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으로 인한 국가 소멸을 막는 4가지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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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은 이미 국가의 입장에서 불치병이 되었습니다.

2023년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 유례가 없는 수준이지만, 사실 엄밀히 따지면 0.72명이든 2000년 기준 1.48명이든 2010년 기준 1.23명이든 큰 틀로 보면 다를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구 대체 수준인 2.1명이 되지 않는 한, 구체적인 시기의 문제이지 언젠가 국가가 소멸한다는 결과는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이대로 대한민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일까?’, ‘과연 국가는 순순히 멸망을 받아드릴까?’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고자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덕적 관점이나 현실성을 떠나,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고찰해보았습니다. 처음 2개는 나름 합리적인 방향성으로 보일 수 있으나, 나머지 2개는 말도 안되는 경우로 보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가치관을 떠나서 최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해보고자 하는 의도임을 참고 부탁드립니다. 

첫째. 출산 공화국으로의 전환입니다.

국가의 모든 시스템을 오로지 ‘출생률 2.1명’을 목표로 바꿉니다. 물론 말이 안됩니다. 국방, 과학기술 투자, 복지 등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출생률 증진 말고도 많고,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국가의 선택 기준을 오로지 ‘출생률’을 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죠.

그 선택의 무게에 대해 가볍게 상상해보면 출산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결혼을 늦게 하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늦게 하는 이유는 사회 진출이 늦기 때문이죠. 그러면 방법이 있습니다. 대학교를 갈 수 있는 인원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의 길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대학교를 망하게 하자는 거고, 기업에게 교육의 기능을 온전히 넘기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방법입니다. 국가가 전쟁 중이어야 시도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어 보이죠. 하지만 비현실적으로 보인다고 실행하지 않으면, 국가 소멸이란 결과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상황이 극단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상식적인 해결책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비상식적인 상황에서는 비상식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우리나라가 출산 공화국으로 전환한다는 의미는 이런 의미입니다.


둘째. 이민 공화국으로의 전환입니다.

인구를 자원으로 볼 때, 자체적으로 인구를 ‘생산’할 수 없는 국가는 외부에서 ‘수입’하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이민 공화국으로 바꾼다는 것은 국가의 모든 시스템을 ‘이민’에 맞추고, 장기적으로 한국이 미국과 같은 다민족국가로 변한다는 의미입니다. 

단일민족 의식이 강한 현 상황을 볼 때 어려워 보이나, 사실 유럽에서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19세기 전세계를 나눠서 지배했고, 누구보다 백인 우월주의가 강했던 그 유럽에서 말이죠.

유럽으로 향하는 수많은 난민들을 유럽이 단지 ‘도덕적인 이유’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된 저출생 문제로 인한 노동력 감소 문제를 아프리카, 중동에서 오는 난민들을 통해 해결하고 있는 것이죠.

당연히 그로 인한 갈등이 생겨나서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으나 이미 이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대처의 문제가 된지 오래입니다. 이민을 전면적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적절히 조절하고자 하는 것이죠. 

만약 저출생 문제가 이민으로 해결된다면 정말로 좋게 해결된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급격한 변화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죠. 다양한 인종,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미래는 매우 긍정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 해결하지 못했다면..?

만약 내부적 갈등이나 반발로 출산 공화국이나 이민 공화국으로 전환이 실패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 경우 고려되는 선택지는 굉장히 전체주의적이고 비도덕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오지 않길 바라는 미래입니다. 디스포비아인 것이죠. 하지만 인류 역사를 봤을 때 올 수도 있는 미래이기에, 생각 안 할 수는 없는 가능성입니다.

셋째. 출산의 의무화입니다.

자연스러운 방법이 불가능하면 비자율적인 방법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일정 연령 혹은 일정 조건을 만족했다면 무조건 아이를 낳게 하는 것이죠. 마치 납세의 의무처럼 말입니다. 

출산을 강제하다니? 정말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보이나 사실 그동안 인류 역사를 볼 때, 지금의 관점에서 말도 안되는 일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온갖 대량학살이 벌어진 것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지금과 같은 평화시기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대대적인 혼란시기가 찾아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질서를 유지하고자 국가의 힘이 강해지고 상대적으로 개인의 힘이 약화된다면, 얼마든지 개인의 선택을 강제할 수 있는 결정이 가능한 것이죠.

출산의 의무화 정도는 아니더라도 사실상 같은 효과를 유발하는 다른 방법도 가능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인이 되면, 무조건 의무적으로 결혼을 하게 만드는 것이죠. 출산을 강제하는 경우를 생각하는 마당에, 결혼 강제의 선택지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출생률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기 때문입니다. 성적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는 상대적으로 줄어드는데, 나이는 많은 만큼 아이를 많이 낳기 힘듭니다. 2명, 3명을 낳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은 문제를 조기 결혼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해결하는 것이죠. 


넷째. 대리모를 합법화하거나 인공자궁의 사용입니다. 

자국민에게 출산의 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웬만큼 사회가 혼란스럽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출산을 굳이 선택을 강제하는 방법으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불법의 영역이었던 대리모를 합법화하거나, 인공자궁을 통해 아이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선택한다면 말이죠. 인공자궁은 현재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볼 때, 향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선택지입니다.

저출산 한국 위한 거라고? 현실로 다가온 ‘출산기계’ 인공자궁 | 중앙일보

대리모를 통한 방법은 도덕적인 평가를 떠나서 출산의 비용은 극단적으로 최소화 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리모를 고용하는데 드는 비용만 지불할 수 있으면, 부모는 육아만 생각하면 되기 때문에 아이를 낳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죠. 

만약 과학이 발전하여 인공자궁을 통한 출산이 가능한 경우도 대리모를 통한 방법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만약 국가가 원하는 만큼 충분한 출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인위적으로 아이를 만들 가능성도 생긴다는 점이죠. 

대리모를 통한 출산 방법은 부모가 존재하기 때문에 육아를 따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인공 배아를 활용한 인공 출산은 부모가 없기 때문에, 육아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를 위한 산업이 성장할 것이고, 고령화된 기존 인구가 투입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말 역설적이지만, 일자리 관점에서는 윈윈인 것이죠.


<마무리 하며>

과연 출생률을 유의미하게 반등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개인적으로 회의적입니다. 선진국이 겪는 전세계적인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 2명을 넘는 나라가 종교적 색채가 짙은 이스라엘 뿐입니다.

전 세계 합계출산율 반세기 만에 반토막…선진국일수록 심해

동시에 국가가 순순히 소멸을 받아들일까요? 그것도 회의적입니다. 현재는 체감이 안되고, 절박하지 않아서 극단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지만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낀다면 어떤 행동도 가능한 존재가 바로 국가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쓸까요? 개인적인 바람은 첫번째와 두번째가 조합되어 해결되는 것입니다. 만약 안된다면 네번째 방법까지 고려하고, 제발 세번째 방법까지는 가지 않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충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세계는 갈수록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지구온난화로 인한 불확실성은 증대하며 앞으로 인류가 살아갈 미래는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평화가 사라질수록, 국가의 선택은 극단적으로 변하게 되는데 말이죠.


그럼에도 인류가 인류애를 잊지 않고, 슬기롭게 답을 찾아나가면 좋겠습니다. 우리 인류가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내면의 이기심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는 이타심도 있기 때문이니까요.

사회에 질서가 유지되는 것은 남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법적인 공인을 받고 있는 죄인들 때문이 아니다. 이러한 타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에게 연민과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출처 : 부활 –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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