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출판사에서 만든 <듣는 법, 말하는 법>이라는 책을 접했다. 1983년에 출간, 2020년에 국내 번역 됐다. 미국의 철학자 모티머 애들러가 썼다. 그는 시카고대학 법철학 교수를 역임했다. 이 책의 주제는 대화다. 진지한 대화와 사교적 대화를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나는 이 책에서 어김없이 질문에 관한 소재에 집착한다. 대화를 부드럽게 이끄는 방법, 알고 싶은 답을 제대로 얻는 법이 들어 있다. 좋은 대화를 통해 관계를 확장시킬 수 있다.
많은 내용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두 가지 문장을 인용하고,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것 중에 하나가 공개된 자리에서 청중이 화자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일상적인 대화에서 일어나는 질문이다.
“강연의 목적이 설득하는 것일 때, 청자는 질문할 기회를 사용해서 주제와 관련 있는 사항 가운데 화자가 일부러 다루지 않았거나 설득에 대한 저항이 생길까 봐 생략한 사안을 묻는 것이 좋다. 나아가 청자는 화자가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하라고 권한 이유를 자신이 정확하게 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화자가 제시한 이유가 불충분해 보이면 반론을 제기하고 화자가 그 반론에 어떻게 답하는지 지켜본다.”-197쪽, <듣는 법, 말하는 법> 중에서
또 다른 문장은 가까이 있는 페이지에 들어 있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면, 답하려고 애쓰지 말자. 그 대신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 질문을 설명해 달라고, 여러분이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 말해 달라고 부탁하자.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대답을 시도하기 전에 먼저 질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자.”-225쪽, <듣는 법, 말하는 법> 중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이나 강의를 듣는 사람은 자기 말만 하려고 한다. 좋은 강의를 강의보다는 사실 청중과 주고는 즉석 대화에 있다고 본다. 궁금해하는 것들, 말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더 파고드는 것이다. 수준을 낮게 보고 강의하지 말라고 한다. 더 높은 내용을 알고자 한다면 질문을 던져서, 화자가 어떤 말을 하는지 지켜보라고 한다. 그게 진짜 강의다.
나태한 질문도 좋지 않다. 심문하는 듯한 질문도 그렇다. 질문을 무시하는 것은 더 나쁜 일이다. 답을 주는 게 급한 게 아니라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원하는 답을 주는 게 더 좋다. 강의장에서 화자가 청중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일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모티머 애들러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 질문도 고도의 기술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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