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353만 원 vs AI 320만 원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보수) 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363만 원입니다. 언뜻 보면 높게 느껴질 수 있는데요. 여기에는 ‘평균의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극소수의 초고액 연봉자들이 전체 평균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이죠. 실제 경제 상황을 더 정확히 파악하려면 중위 소득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위 소득은 278만 원 수준까지 내려갑니다.
이러한 가운데 OpenAI는 최근 ‘고소득 지식 근로자’를 위한 AI 제품을 월 2,000달러(한화 약 288만 원)의 구독 모델로 출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부가세까지 포함하면 약 320만 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이는 한국 중위 월급을 넘어 평균 월급에 육박하는 수준입니다. 미국의 평균 임금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편이지만, 한국의 임금 구조를 고려하면 이제 정말 사람보다 AI의 경제적 가치가 더 높게 평가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월급을 320만 원 이상 받는 분들도 안심하긴 이릅니다. OpenAI는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에이전트는 월 10,000달러(한화 약 1,450만 원), 박사급 연구 에이전트는 월 20,000달러(한화 약 2,880만 원)에 판매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초고액 구독 서비스의 등장은 기업들이 인력 운용과 AI 도입 사이에서 비용 대비 효과를 진지하게 분석하게 만드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320만 원 값어치를 할까?
지금까지 AI 서비스의 구독료는 일반적으로 월 20달러 수준이었습니다. 조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구독 모델을 사용할 때 생산성이 대체로 15% 이상 향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를 가격 대비 생산성으로 단순 계산하면, 월 2,000달러의 구독제는 기존 서비스보다 100배 비싸므로 이론적으로 1500% 이상의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해, 평범한 사람보다 15배 더 높은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런 계산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고 실제 효율은 더 낮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론적 수치보다 훨씬 낮게 나타나더라도 최소한 한 사람 이상의 생산성은 충분히 기대할 만합니다. 특히 고가 구독제는 단지 가격만 비싼 것이 아니라, 모델 자체의 성능이 크게 개선되고 멀티모달, 협업 도구, 에이전트 등 다양한 고급 기능이 제공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의 단순 계산을 뛰어넘는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진짜로 일자리가 대체될까?
이제 관심은 정말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지 여부입니다. 인간과 비슷한 임금으로 몇 배 이상의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AI를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금 당장 모든 일자리가 AI로 대체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과 AI가 일대일로 대응되어 직접적으로 대체되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대신, AI 한 대가 여러 사람의 업무를 처리하거나 보조하는 방식으로 일자리의 형태가 점진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큽니다.
즉, 기존에 100명의 사람이 하던 업무를 앞으로는 99명의 사람과 AI 1대가 협력해 수행하는 방식으로 바뀔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전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성 향상에 못지않게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협업 구조로 시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인간의 입장에서 여전히 불안한 점은, 결국 가까운 미래에 한 명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가 수년간 지속된다면 일자리 감소는 누적되어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 있습니다. AI의 발전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그 새로운 자리를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단순 업무나 반복적인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AI로 쉽게 대체될 수 있어 더 큰 고용 불안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기술과 업무 역량을 습득하며 변화에 대비해야 합니다. 기업과 정부 차원에서도 AI 시대에 맞는 재교육 시스템과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하는 등 선제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입니다.
부정적이기만 할까?
다만, AI의 확산이 반드시 비관적인 미래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존의 업무 방식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고부가가치의 업무로 전환할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 반복 작업에서 벗어난 인간은 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역할에 집중할 수 있고, AI는 그러한 업무를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가령 과거 기계화나 자동화 기술이 등장했을 때도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지만, 동시에 새로운 산업과 직종이 탄생했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앱 개발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등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직업이 생겨났듯이, AI 기술 역시 우리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직업과 산업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변화 그 자체보다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입니다. AI를 적대시하기보다는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협력적 파트너로 활용할 때, 우리는 생산성과 삶의 질 모두 높아지는 긍정적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OpenAI의 자신감? 절박함?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OpenAI가 초고액 구독제를 내놓은 시기입니다. 최근 AI 업계는 경쟁 심화로 모델 사용료가 점점 저렴해지는 가성비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데요. 특히 중국 AI의 발전은 이러한 가성비 경재에 절정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장 추세와는 정반대로 OpenAI는 초고가 전략을 선보이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이는 OpenAI의 자신감으로 보입니다. 자신들의 AI가 타사 대비 100배, 1000배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절박함에서 비롯된 전략으로 생각됩니다.
먼저, 막대한 개발 비용과 인프라 유지에 따른 수익성 압박이 가장 큰 요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는 AI 모델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OpenAI는 여전히 적자를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월 200달러로 책정된 ChatGPT-Pro 구독제도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손해라는 말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OpenAI의 미션과 관련이 있습니다. OpenAI는 창립 때부터 인류에게 이로운 AGI(일반인공지능) 개발을 목표로 삼았지만, 최근 AI 기술의 평준화로 OpenAI만의 차별성이 점차 희석되고 있는데요. 다른 AI 기업들과 ‘같은 급’으로 묶이는 것은 OpenAI로서는 단순한 비즈니스 경쟁 이상의 존재적 위기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여전히 비영리기관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는 OpenAI는 수익성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AGI를 향한 경주에서 압도적인 선두를 유지해야만 계속해서 시장과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술적 평준화는 이들의 궁극적 목표를 향한 여정에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번 초고가 전략은 ‘일반적인 AI 기업’이 아닌 ‘AGI를 향한 특별한 기업’이라는 포지셔닝을 강화하기 위한 절박한 선택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변화
OpenAI의 초고가 전략이 자신감에서 비롯되었든 절박함에서 비롯되었든, AI는 이제 우리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 전략의 성공 여부나 AI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그 속도와 방향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AI와 효과적으로 협업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며, 기업들은 AI와 인력의 최적 조합을 찾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비용 절감의 관점보다는 가치 창출의 관점에서 AI 도입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닌, 그 기술을 활용하는 우리 자신입니다.
*위 글은 ‘테크잇슈’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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