는 점점 후배 디자이너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5년차였나 6년차였나. 이 시기부터 나는 리더가 부재중일 때 그들의 대타를 맡기 시작했다. 업무 배분, 업무 검수 등등. 워낙 회사를 오래 다니기도 하고 회사 업무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시킨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때 리더, 즉 부서의 매니저라는 직책이 너무 무거웠고 무서웠다. 위의 내용과 연결되기도 하겠지만 리더 역할을 잘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친한 디자이너에게 함께 리더 역할을 나눌 것을 부탁하거나 다른 시니어분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중니어 시절에 리더 역할이 온다면 솔직히 누구나 헤맬 것이다. 그때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보다 실무 디자이너와 매니저의 역할은 꽤 다르기 때문이다. 항상 실무에만 집중했었는데, 팀을 매니징해야 하는 순간부터는 팀원들을 내 실무보다 더 챙겨야 한다. 그리고 업무를 다루는 것과 사람을 다루는 것의 난이도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실무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리더를 맡는다면 당연히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내가 10년차가 되었을 때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고민하면 좋다. 회사 리더분들은 고경력자가 가질 수 있는 역할을 스페셜리스트, 매니저, 디렉터로 분류했다. 보통 다른 회사에서는 리더에게 이 3가지의 역량을 모두 요구하지만, 대체로 매니저+디렉터의 역할을 하는 것을 원한다. 스페셜리스트는 정말 [장인] 수준으로 기술력이 천상계급으로 도달한 사람으로, 대체로 중니어 기간에 이런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말 기술이 좋거나 이런 쪽으로 관심 있는 사람이 스페셜리스트의 길을 걷는다. 다만 단순히 [리더를 하기 싫어서]라는 마인드로는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오랫동안 일하다 보니 이런 스페셜리스트 디자이너에게도 결국 리더 직책을 맡기는 순간이 온다. 조직에 고연차가 없을 때, 주니어를 이끌어야 하는 누군가가 필요할 때에는 결국 고연차 디자이너를 리더 자리에 앉힌다. 스페셜리스트가 된다 해도 디렉팅이나 매니징을 모두 할 줄 알아야 하며 그 역할을 해야 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그렇기 때문에 중니어 시절부터 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 케어 등에 좀 더 관심을 보였으면 좋겠다. 나는 성격상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남들을 이끄는 성격이 못 된다. 그런 내가 여러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내가 이끄는 주니어들의 케어를 고민하고 있다.(지금도 내가 주니어들에게 로봇처럼 대하고 있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나는 이때의 내가 [나 혼자 일을 잘하는 방법] 보다는, [다 함께 일을 잘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으면 좋겠다. 만약 내 소심한 성격(파워 I)이 걸린다면? [I형 인간의 팀장생활]이 나한테 큰 위로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이 책을 읽어보면 좀 더 자신감이 붙을지도.


기회는 이 회사 밖에서도

언제든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

마지막 잔소리… 이 회사만 바라보고 살지 않길 바란다. 물론 지금 10년 넘게 한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 할 소리냐! 며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겠지만, 아무리 한 회사에서 장기근속한다 해도 이 회사에 몸 바쳐 일하겠다! 는 마음을 버리라 하고 싶다.

위의 2가지에서 나는 중니어 시절의 나에게 [안주하지 말라]는 기조로 잔소리 2가지를 열거해 놨는데, 이 [안주]의 근원은 한 회사에 너무 오래 다닌 것도 원인이다. 내가 다른 글(장기근속에 관한 고찰(1) 보러가기)에서도 여러 번 얘기했지만 안주하려는 태도는 프로이직러나 장기근속자나 피해야 할 태도이다. 하지만 이직을 자주 하는 사람보다는 장기근속자가 안주하려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중니어 시절의 나…) 물론 평판이 좋은 회사에서 오래 일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좋은 회사에서 스스로 흐르지 않고 고여있는 사람이 된다면 나중에 회사에 문제가 생겨서 타의적으로 회사를 나와야 할 시점에서 제일 크게 좌절할 것이다.

(회사에서의 나와 회사 밖에서의 나는 분명히 다르다)(회사에서의 나와 회사 밖에서의 나는 분명히 다르다)

물론 이직이 정답은 아니며, 회사에 다니면서도 밖의 세상을 경험하는 방법은 많다. 나도 사실 그 일환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있다. 다른 회사의 디자인, IT업계 아티클도 읽기 시작했고 뉴스레터도 여러 개 구독하고 있다. 회사 밖에서 어떤 일들이 돌아가고 있는지 알면, 이 정보들이 의외로 내가 하는 일에 유용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내가 우아한형제들에서 오래 다니면서 느끼는 점들, 경험한 것들을 나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브런치 글을 홍보하기 위해서 다시 시작한 링크드인도 나에게는 좋은 기회의 장이 되고 있다.

나는 이때의 내가 너무 배달이 캐릭터, 배민 앱의 틀에 갇혀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업무 시간에는 우아한형제들의 일에 집중해야겠지만, 6시가 지나면 회사 생각은 책 덮듯이 덮어놓았으면 좋겠다. 리프레시 겸 디자인 외의 일을 더 많이 해보는 것도 환영하지만, 만약에 내 커리어에 대한 것을 생각한다면 ”디자이너 권효진“에 더 집중했으면 한다.


이렇게 잔소리 3가지를 써보니까 5년차의 내가 어떤 것이 부족했는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제일 지켰으면 하는 것은 2번째 잔소리다. 지금도 사실 리더의 역할이 무섭고 어떻게든 안 하고 싶다. 근데 진짜로, 사회생활을 해보니까 내가 하고 싶지 않다고 회사에서 리더를 안 시켜 주진 않는다. 공식 직책이 아니더라도 결국 사람이 이끄는 일을 시킨다. 내가 좀 더 빨리 리더 직책에 대한 고민을 했다면 지금 진짜로 팀장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위의 커리어적인 잔소리 말고도 본가에서 좀 더 빨리 독립해서 자립심을 더 키우라든지, 그때 잠시 만났던 썸남(!)을 놓치지 말라든지…. 의 자잘한 잔소리도 있지만, 이 잔소리들을 내가 듣고 지켰다면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위의 잔소리를 내가 지켰다면 지금은 좀 더 나은 고연차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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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터와 제일 가까이서, 제일 오래 함께 일한 디자이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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