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시장에서 소비자의 주도권이 강해지면서 예전보다 더 인간적(즉 비합리적)이 됐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따라서 브랜드도 마찬가지로 인간적이 돼야 한다고 했죠. 이와 함께 주목받는 단어가 ‘진정성’입니다.
혹시 마라탕후루 들어 보셨나요? 유행에 민감하신 분이라면 이미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에 챌린지를 올리셨을 수도 있겠죠. 떠오르는 챌린지 유행과 달리 탕후루는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진정성을 열심히 하는 것 정도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최근에 성공한 브랜드들이 그 이유로 진정성을 들고 있는데 도대체 진정성이란 게 뭔지 정확하게 감을 잡기 어렵습니다.
저는 종종 마케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야구에 비유하고는 하는데요. 진정성이란 무엇인지 야구를 통해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하면 울리는…
요즘 최강야구가 인기가 많습니다. 예능이지만 스포츠가 가진 긴박감도 있고, 나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나 감독을 통한 감동도 있죠. 저 역시 야구를 좋아하기에 매주 월요일 챙겨보는 프로그램인데요. 지난주에는 무심코 다음 회 예고를 보다가 울컥하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직접 한번 보시죠.
7월 22일 방송된 최강야구 예고편 (Ⓒ최강야구)
예고편이 시작하고 30초가 지나도록 파도 소리와 나지막한 노래가 들릴 뿐입니다. 상단의 자막(최강야구)과 썸네일이 없다면 이게 뭔가 싶을 수도 있죠.
조금 지나면 불이 켜진 야구장과 이대호를 연호하는 관중들, 딱~하는 타격음이 들리고 공이 멀리 날아갑니다. 폭죽이 터지고 눈물을 흘리는 분도 보이죠. (영상 댓글을 보니 예고편 보고 울었다는 분들도 있네요)
‘그깟 공놀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광경이 무려 4분 가까이 이어집니다. 저는 야구도 좋아하지만, 마케팅을 하는 사람인지라.. 이 예고를 보고 진정성이라는 것에 이만한 사례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어디가 감동적이고, 어느 포인트에서 눈물이 나는 건지.. 다음 예고라면서 정보(어느 팀과의 경기이고 어디에서 하는 건지)는 마지막에 딱 한 줄 제공할 뿐이죠. 야알못에게는 도통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롯데나 이대호를 팬이라면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 기의(記意)를 충분히 이해할 것 같네요.
이번 편은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립니다. 이대호는 롯데의 영구결번 선수로 은퇴 후 이번에 처음 사직 구장에 방문했다고 하죠. 잘 알려진 것처럼 최강야구의 장시원 PD는 원래 골수 롯데 팬입니다. 스스로 야구를 좋아하고, 또 롯데와 이대호의 팬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정서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야구팬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거죠.
판교 사투리를 아시나요?
갑 : 데일리스크럼 가시죠~
을 : 개발 방향은 어느 정도 얼라인 됐구요 아직 개발팀 리소스 파악 중이라 지라에는 업데이트 못했는데, 슬랙으로 어제 말씀드렸던 것처럼 듀데잇 까지는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갑 : 너무 늦지 않아요? 씨레벨에 보여줄 게 있어야지.. 좀 린하게 해서 일정 당길 순 없어요? 아니 지난달 회고미팅에서도 애자일 하게 일하겠다는 레슨런 공유해 주셨잖아요?
나무위키에서 재인용 (원본 링크)
판교 사람들이 아니라도 어떤 세계의 사람들은 외부인들이 모르는 그들만의 코드를 갖고 있습니다. 마치 파티에서 내 이름이 들리면 아무리 시끄러워도 집중해서 듣게 되는 것처럼, 그 코드는 그들의 관심을 일으키고 쉽게 울림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프릳츠’의 사례를 이야기했는데요. 흔히 브랜딩의 방정식이라고 여겨지는 그런 방법을 따르지 않더라도 우리 브랜드의 확고한 방향성이 있고 그것 공감하는 소비자들이 있다면 충분히 그 진정성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성은 모든 대중을 대상으로 하지 않습니다. 김창수 위스키가 소수의 열광을 이끌어 낸 것처럼 나와 함께 갈 백 명, 또는 천 명의 ‘동호인’을 끌어내는 과정이죠.
위의 예고편은 또 다른 버전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다음 편의 내용들을 요약해서 보여주죠. 하지만 PD는 ‘상품 소개’가 아닌 ‘이야기’를 택한 겁니다. 야구를, 롯데를, 또는 스포츠의 감동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이야기일 뿐이죠. 자막도 없고, 가장 핵심 되는 정보인 롯데와 경기라는 점도 마지막 등장합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 거죠.
진정성이란 그냥 난 나의 길을 간다거나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그 세계 사람들의 내밀한 코드를 알고 있고, 그들에게 나의 열정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인사이더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그런 것들을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지난 글에서 마케팅이 더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진짜로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오히려 더 쉬워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그리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에 살짝 얹혀 가면 되는 거니까요.
P.S. 1회부터 최강야구를 봐왔지만, 이번 예고편을 보고 장시원 PD가 부럽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네요.
최프로의 더 많은 생각이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