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콘텐츠가 그렇게 인기야?
요즘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틱톡 등 숏폼 콘텐츠 많이 보시나요?
저는 자기 직전에 마사지 의자에 앉아 하루를 마감하며 한 30분-1시간 정도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영상들은 1-2초 안에 마음에 들면 계속 보고 반복해서 보고, 싫으면 순식간에 넘기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소비하게 되는데요. 장점이 있다면 아무 생각없이 멍때리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제 입장에서는 머리를 식히는 수단이죠.
지난 몇개월 동안 릴스에 지속적으로 어떤 해외 숏폼드라마가 계속 뜨더라고요.
(출처: 릴숏 페이스북 페이지)
이 릴스 콘텐츠에는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아버지가 재혼해서 계모와 여동생과 같이 사는 첫째 딸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집의 여동생이 계약 결혼 처럼 팔려나갈 판이었죠. 약간 성질 더러운 여동생은 재벌이지만 망나니 무쓸모로 소문난 ‘세바스찬 클레인’이라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뜸 여동생, 계모가 언니한테 ‘니가 결혼하면 어머니 병원 치료비 주겠다’ 하고 말하고, 결혼식장으로 씬이 휙 옮겨가죠. 이후 허름한 신혼집에 언니와 세바스찬이 이동하는데, 알고보니 세바스찬은 망나니 행세를 했던 되게 스마트한 남자였다. 입니다. 그리고 이 서사극 같은 내용이 불과 2분 안에 들어 있습니다.
사실 앞뒤 없고 갑자기 급 전개하는 방식에 당황했지만, 웃기더라고요. 그래서 프로필을 누르고 이게 도대체 뭔가 봤었는데, 숏폼 드라마인 릴숏 플랫폼으로 이동하더라고요.
여러분 주위에도 이렇게 요즘 숏폼 드라마가 엄청 자주 보일텐데요. 숏폼 콘텐츠에 이어 아예 각잡고 드라마를 세로형으로 짧게 만든 숏드라마가 대세입니다.
숏 드라마는 숏폼 형태의 드라마인데요. 모바일에 감상하기 좋게 9:16 비율(세로형)로 만들어 편당 2분 정도로 구성한 콘텐츠입니다. 대충 에피소드는 50-70편 정도로 구성돼 있는데요. 전체 다 보는데 2-3시간이면 드라마 한편이 끝나죠.
어떻게 보면 약간 웹툰을 감상하는 느낌이에요. 세로형으로 몰입하고 어? 어? 하다보면 벌써 1편이 끝나 저도 모르게 2편을 누르고 있거든요. 숏드라마도 사람들의 다음편 클릭을 유발하기 위해 자극적이고 앞뒤 맥락없이 빠른 전개로 쫓아오게 만들죠. 그리고 미끼를 던져요. 초반에 4-10편 정도를 무료로 보여주고요. 더 보려면 유료로 편당 지불해 라고 말입니다.
웹툰도 그러잖아요. 그래서 추가로 보려면 편당 300-500원을 지불해야 하는데요. 만약 50편 짜리 중 40편을 유료로 감상한다면 드라마 하나 보는데 12,000원-20,000원을 써야 합니다. 넷플릭스 월 요금제보다 분명 비싼데 요즘 사람들이 여기에 빠져 있어요.
(출처: 릴숏 페이스북 페이지)
근데요. 제작자 입장에서도 이런 드라마가 땡큐에요.
왜냐면 제작비 적고 인건비 적고 제작 기간도 짧거든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나리오를 기획하고 영상 제작해 공개하는 데 까지 3-4개월이면 뚝딱입니다. 그리고 대략 업계 얘기로는 50부작 드라마 한편 만드는데 5,000만원 정도 쓰면 된다고 하니 정말 저비용 고효율 콘텐츠인 겁니다. 또한 세로형 콘텐츠이다보니 가로형보다 등장인물도 적고 인물 구도, 액션 시퀀스 역시 세로에 맞춰 움직이니 인건비 측면에서도 유리합니다. 그래서 5,000만원으로 만들지만, 만약 편당 500원에 과금해 한 사용자가 드라마 한편 보는데 20,000원을 썼다고 하면, 2,500명만 이 드라마를 봐주면 똔똔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전세계적으로 숏폼 드라마의 사용자들은 엄청나게 빠르게 증가하고 있죠.
국내외 숏 드라마 플랫폼은 지금
(출처: 캔바)
숏드라마의 현재 글로벌 시장 규모는 대략 13조원으로 추산합니다. 그 중 9조원이 중국이 하고 있어요. 한국은 6500억원 정도의 시장 규모를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고요.
정확한 숫자로 보자면 중국의 작년 숏드라마 시장 규모가 7조 2,566억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257%나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한해 중국에서 만들어진 숏드라마가 1천편을 넘었고, 중국에서 만든 숏드라마 플랫폼인 릴숏이 작년 미국 iOS 다운로드에서 틱톡을 제치고 엔터 부문 1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8월까지 중국 숏폼 드라마는 2만 2600편이 제작되었어요. 같은 기간 TV 시리즈가 876편, 극장 영화가 516편 제작되었다는 것을 비교해 봤을 때 중국은 확실히 숏 드라마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을 뚜렷하게 보이고 있죠.
(출처: 서울경제, 릴숏)
현재 숏드라마는 중국 플랫폼인 ‘릴숏’ 이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릴숏은 ‘금지된 사랑’ ‘재벌 상속녀와 이혼하지 마세요’ ‘억만장자 남편의 이중생활 ‘등으로 인기를 끌었고요. 이제까지 5500만건 넘는 다운로드와 1.7억달러 넘는 수익이 발생했어요. 정말 숏드라마 공장처럼 콘텐츠를 찍어내고 글로벌에서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릴숏의 조이 지아 대표는
“우리가 이야기를 만드는 목적은 오직 팔기위해서다. 팔리지 않는 이야기는 쓰레기”
라며 아주 과감하게 콘텐츠는 작품성보다는 상품성이 더 중요하다고 대놓고 이야기를 했죠.
릴숏에 이어 숏드라마 글로벌 3대장이라 할 수 있는 숏맥스(Short Max)는 중국의 미디어 기업인 지우조우웬화가 2023년 9월에 출시해서 현재 240개국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올해 4월 1억 4천만 조회수, 5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기록했고요. 2천 개 이상의 숏폼 드라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4위, 일본 2위, 동남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플랫폼이죠. 참고로 월간활성사용자(MAU)수는 970만명입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일단 한국도 올해 탑릴스를 시작으로 속속들이 많은 숏폼 드라마 제작사, 플랫폼이 나오고 있어요. 국내에서는 탑릴스 외에 올웨이즈, 비글루, 숏차, 쇼타임, 스토리릴스, 펄스픽 등이 있습니다.
(중앙일보, 탑 릴스 장면)
탑릴스는 2024년 3월에 서비스를 처음 출시해 여러 오리지널 작품을 내놓고 있는데요. 복수를 주제로 한 드라마인 ‘나의 복수파트너’, 추리 로맨스물인 ‘네 명의 남자를 획득했다’, 불륜을 다루는 복수극인 ‘세 명이서 결혼생활 중입니다’, BL 로맨스 드라마인 ‘가르쳐주세요’ 등이 대표작입니다.
비글루의 경우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으로 유명한 크래프톤에서 1,200억원을 투자받아 화제성을 올린 플랫폼인데요. 비글루는 온라인 오디오 플랫폼인 스푼라디오에서 올해 7월 론칭한 숏폼 드라마 플랫폼 서비스입니다. 이들은 K드라마 숏폼 콘텐츠를 글로벌에 보급하겠다는 포부로 해외 권역에 동시에 송출 서비스하겠다고 했고요. 이 기업에 1,200억원을 과감히 투자한 크래프톤의 장병규 의장은 “틱톡에서 보는 흔한 숏폼으로 시선을 끌어 광고 수익으로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라, 콘텐츠 자체로 돈을 버는 비즈니스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 그대로 콘텐츠 자체에 돈을 지불해 가치를 갖는 비즈니스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출처: 경향신문, 숏드라마 <재벌3세 남편을 주웠습니다> 올웨이즈 )
그 외에도 레브잇이 운영하는 올웨이즈라는 숏드라마 서비스가 8월에 출시되었고, 9월에는 왓챠에서 운영하는 숏드라마 서비스인 숏차가 출시됐죠. 왓챠는 올해 3분기 드디어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면서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출처: 조선 비즈, 쇼차)
마케터의 시선
숏드라마가 대세인 부분에 대해 마케터의 시선에서 ‘릴숏’의 성공요인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일단, 릴숏의 경우 숏드라마 플랫폼으로 전세계 1위를 차지하고 실제 수익도 많이 창출해 내고 있는데요. 이들이 현재 좋은 성과를 보이는 데에는 다음의 이유가 있습니다.
-히트작 출시를 통한 기대감 확보
앞서 릴숏은 ‘금지된 사랑’ ‘재벌 상속녀와 이혼하지 마세요’ ‘억만장자 남편의 이중생활’과 같은 대표적인 히트작을 출시하면서 수많은 다운로드를 만들어냈죠. 그리고 숏폼 드라마의 경우 제작비가 가볍기 때문에 10개 중 1-2개만 성공해도 제작비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구체적으로 업계에서 넷플릭스가 드라마당 300만-2000만 달러의 제작 비용을 투입하는데 비해 숏드라마 제작비는 평균 18만-25만 달러 선에서 해결이 된다고 하죠. 즉 넷플릭스 제작비용의 10%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개 도전해서 1-2개 대박만 내 주면 제작비 이상의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테스트로 빠르게 만들고 소비자들의 지갑을 여는 패턴을 배울 수 있게 되죠.
-확실한 타깃을 공략
릴숏, 탑릴스 등 여러 숏드라마 플랫폼에서 대표적인 히트작들을 보면 이 콘텐츠의 수익화에 기여하는 확실한 타깃은 여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콘텐츠의 주제가 로맨스, 불륜, 복수 등이 많고요. 기존의 막장 드라마를 압축해 보여주는 느낌의 콘텐츠가 많습니다.
-효과적인 광고와 수익 전략
그리고 릴숏의 경우 틱톡에서 인기 드라마 소재를 활용해 인스타그램에 공격적인 광고를 집행하고 있어요. 초반에 말씀드렸듯이 릴숏의 드라마 광고가 정말 자주 나옵니다. 돈을 쏟아붓고 있다는 뜻이죠. 물론 제가 응? 하면서 보고 있으니, 계속 뜨는거겠지만요. 좌우간 광고를 전략적으로 하면서 소비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고요. 웹툰의 수익화 공식처럼 몇 개 맛배기로 보여주고 유료 결제를 유도하다보니, 전체 다운로드 사용자의 78%가 유료 다운로드로 돈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수익에 기여를 하는 고객들이 많으니 안정적인 플랫폼 운영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이렇게 숏드라마 성공 공식이 나오다보니 여기저기서 숏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콘텐츠 기업들이 뛰어들고 있습니다. 물론 숏드라마의 경우 ‘영화 요약’ ‘드라마 요약’ 같은 유튜브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요약 버전을 선호하는 타깃 고객에게 적절한 콘텐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에도 이면이 있죠.
일단 걱정되는 부분은 콘텐츠 품질 저하의 이슈가 분명 있습니다. 아무래도 2분짜리 콘텐츠를 보고 결제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콘텐츠 주제가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극적인 소재를 이용하고 그게 먹히면 비슷한 소재들이 양산되는 겁니다. 그래서 웹툰들도 하나의 포맷이 인기를 끌면 무한정 복제돼 나오니 소비자의 피로를 유도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표절에 취약할 수 밖에 없어요. 베끼기가 일반화가 될 겁니다.
제작 측면에 있어서도 걱정이 있습니다. 일종의 숏드라마는 생태계 교란종이거든요. 그래서 기존의 드라마 제작 방식과 다르게 저비용 고효율을 뽑아내다보니, 드라마 기존 시장을 축소시킬 수도 있고, 인력 구성이 숏드라마에 맞게 재조정될 경우 기존 드라마를 만드는데에 있어 비용, 사람이 축소될 수도 있죠.
(출처: 캔바)
마지막으로 요즘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팝콘 브레인’이라는 단어가 있는데요. 팝콘 브레인이란 강한 자극에만 반응하는 뇌의 패턴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겁니다. 올해 3월 과기부에서 발표한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서 숏폼 이용자 4명 중 1명(23%)이 숏폼 시청을 조절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응답했어요. 즉 내가 그걸 통제하기 어렵다는 거에요. 그도 그럴 것이 도파민 중독처럼 계속 자극에 노출되니 쫓아가면서 시청하면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는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숏폼 콘텐츠에만 몰입하게 되면 사실 집중력, 사고력을 키우는데에 중고등학생들이라면 제한이 올 수도 있고요.
지난 2015년부터 이미 스낵컬처, 스낵콘텐츠가 유행해왔고 웹드라마, 드라마 요약해서 보기, 결말포함 영화 요약 같은 유튜브 콘텐츠가 유행했고, 이어 틱톡, 릴스 같은 숏폼 콘텐츠로 점점 좁혀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극의 끝에 어쩌면 새로운 장르의 문화 콘텐츠가 다시 등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문화의 흐름에 대한 피로도를 느끼게 되면 어쩌면 어느 순간에 명상 콘텐츠가 인기를 끌거나 하진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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