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욕을 먹었습니다. “예약할 땐 이 가격이 아니었는데요?🤬”
출근 후 전화기를 들자마자 들려온 고객님의 첫마디입니다. 69만 원이라고 예약했는데 왜 79만 원을 결제하라는 거냐며, 어제도, 오늘도, 우리는 해명을 시작합니다.
이는 여행 업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예약 시점 가격과 최종 결제 가격의 차이로 인한 고객 불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예약할 땐 이 가격이 아니었는데요?”라는 고객의 항의는 여행 상품 가격 책정의 복잡성과 소비자의 가격 인지 간의 근본적인 간극을 드러냅니다.
여행사는 분명 가격의 모든 구성 요소를 안내했지만, 고객의 기억에는 오직 ‘최초 노출가’만 남아있습니다. 이 글은 바로 그 간극, 다시 말해 “고지를 했지만 고객은 몰랐던” 여행상품 가격의 진실을 짚어보려 합니다.
💸가격은 한 줄로 설명되지 않는다
여행업계는 단순 유통이 아니라, 수요 예측, 실시간 재고 관리, 동적 가격 전략(dynamic pricing)을 바탕으로 운영됩니다. 예약률, 항공사 블록 계약, 환율 변동 같은 외부 지표와 내부 손익 기준을 반영해 가격은 끊임없이 조정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왜 여행상품은 일반 제품처럼 가격이 고정되지 않는 걸까?”라는 질문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마트에서 파는 생수처럼 정해진 가격표가 있다면 더 편할 텐데 말이죠. 하지만 여행상품은 구조적으로 ‘정가’ 개념이 적용되기 어려운 대표적인 서비스입니다.
항공 운임, 유류할증료, 세금, 호텔 요금, 환율, 발권 조건, 환불 가능 여부까지 수십 가지 요소가 가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여기에 해당 지역의 성수기, 국제 행사, 단체 수요, 연휴 등 현지 변수까지 더해지면 가격은 예측 불가능한 수준으로 요동칩니다.
예를 들어, 오늘은 비수기였지만 내일 국제 행사가 열리면 해당 도시의 호텔 가격은 하루아침에 두 배로 뛸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행은 실시간으로 변동하는 자원과 외부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시장입니다.
또한 여행자 개개인의 조건에 따라 구성도 천차만별입니다. 1인/단체, 주말/평일, 좌석 클래스, 룸 타입, 환불 조건 등에 따라 ‘나만의 가격’이 형성됩니다. 여행은 평균을 따르지 않는 ‘개인화된 경험 상품’이기 때문에, 평균값으로 만든 정가는 오히려 오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수십 가지 요소가 얽힌 가격 구조는 한 줄로 설명되기 어렵지만, 소비자는 여전히 그것을 ‘한눈에 기억되는 가격’으로 받아들입니다. 오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변수와 데이터를 조율해 최종 가격을 설계하는 것은 여행사 사람들의 몫입니다. 실시간으로 수백 가지 상품을 조율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가격의 시간차나 유동성은 피할 수 없는 숙제입니다.
🤔소비자의 ‘인지 오류’를 부르는 구조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소비자는 “최저가가 곧 전부”라는 인식 속에서 가격만 보고 상품을 선택합니다. 이는 스카이스캐너나 각종 OTA에서 보여주는 ‘최저가 정렬 시스템’에 익숙해진 소비 습관 때문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시스템들이 보여주는 가격이 ‘완성된 가격’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구간 항공권, 특가 클래스 조건, 수수료, 유류할증료, 환율, 현지 세금 등이 별도 청구되는 구조에서는, 최초 노출 가격과 최종 결제 가격이 일치할 확률이 낮습니다.
게다가 일부 OTA에서는 실제 예약이 가능한 클래스가 아닌, 소진된 특가를 노출하는 방식으로 클릭률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 소비자는 착각 속에서 결정을 내리고, 여행사는 억울한 항의를 받게 됩니다.
💻 고지와 인지 사이, 여행사의 고민
이러한 혼란은 가격 시스템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알려줬지만 고객이 몰랐다’는 상황은 고지 부족보다 인지 실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행사는 상품 설명서, 약관, 결제 안내문 등에서 가격 구성 요소를 분명히 고지합니다. 하지만 고객은 말합니다. “그건 중요한 정보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이는 ‘얼마나 설명했느냐’보다 ‘무엇이 인식되었느냐’의 문제입니다. 정보 전달의 양이 아니라, 전달 방식과 맥락, 그리고 고객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는 ‘인지 설계’가 필요합니다.
특히 문자 수신 거부, 모바일 환경의 정보 스킵, 가독성 낮은 조항 등은 고객이 정보를 인식할 가능성을 더 낮춥니다. 문자나 전화로 안내했더라도, 소비자가 그것을 보지 못했거나, 단순히 스팸으로 인식해 넘겼다면 실질적인 전달은 실패한 셈이죠.
정보는 고지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억되고 이해될 수 있어야, 그제야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서 여행사는 더 직관적인 안내 구조를 설계해야 하고, 소비자 역시 정보에 대해 수동적이기보다 스스로 조건을 점검하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요구됩니다.
💸그렇다면, 왜 여행사는 가격을 ‘세팅’해야 할까?
여행사가 가격을 ‘세팅’한다는 건 단순히 가격을 바꾼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상품의 생애주기를 관리하고, 다양한 수요에 맞춰 선택지를 유연하게 제공하기 위한 전략적 설계입니다.
✔️ 상품 다양성 확보 같은 날짜, 같은 지역이라도 항공사, 클래스, 호텔 등급, 환불 조건 등에 따라 구성은 무한히 달라집니다. ‘정가’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이용자마다 선택한 조건이 전부 다르기 때문입니다.
✔️ 상품 존속 가능성 유지 예약률이 낮을 땐 특가로 수요를 유도하고, 좌석이 부족할 땐 가격을 높여 재고를 조절합니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공급자와의 계약 리스크를 감수하며 손실을 줄이기 위한 리스크 관리 전략입니다.
✔️ 소멸성 재고의 수익 최적화 항공 좌석, 객실, 현지 투어 등은 시간이 지나면 팔 수 없는 ‘소멸성 재고’입니다. 출발일이 가까워질수록 가격을 조정하며 수익을 극대화하는 ‘수익 관리 전략’이 필요하며, 가격 세팅은 그 핵심 도구입니다.
즉, 가격 세팅은 마케팅과 상품 개발이 협업하여 설계한 구조이며,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고 상품의 생존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가격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제 여행사가 설계해야 할 것은 정보 자체가 아니라, 정보가 기억되고 이해되는 방식, 즉 인지 구조입니다.
소비자는 최저가 하나만 믿기보다, 총체적 비용과 약관, 유연한 구성까지 고려하는 시야를 갖춰야 합니다. “왜 가격이 달라졌죠?” 대신, “내가 선택한 조건이었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는 소비자가 되어야 하죠.
그리고 여행사 또한, 고객에게 ‘가격’을 제시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가격의 이유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복잡한 가격 뒤에 숨지 않고, 그것을 명확히 드러내고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앞으로 여행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지 않을까요?
이미지소스 출처: Unsplash
정보는 고지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억되고 이해될 수 있어야, 그제야 의미를 갖습니다.
새겨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