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가면 언제나 호스텔에 간다. 다양한 여행자들로부터 도쿄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수능을 끝낸 고등학생들을 만났다. 한 학생이 물었다. “슈프림과 스투시 같은 스트리트 브랜드는 역시 시부야에서 찾아봐야겠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슈프림 매장은 시부야에 있고, 시부야와 가까운 다이칸야마에도 있어. 스투시도 시부야에 자리해 있으니 꼭 가보는 게 좋을 거야. 시부야파르코를 한번 가봐. 며칠 전에 시부야파르코에 다녀왔는데 좋더라고. 근처에 베이프도 있어. PSG매장도 있던데? 볼 거 진짜 많더라고. 아마 아침 일찍 가면 더 다양한 제품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젊은이들의 스타일을 말해주는 건 언제나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다.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라면? 역시 슈프림이다. 특히, 일본은 슈프림과 빠질 수 없는 나라다. 일단 슈프림 매장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이 일본이기 때문이다. 일본에 슈프림매장이 유독 많은 이유도 재밌다. 일본 슈프림매장은 슈프림이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게 아니다. 뉴욕에 여행 간 일본인들이 슈프림을 접하면서 일본에 슈프림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곧 일본에는 슈프림 마니아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슈프림에 매장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생긴 게 일본의 슈프림 매장들이다.
그 외에도 도쿄에는 베이프, 네이버후드와 같은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일본스트리트 브랜드들도 있다. 영국의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인 팔라스도 시부야에 자리하고 있다. 스투시도 도쿄에 여러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걸로 스트리트 웨어 중에서도 빈티지 의류를 찾는다면? 시모키타자와와 고엔지도 좋은 선택지다.
도쿄 서부의 교통요지, 젊음의거리, 비트밸리, 서브컬처중심지. 시부야를 수식하는 단어는 한두개가 아니다. 새로운 걸 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시부야가 한결같이 사랑받는 이유는 시부야는 언제나 새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도쿄의 옛 이름인 에도. 그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참근교대제를 실시해 일본 전역의 번을 다스리던 다이묘들이 정기적으로 에도에 머물게 했다. 다이묘들은 에도에 머물 지역이 필요했고, 그들이 선택한 지역은 시부야였다. 자연스럽게 시부야는 교통요지가 되었고, 다양한 문화가 오고 가면서 늘 새로운 문물들이 가득했다. 이러한 흐름이 현대까지 이어오면서 자연스럽게 현대와 전통이 뒤섞인 독특한 분위기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시부야는 변화와 도전을 거듭하며 성장하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교통 요지였던 시부야는 지금도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특히 도큐 토요코 선 지하화와 긴자 선 시부야역의 리뉴얼은 교통 체계를 크게 변화시켰다. 시부야히카리에, 시부야스트림, 시부야스크램블스퀘어, 마크시티. 시부야사쿠라스테이지 같은 빌딩들은 지하화 된 지하철역을 교통허브로 연결시키면서 시부야의 수많은 사람들을 지상과 지하로 나누어서 혼란함을 최소화시켰다.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메신저인 라인과 구글 같은 대형 IT 기업은 시부야히카리에와 시부야스트림에 각각 입주했다. 특히 외국기업들이 대거 입주하던 지역으로 명성이 자자한 롯폰기지역에 일본 본사를 두던 구글이 시부야스트림으로 이동하면서 시부야의 위상은 더욱 올라갔다. 반대로 구글을 잃은 모리빌딩은 도라노몬힐즈와 아자부다이힐즈에서 각각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및 관련 회사들을 입주시켰다.
주차장이 딸린 낡은 공원이었던 미야시타파크는 옥상정원, 쇼핑몰, 호텔을 가진 복합시설로 바뀌었다. 도쿄에서 가장 핫한 전망대인 시부야스카이도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에 생겼다. 이러한 변화는 시부야를 “놀이의 거리”와 “일하는 거리”가 공존하는 독특한 지역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시부야에게 새로운 정체성과 다양한 가치와 문화의 융합을 촉진시켰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시부야는 많은 사람들을 흡수하면서 이전보다 더 활기찬 지역으로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시부야의 색깔은 어디에 숨어있을까? 시부야의 토대를 만든 곳은 어디일까? 바로 1973년부터 시부야를 이끌어온 시부야 파르코다. 1973년 문을 연 시부야파르코는 단순한 상업 시설을 넘어선, 문화 창조와 다양한 콘텐츠 사업으로 시부야의 정체성을 만들어왔다. 2019년에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 파르코는 “노에이지”, “젠더리스”, “코즈모폴리턴”의 콘셉트로 다양성을 강조하며 성별과 세대를 넘어선 ‘문화’를 전하는 공간으로 더 나아가려고 한다.
2023년을 기점으로 50주년을 맞이한 파르코는 여전히 시부야에서 다양한 문화를 촉진하며 시부야안에서 국내외 Z세대들이 모이는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5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시부야에서 파르코가 영향력을 잃지 않는 이유는 그들은 언제나 시대와 관계없이 변하지 않는 ‘문화의 경험’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예술’을 ‘라이프스타일’을 전하는 수단으로 만든 파르코.
2023년 11월 17일, 시부야 파르코는 자사의 50주년을 기념하는 ‘1969-2019 Parco 광고전’을 ‘파르코 뮤지엄 도쿄’에서 개최했다. 지난 50년 동안 선보인 광고 포스터를 통해 자신들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자리였다. 사실상 시부야 파르코의 브랜딩회고전이었다. 이 전시회의 메시지는 간결했다. ‘파르코는 자신들의 공간을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장소로만 보지 않았다. 우리는 시부야에서 문화를 전하는 미디어였다’
파르코 탄생의 아버지이자, 종합 디렉터 마스다 쓰지는 ‘파르코는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전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이는 당시 일반적인 상업 시설의 개념과는 크게 달랐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상업 시설을 탈일상적인 공간으로만 여겼다. 그 안의 매력적인 상품과 경험들만이 일상에서 벗어난 감각을 자극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마스다는 이러한 생각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는 파르코 자체가 탈일상적인 장소이자 ‘경험’을 전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지기를 바랐다.
예를 들어, 파르코는 단순히 옷을 파는 것이 아니라, 패션 문화를 체험하고 공유하는 장소로 만들고자 했다. 상품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험이 아닌, 공간 그 자체가 ‘경험’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험’은 파르코가 지향하는 방향이자 전략이었다. 이를 위해 파르코는 단순한 쇼핑몰이 아닌, 갤러리, 공연장, 레스토랑 등 다양한 문화 공간을 함께 운영했다. 무엇보다 파르코가 판매하고자 하는 것은 공간이었고, 그들은 여기에 ‘문화와 예술’를 더했다. 그들은 ‘예술’을 브랜딩의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술’을 전략적으로 사용해 통해 시부야 파르코를 경험의 공간으로 조성했다. 예를 들어, 파르코는 젊은 아티스트들의 전시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실험적인 공연을 선보이는 등 문화 예술의 플랫폼 역할을 했다. 그 시작은 이미지 광고였다.
파르코를 지금의 명성을 가진 파르코로 만든 것은 전략화한 이미지광고였다. 이는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파르코시부야가 문을 연 1973년에는 아직 인터넷이나 SNS 같은 건 세상에 있지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광고는 ‘상품’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상품을 파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나 파르코의 광고는 달랐다. 상품을 전하지 않았다. ‘광고는 상품을 알리는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파르코는 광고와 상품 간의 연결을 끊고 광고 안에 메시지를 담았다.
특히 아트 디렉터인 이시오카 에이코가 선보인 파르코의 ‘여자의 시대’라는 광고는 파급력이 매우 컸다. 이 시기는 아직 여성이 사회적으로 크게 비약하기 전이었다. 이 광고 캠페인은 전통적인 여성상을 벗어난 강렬하고 독립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이는 단순히 상품을 팔기 위한 광고가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문화적 행위였다. 여성에 대한 메시지는 이세이 미야케의 1976년 세이부 극장에서 선보인 ‘이세이 미야케와 12명의 어두운 여자들’ 패션쇼에서도 나타났다. 이 패션쇼는 여성의 동적인 매력과 흑인 여성의 아름다움을 남김없이 표현했다. 아트 디렉팅을 담당한 이시오카 에이코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이름 없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당시 일본 사회에서는 매우 혁신적인 시도였으며, 파르코가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닌 문화적 담론을 이끄는 장소임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 메시지는 여성을 단순히 고정된 이미지로 보는 편견을 벗어나 여성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물건이 아닌, 메시지. 즉, 하나의 문화를 전하고자 한 파르코의 전략은 광고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파르코는 광고같이 메시지에만 신경 섰을까? 아니다. 그들은 공간과 메시지는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파르코는 건물의 디자인, 내부 인테리어, 이벤트 기획 등 모든 요소에 일관된 문화적 메시지를 담아내려 노력했다. 예를 들어, 파르코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팝업 스토어를 정기적으로 열어 신선한 문화를 소개하고, 동시에 그들의 공간이 항상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가 되도록 만들었다.
‘공간은 환경을 만든다’
파르코는 파르코 매장디자인과 공간구조자체에도 메시지를 담았다. 지금의 파르코가 크지 않은 공간임에도 역동적인 공간을 선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단 파르코는 내부공간을 작게 나누었다. 파르코는 입점한 브랜드들간 매장크기를 약 5제곱미터 정도의 단위로 작게 나눴다. 특히 파르코는 파르코 파트 2 건물의 각 층에 신선한 브랜드들 모아 놓았다. (현재 파르코파트 1과 파트 2는 파르코의 리모델링으로 한 건물로 합쳐졌다)
이는 파르코의 관점으로 만든 부티크 거리였다. 이곳에 입점한 브랜드는 이세이 미야케, 요지 야마모토, 꼼 데 가르송, 키사등이었다. 이 브랜드들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또한 대부분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 방식은 한편으로 젊은 디자이너를 길러 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당시 이제 막 알려진 작은 브랜드인 레이가와쿠보의 꼼데가르숑은 현재 연매출 2억 달러 규모의 브랜드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만든 편집샵인 도버스트리트마켓은 파르코가 보여준 행보를 더 발전시키고 있다.
파르코 파트 2가 생기기 전, 디자이너들이 물건을 파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독자적인 매장 또는 백화점에 납품이었다. 그 중에서도 백화점에 옷을 납품하는 경우는 백화점의 머천다이징을 담당하는 바이어에 의한 것이었다. SNS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성장한 패션브랜드들이 백화점의 러브콜을 받으면서 입점하는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즉, 지금은 아주 당연스럽게 생각되던 일들을 파르코는 50년 전부터 차근차근 해왔다. 그만큼 당시 파르코가 시부야에서 만든 공간은 혁신적이었다. 물론 이것은 손님들에게 편리하고 새로운 형태였다.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디자이너들이 진화하는 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즉. 같은 넓이에서 각각의 디자이너가 이미지 경쟁을 시작한 것이다. SNS로 고객들과 관계를 만드는 지금 시대의 브랜딩. 그것을 파르코를 50년 전부터 하고 있었다.
파르코, 상품이 아닌 문화를 전하는 공간을 만들자.
시부야 파르코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면, 그들은 시부야에서 꾸준히 문화를 전하는 공간을 만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이벤트성으로 공간을 만들거나 물건만 판매하지 않고, 늘 시부야의 문화적인 경험을 끌어올리는 면에 집중했다. 이는 파르코가 시작된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유지해온 철학이다. 시부야 문화발전의 역사는 파르코의 역사라고 보아도 무관할 정도다.
1973년, 시부야파르코는 새로운 문화권을 만드는 중심지로 세이부 극장(현 PARCO 극장)을 열었다. 이곳에서 열리는 작품들은 대부분 파르코가 기획, 제작, 발표했는데, 이는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문화 생산의 거점을 만들고자 하는 파르코의 의지를 보여준다. 1974년에는 독자 참가형 문화 잡지인 ‘빅리하우스’를 창간했다. 이 잡지는 독자들이 직접 지면 만들기에 참여하는 혁신적인 형태로, 소비자를 단순한 구매자가 아닌 문화 생산자로 끌어들이는 시도였다. 같은 해 ‘이탈리안 페어’ 개최를 계기로 지금의 스페인 거리가 탄생했는데, 이는 파르코가 건물 내부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파르코는 문화 경험의 범위를 더욱 확장했다. ‘일본 그래픽 전’과 ‘일본 오브제 전’을 통해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발굴하고, 시부야 파르코 파트 3에서는 라이프스타일 제안에 집중했다. 특히 ‘애프터눈 티룸’의 1호점을 열어 영국의 라이프스타일을 일본에 소개하는 등, 해외 문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1988년에 문을 연 시부야 클럽 콰트로는 메인컬처와 서브컬처를 연결하는 공간으로, 당시 젊은이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했다.
1990년대에 파르코는 문화의 다양화에 더욱 힘을 쏟았다. 파르코 북 센터와 ‘로고스 갤러리’를 통해 문학과 예술을 결합한 공간을 만들었고, 어반아트전시회를 통해 도시 예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20년간 62,774점의 작품이 응모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킨 이 전시회는 파르코가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예술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2000년대 이후 파르코는 새로운 문화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시부야 제로게이트와 파르코 파트 뮤지엄을 통해 패션과 예술을 결합한 공간을 만들었고, 시부카루 페스티벌을 통해 여성 크리에이터들의 표현의 장을 마련했다. 이는 파르코가 시대의 변화에 맞춰 다양성과 젠더 이슈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4년에 시작한 클라우드 펀딩 서비스 ‘BOOSTER’는 파르코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화 창출 방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2019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재개장한 시부야 파르코는 이러한 문화적 유산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의 문화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파르코는 끊임없이 문화의 기반을 구축하고, 경험을 확장하며, 다양화하고, 새로운 플랫폼으로 진화해왔다.즉,파르코의 역사는 곧 시부야 문화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지속적인 변화과 문화적 실험이 시부야를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 중심지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파르코는 앞으로도 시부야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주체로 역할할 것으로 보인다.
공간들을 충돌시켜 새로운 경험을 만드는데 집중하기로한 시부야 파르코.
상품은 원래부터 어떠한 환경공간에 배치되는가에 따라 이미지가 다르다. SNS가 라이프스타일을 퍼뜨리는 미디어가 되기 전까지 부티크의 이미지가 라이프스타일을 전하는 인식이 강했다. 특히 부티끄가 선보이는 ‘인테리어’와 ‘패션’ 디자인은 잡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라이프스타일’로 전해졌다. 패션잡지에 언제나 인테리어 소품과 공간들이 등장하는 이유도 잡지 안에 수많은 브랜드의 광고가 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그 역할을 SNS가 하고 있고, 그 역할을 하던 수많은 잡지들은 역사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파르코는 사람들이 새로운 문화를 느낄수 있도록 많은 공간들을 지속으로 만들고 개선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지속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전할지 고민했다. 언제나 다양한 문화를 믹스해 실험적인 공간들을 만들었다. 2010년도부터는 스마트폰 등 디지털 디바이스와 그에 따른 SNS의 보급이 가속화 되면서 정보교환, 트렌드의 시간축이 매우 빠르게 돌아갔다. 이러한 시대변화는 파르코에서 공간을 만드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닫게 했다. 오히려 브랜드와 브랜드를 시너지는 만드는 공간. 변화의 주체를 브랜드로 삼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했다.
이러한 변화에 가장 잘 대처한 공간은 도버스트리트 마켓이었다. 도버스트리트마켓은 젊은 디자이너, 하이엔드, 스포츠, 스트리트, 그리고 꼼데가르송과 같은 브랜드들 사이의 조화가 돋보이게 했음뿐만이 아니라, 그 공간 자체를 전위적으로 만들어 예술과 문화, 쇼핑이라는 경계를 넘나들게 만들었다. 모든 공간을 하나씩 나누어서 만든 파르코와 다르게, 도버스트리마켓은 아주 작은 규모로 섞고 있었다. 오히려 도버스트리트마켓이 파르코가 나아갈 길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브랜드가 입점하는 파르코는 도버스트리트마켓과 달리 전위적인 접근을 할 수 는 없었다. 도버스트리트 마켓이 전위적인 경험을 사람들에게 전할수 있었던 이유는 도버스트리트마켓을 만든 꼼데가르숑 자체가 전위적이였기때문이었다. 즉, 브랜드 정체성때문이었다.
파르코가 내린 결정은 조심스럽지만 과감했다. 그들은 브랜드 간 경계를 뛰어넘어 예술과 문화, 스타일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변하기로 했다. 그러나 파르코는 이런 경험을 서서히 사람들에게 스며들게 하는 방식을 택했다. 도버스트리트마켓과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브랜드들이 소비자들에게 더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도록 신중하게 설계했다. 2019년에 리뉴얼한 파르코는 이같은 면들을 공간에 반영했다. 각 층에는 특정 컨셉을 가진 브랜드들을 입점시켜, 소비자들의 브랜드 경험을 최대한 확장하고자 노력했다. 무엇보다도 파르코가 신경쓴 부분은 공간을 통해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일이였다. 이를 위해 각 층에는 독특한 컨셉을 가진 브랜드들을 입점시켜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폭을 제공했다. 이는 파르코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독특한 쇼핑 경험을 선사했다.
파르코로 하여금 다시 한번 도시 속에서 예술과 상업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서, 소비자들에게 특별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자 했다. 이는 더 많은 브랜드들이 참여하고 소비자들과 상호 작용하는 공간으로서, 파르코 자체가 브랜드 경험을 극대화하는 플랫폼으로 시부야에 자리매김했다.
공간컨셉은 경험을 만드는 여정의 시작이다.
시부야 파르코는 각 층을 단순한 ‘남성’과 ‘여성’ 카테고리로 나누지 않았다. 대신, 각 층에 명확한 컨셉을 부여하고 해당 컨셉에 맞는 브랜드를 배치하여 브랜드 간 흥미로운 충돌을 일으켰다. 이런 전략은 특히 4층에서 대대적으로 반영되었다. 2022년 11월 3일에 시부야 파르코 4층은 대규모 리뉴얼을 실시했는데, 이전에는 여성복만을 다루던 공간을 완전히 ‘경험’이 중심이 된 혁신적인 공간으로 바꾸었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매출 향상을 위한 것이 아니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사람들의 공간에 대한 인식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시부야 파르코는 2021년과 2022년에 전년 대비 130~150%로 매상이 계속해서 성장했지만, 이는 단순히 매출에만 초점을 둔 결과가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변화 속에서, 파르코는 사람들이 공간을 찾는 이유가 변했다는 인사이트을 얻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물건을 사는 것만으로 만족감을 얻지 않았다. 그 보다사람들은 제품에 내재된 스토리나 지속 가능성과 같은 부가가치를 느끼고자 했다. 이러한 이해를 기반으로, 파르코는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넘어선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파르코는 SKWAT, 일본 최대 빈티지 플랫폼인 VCM와 협력하여 VCM MARKET BOOTH라는 빈티지 아이템을 판매하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었다. 이 아이디어는 시부야파르코 10층의 옥상정원에서 선보인 VCM의 팝업마켓이 성공에서 출발했다. SKWAT는 VCM MARKET BOOTH를 갤러리와 콜렉션 공간으로 나누어 만들었으며, 공사장에서 사용되는 파이프를 활용하여 빈티지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또한, 파르코는 미드 센추리 시대 디자이너의 가구와 소품을 취급하는 ‘미드 센추리 모던’을 입점시켰다. 이곳 앞에는 파르코 뮤지엄 도쿄가 자리하고 있어,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일본 재료로만 제작된 제품을 선보이는 ‘네스트 로브’도 입점했다. 지상 1층에는 스트리트 패션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는 휴먼메이드를 입점시켰다.
5층은 ‘도시형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을 주제로 한 ‘NEXT TOKYO.PARCO OUTDOOR PARK’다. 오가와 그랜드 롯지는 캠핑 초보자를 위한 체험형 매장으로 구성되었다. 파르코는 여기에 편집샵 BAIT를 입점시켜 5층 전체에 쾌활함을 더했다. BAIT는 만화, 피규어, 스트리트 웨어, 스니커 등을 선보이는 편집샵으로, 오가와 그랜드 롯지와의 대조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6층은 사이버스페이스 시부야로, 이스포츠와 캐릭터 콘텐츠 등 다양한 서브컬처를 선보인다. 닌텐도도쿄, 점프샵, 포켓몬센터시부야 등이 자리잡고 있어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는 시부야가 도쿄 서브컬처의 중심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며, 파르코의 50년 역사와도 잘 어우러진다. 지하1층에는 음식,음반가게,트레이딩카드센터, 콘돔가게, 갤러리등 다양한 분야가 뒤섞은 공간인 카오스 키친을 만들었다.
파르코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브랜드를 충돌시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전달한다. 이것이 파르코가 지향하는 브랜딩이다.가령 3층에 있는 프랑스 축구클럽 파리생재르망의 공식 스토어처럼, 예상치 못한 브랜드의 조합으로 방문객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이러한 다양성과 의외성이 파르코를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닌, 독특한 문화 경험의 장소로 만들고 있다
‘상품보다는 문화를 중시하는 홈페이지’, 콘텐츠에 진심은 파르코 홈페이지.
파르코의 또 다른 특징은 그들의 온라인 홈페이지이다. 파르코는 ‘상품을 경험’으로 접근하는 고유한 감성을 온라인에서도 충분히 전하고 있다. 이는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혁신적인 공간 구성과 브랜드 경험을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파르코의 홈페이지는 각 점포 뉴스, 칼럼, 엔터테인먼트, 아트 갤러리, 온라인 몰, 클라우드 펀딩, 지속 가능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파르코가 단순한 쇼핑 플랫폼을 넘어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를 잘 보여준다.
일반적인 쇼핑몰 홈페이지와는 다르게, 파르코는 점포 뉴스, 칼럼, 엔터테인먼트, 아트 갤러리의 페이지 디자인을 잡지처럼 만들었다. 큰 사진을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화보용 사진을 통해 파르코의 ‘브랜드 감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사용자들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며, 파르코의 독특한 미학을 온라인상에서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홈페이지의 콘텐츠들도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다양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이는 단순히 상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파르코가 추구하는 문화와 가치를 고객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파르코는 이를 통해 고객들에게 파르코의 독특한 문화와 철학을 전하고 있다.이러한 온라인 전략은 파르코가 오프라인에서 구현한 ‘경험 중심의 쇼핑’이라는 콘셉트를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파르코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며, 고객들과의 더 깊은 연결을 만들어내고 있다.
경험을 전하는 공간은 지역문화를 담아야한다.
‘시부야를 찾는 이들에게 새로운 문화와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을 만들자’. 시부야 파르코가 지금까지도 꺾이지 않은 철학이다. 파르코는 이런 철학을 가슴에 새기고 출발했다. 시대의 조류를 꿰뚫어 본 안목으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이에 걸맞은 공간들을 지속적으로 제시해 왔다.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요구사항이 바뀌자, 파르코 또한 기민하게 대응했다. 기존 공간들을 재정비하여 변화한 고객들의 니즈에 부합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는 파르코의 유연성과 혁신 능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파르코가 이렇게 끊임없는 혁신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사람 중심’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사람들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진정한 가치를 실현해 나갔던 것이다. 시부야파르코는 모든 전략과 기획의 중심에 고객을 두고,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가치를 실현해 나갔다. 이런 접근법이 파르코로 하여금 트렌드를 선도하는 차별화된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만들었다. 변화무쌍한 트렌드 속에서도 사람들의 바람을 꿰뚫어 본 파르코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혁신을 거듭하며 독특한 문화 경험의 장을 이어나갈 것이다. 이러한 일관된 철학과 혁신적 접근은 파르코가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시부야의 문화적 랜드마크로 자리잡게 한 핵심 요인이다. 앞으로도 파르코는 변화하는 사회와 고객의 니즈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하며, 새로운 문화와 경험의 장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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