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손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에 대하여
1. 샘 알트먼은 왜 아직 펜을 쓸까?
샘 알트먼은 지금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인공지능으로. 그런데 최근 인터뷰에서 꺼낸 도구는 펜과 싸구려 스프링노트였다.
작은 메모장을 꺼내 아이디어를 적고, 다 쓴 페이지는 구겨서 바닥에 던졌다.
The Verge의 에디터는 그걸 보고 웃었다. “요즘 누가 A6 스프링노트를 써?” 그런데 나는, 그 모습에서 오히려 중요한 걸 봤다.
기술의 맨 앞에 있는 사람이, 생각은 아주 오래된 방식으로 하고 있었다.
옛날 방식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다가오는 시대를 준비하는 훈련에 가까웠다.
2. 손은 뇌랑 제일 가까운 도구다
우리는 자꾸 잊는다. 손이 뇌랑 얼마나 가까운지. 그리고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생각 그 자체라는 걸.
손으로 쓰면 느리다. 바로 그 느림 덕분에, 평소에 지나쳤던 생각까지 마주하게 된다. 타이핑은 빠르지만, 얕다. 손은 생각을 더 깊이 끌어내린다.
글을 쓰기 전에 먼저 생각하게 되고, 생각은 쓰는 동작을 통해 더 또렷해진다.
이건 그냥 감이 아니다. 실제 과학이다.
Nature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AI가 AI가 만든 데이터를 학습하면 점점 멍청해진다고 한다.
“AI가 인공 데이터만 학습하면, 진짜 언어가 어떤 건지 잊어버린다.”
— Model Collapse Has a Simple Cause, Nature, 2024
이건 그냥 컴퓨터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사실, 템플릿에만 기대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더 중요한 경고다.
3. 요즘 사무실에서 손글씨 쓰는 사람 본 적 있어?
나는 매일 마케터들과 일한다. 기획안은 PPT, 전략은 WORD, 회의는 팀즈. 다들 정말 잘 정리한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아이디어는 남질 않는다.
왜일까? 생각의 흔적이 없다.
복붙으로 만든 문장, 템플릿 안에서 짠 구조. 거기엔 질문도, 실수도, 망설임도 없다.
그렇게 쓰인 말은, 빨리 소비되고 바로 잊힌다.
4. 손으로 쓴 글에는 사람이 있다
AI는 펜이 멈칫한 순간을 모른다. 한 문장을 지웠다 다시 쓴 흔적, 생각이 머문 리듬 같은 건 따라 할 수 없다.
브랜드의 목소리는 문장을 잘 다듬는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사람만의 생각, 흐름, 말투 같은 게 글에 배어 있어야 한다.
사람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면, 먼저 사람처럼 써야 한다.
5. 도구는 그냥 도구가 아니다. 태도다
알트먼의 도구는 투박하다. 펜은 뻑뻑하고, 노트는 찢기 쉬워 보인다. 근데 그게 중요하지 않다.
그는 멋진 도구를 자랑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가 만들 수 없는 것’을 만들려고 한다.
AI를 만드는 사람이, AI가 흉내 낼 수 없는 흔적을 일부러 남긴다.
이 시대에 살아남는 건, 타자를 제일 빨리 치는 사람이 아니다.
생각을 천천히 끌어내릴 줄 아는 사람이다.
이건 과거의 방식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방식이다
이건 다이어리를 쓰자는 얘기가 아니다. 복잡한 툴을 버리라는 말도 아니다.
생각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아주 작고 명확한 실천이다.
혁명이 필요한 게 아니다. 매일 딱 한 번, 키보드보다 먼저 펜을 드는 순간이면 충분하다.
그때 끄적인 한 줄이, 당신 브랜드가 찾던 문장일지도 모른다.
마케터라면 손으로 해보면 좋을 다섯 가지 실험
- 슬라이드 만들기 전에 캠페인 흐름을 종이에 먼저 그려본다.
- 전략 메모를 펜으로 써보고, 타이핑한 버전과 비교해본다.
- 동료에게 피드백을 줄 땐 손글씨로 써서 책상에 올려둔다.
- 슬로건이나 광고 문구는 먼저 종이에 써본다.
- 회의 중 손으로 필기하고, 다음 날 아무 것도 안 보고 기억해낸다.
AI를 쓰지 않을 필요는 없다. 다만, 자동화되지 않은 당신의 사고를 지키면 된다.
오늘, 당신은 손으로 어떤 생각을 적었나요?
하고 싶은 이야기, 떠오른 생각, 직접 해본 실험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위픽레터는 여전히, 사람처럼 쓰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