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가수요? 음.. 저는 윤종신이요!
직업상 취향에 대해 대화할 일이 많다. 나의 취향과 선호가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다 보니 같이 일하는 동료들, 혹은 클라이언트들과 취향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중에서도 가장 흔하게 나오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가수다.
좋아하는 가수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윤종신’을 가장 좋아하는 가수라고 말하면 다들 매우 놀라는 분위기다. 보통 좋아하는 가수를 말하면 두 가지 답변으로 나뉜다. 하나는 아이돌처럼 비주얼이나 스타일이 좋아서 좋아하는 경우, 또 하나는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나 밴드를 이야기하는 경우다. 평범한 답변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윤종신’이라는 답이 조금 어색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내가 윤종신을 좋아하기 시작한 건 군 복무 시절부터다. 점심시간에 군대에서 음악을 듣다가 우연히 ‘나이’라는 곡을 들었는데, 가사가 주는 울림이 커서 관심 있게 찾아보게 됐다. 그리고 평소 내가 좋아하던 김연우의 ‘이별택시’라는 곡도 윤종신이 작사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윤종신이라는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전역 후에도 윤종신의 음악은 내 곁을 꾸준히 지켰다. 성시경의 ‘거리에서’, ‘넌 감동이었어’, ‘한 번 더 이별’, 아이유의 ‘첫 이별 그날 밤’, 하림의 ‘출국’처럼 윤종신이 작사한 곡들은 가사를 곱씹으며 들었다. 윤종신이 작사한 곡 중 가장 좋아하는 ‘오르막 길’은 내 결혼식에서 내가 직접 신부에게 불러준 축가가 되기도 했다.
내가 윤종신을 좋아하는 이유는 가사에 있다. 윤종신의 가사들은 대부분 일상의 장면을 가져와 곡에 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사에 설정된 상황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일이라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거리에서’는 연인과 함께 걸었던 거리를 혼자 걷는 사람의 심정을 거리의 풍경을 따라가며 표현한다.
윤종신의 가사는 쉬운 단어나 익숙한 표현을 사용한다. 발라드 곡 ‘이별택시’에서 ‘아저씨’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그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일상의 단어들을 발견해 활용한다. 월간 윤종신에서 사랑받은 ‘고요’라는 곡도 이별을 앞둔 연인이 마주한 순간을 ‘물 넘기는 소리만 들려’라는 표현으로 이입시킨다.
자연스러운 공감을 일으키는 윤종신의 가사는 팬의 입장을 넘어 기획자의 입장에서 참고할 점이 많다. 작사가처럼 기획자도 광고 지면이나 콘텐츠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브랜드가 말하고 싶은 표현을 담으면서도 고객의 마음을 짧은 시간 안에 건드릴 수 있는 표현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기획자의 입장에서 윤종신의 가사는 더욱 대단해 보인다. 일상의 쉬운 언어를 활용해 4분 남짓한 시간 동안 공감을 만들어내는 윤종신의 글쓰기는 그가 살아온 삶의 내공을 느끼게 한다.
고객의 마음을 몇 개의 단어와 표현으로 사로잡아야 하는 기획자들이 있다면, 윤종신의 음악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뻔하지 않지만 익숙한 표현으로 당신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