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기술 성장세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딥시크(DeepSeek)로 대표되는 AI 분야는 물론 통신, 로봇, 자율주행 등 다양한 첨단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특히 최근에는 반도체 기술에서도 급격한 성장을 보이며 한국을 추월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하는 데 그쳤던 중국이, 이제는 오히려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선도하는 위치까지 올라선 것입니다. 중국은 어떻게 기술 강국이 될 수 있었을까요?
I. 정부의 하드캐리
중국의 성장세는 우연한 결과가 아닙니다. 정부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에서 비롯됐습니다. 대표적으로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 2025‘ 계획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이는 첨단 제조업 중심으로 중국을 글로벌 기술 강국으로 도약시키기 위한 국가 주도 산업 정책입니다. 정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규모 보조금 지급, 국유기업 참여 확대, 해외 첨단 기술의 확보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글로벌 기술력을 따라잡고 궁극적으로는 추월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2017년 국무원은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을 발표하며 AI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이 계획에는 2020년까지 글로벌 선진 수준 진입, 2025년까지 주요 분야에서 획기적 성과를 달성, 2030년까지 AI 이론과 기술, 응용에서 세계 선도 수준 확보라는 단계별 목표가 담겨있는데요. 최근 글로벌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킨 딥시크 역시 정부 주도 정책의 산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이처럼 중장기 계획과 국가 전략을 통해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단순히 계획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산업별로 구체적 지원정책을 마련하여 첨단 기술 역량을 키우는 탑다운(Top-down) 접근을 취해왔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민간 부문 전반에 혁신을 촉진하는 기반이 되었고, 기업이 기술 발전을 주도하는 미국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II. 기업의 보폭 맞추기
중국 정부가 주도를 하는 것은 맞지만 못지않게 기업 역시 발을 잘 맞추고 있습니다. 즉, 중국의 기술 혁신은 정부와 기업이 비교적 긴밀하게 공동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협력적 생태계라고 볼 수 있는데요. 정부는 전략적 분야와 목표를 제시하고 방향키 역할을 한다면, 기업들은 시장 경쟁을 통해 효율성과 혁신을 이뤄내는 엔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얼핏 과거 소련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다른 점은 시장 경제의 역동성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국가가 전략적으로 개입하는 “국가 주도형 시장경제” 모델을 구현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주요 민간 기업에 당위원회를 설치하고 정기적인 소통을 통해 국가 전략과 기업의 이해관계를 조율합니다. 기업들 역시 정부의 장기 비전에 부합하는 분야에 전략적으로 투자를 집중함으로써 정책 지원의 혜택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부-기업 협력 모델이 만들어낸 가장 큰 성과는 바로 ‘기술의 내재화’입니다. 중국은 이른바 ‘기술민족주의’라 불릴 만큼 체계적인 산업정책을 통해 기술의 국산화를 강력하게 추진해 왔습니다. 정부 기관의 국산 제품 우선 구매, 외국 기업에 대한 전략적인 투자 및 수출 규제 등을 통해 자국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입니다.
특히 AI 산업화 분야에서 이러한 전략이 큰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14억 인구의 거대 시장에서 생성되는 방대한 모바일, 결제, 소셜 데이터와 더불어 정부의 과감한 규제 완화 정책이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중국 기업들은 AI 알고리즘을 빠르게 발전시키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자국민의 개인정보 보호와 윤리적 측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지만 말입니다.
III.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티기
중국의 기술 성장세가 가속화되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은 안보와 공정 경쟁을 이유로 중국에 대한 첨단 기술 견제와 제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의 대중 수출을 전면 통제했는데요. 이에 중국은 제3의 나라를 통해 반도체를 우회 수입하는 등 필요한 반도체를 확보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딥시크는 공식적으로는 저사양 GPU로 AI 모델을 개발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규모의 고성능 GPU를 보유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르 왕 스케일AI CEO는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딥시크가 약 5만 개의 H100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는데요. 만약 이 추측이 맞다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한국이 보유한 H100(약 2,000개)의 25배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이밖에도 미국은 2018년 화웨이의 연방정부 조달시장 퇴출을 시작으로, 인권 문제를 이유로 센스타임 등 안면인식 AI 기업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렸으며, 최근에는 틱톡에 미국 사업권 매각을 요구하는 등 다각도로 중국 기술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해 중국은 국제 사회에서 여론전을 펼치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기술 자체 개발과 인재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닛케이 세계 3대 AI 학회 논문을 분석한 결과 상위 10위 기관에 미국이 6곳, 중국이 4곳을 차지했습니다. 미국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이 포함된 데에 반해 중국은 칭화대, 베이징대, 저장대, 상하이자오퉁대 등 10위에 포함된 4곳 모두 대학이었는데요. 딥시크 개발에 핵심 개발자로 지목된 95년생 뤄푸리 역시 베이징대를 졸업한 ‘중국 국내파’입니다.
IV. 양면성을 가진 거대 내수시장
지금까지의 성과도 놀랍지만, 더욱 주목할 점은 그 성장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풍부한 인재풀과 연구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정부의 장기적인 투자 의지도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14억 인구의 거대 내수시장과 세계 최대 규모의 디지털 사용자라는 강점까지 더해져, 글로벌 기술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중국의 기술 성장에도 잠재적인 위험 요소들은 있습니다. 내수 시장이 아무리 커도 언젠가는 성장이 정체될 수 있으며, 모든 기술의 자급자족이라는 목표 역시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또한,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구조의 변화, 경제 성장 속도의 둔화, 주요국들과의 무역 마찰 등은 중국 기술 생태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더불어 급속한 기술 혁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정보 침해, 윤리적 논란, 환경 문제와 같은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중국이 기술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AI 3대 강국을 목표로 삼은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 레터에서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위 글은 ‘테크잇슈’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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