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상반기 IT 분야는 그 어느 때보다도 흥미로운 변화가 많았습니다. 저비용·고성능 AI의 등장부터 초거대 인프라 경쟁, 통신 보안의 위기, 그리고 AI와 디자인이 맞붙은 새로운 경쟁 구도까지. 다양한 이슈들이 우리 일상으로 파고드는 가운데, 몇몇 이슈는 잠시나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과연 올 상반기를 뜨겁게 달군 주요 사건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1. 딥시크 쇼크 : 저비용 고성능 AI의 등장
설 연휴가 한창 이어지던 2025년 1월 27일,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R1 모델을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는데요. OpenAI 필적하는 성능을 구현했을 뿐 아니라, 기존 모델 개발 비용의 10분의 1 수준으로 만들었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GPT 모델 대비 최대 30분의 1 저렴한 가격으로 API를 제공하며 빠르게 주목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고성능 GPU와 대규모 인프라에 대한 필요성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미국 기술주가 일시적으로 급락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광풍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많은 중국 서비스가 그러하듯 데이터 처리 방식이 도마 위로 올라간 것인데요. 경쟁 모델 대비 과도하게 개인정보를 수집한다거나, 수집된 데이터의 외부 유출 가능성이 제기된 것입니다.
결국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딥시크 서비스 사용 중단 조치를 내렸고, 저비용 개발이라는 주장 역시 실제로는 발표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투입됐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잇따르며 딥시크 열풍은 빠르게 식었습니다.
2. 앤쓰로픽 MCP : 에이전트 협업 표준 경쟁
지난해 11월, 앤쓰로픽은 모델 콘텍스트 프로토콜(MCP)을 공개합니다. 처음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잠재력을 알아본 개발자와 기업들이 하나둘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트렌드의 중심으로 부상했습니다.
MCP는 AI 모델이 외부 도구나 데이터를 호출해 스스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돕는 표준 프로토콜입니다. 마치 AI용 ‘USB-C 규격’처럼 다양한 서비스와 도구를 유연하게 연결할 수 있도록 설계된 규약이라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앤쓰로픽의 최대 경장사라 볼 수 있는 OpenAI마저 자사의 에이전트 SDK, ChatGPT 데스크톱 앱, API에 MCP 지원을 추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MCP는 사실상 AI 생태계의 새로운 표준 후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MCP가 AI 생태계의 핵심 기반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데요.
OpenAI의 경쟁사로 불리면서도 항상 한두 발짝 뒤처져 있던 앤쓰로픽이지만, 이번 ‘표준 경쟁’에서는 한 발 앞서며 앞으로의 시장 주도권 싸움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3. 스타게이트 : 스케일 법칙 한계를 넘기 위한 대규모 투자
ChatGPT 출시 이후 빠르게 치솟던 생성형 AI 성능 곡선이 최근 다소 둔화되는 분위기입니다. 여기에는 데이터와 자원을 많이 투입할수록 성능이 올라간다는 이른바 ‘스케일링 법칙’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경쟁 과열로 인해 학습 데이터 소모 속도도 급격히 빨라져, 데이터 고갈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생성형 AI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 온 OpenAI로서는 추격자들이 격차를 좁혀오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러한 흐름을 반전시키기 위한 카드가 바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입니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향후 4년간 총 5천억 달러를 투입해 미국 전역에 20여 개의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초거대 인프라 계획입니다. 소프트뱅크, 오라클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참여하며,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OpenAI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 역시 딥시크로 대표되는 중국의 기술 추격 속도가 심상치 않다고 보고, 스타게이트를 미국의 AI 주도권을 유지할 전략적 사업으로 판단해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거액이 투입되는 만큼 일각의 비판도 적지 않지만, OpenAI는 소프트웨어 최적화, 신규 칩 설계, 전력 효율 개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스케일링 한계를 돌파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4. SKT 해킹 사태 : 통신 보안 위기
2025년 4월, 한국 최대 이동통신사 SK텔레콤의 핵심 시스템이 해킹당해 통신 가입자 정보가 대규모로 유출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KISA 공동 조사단에 따르면, 해킹 악성코드는 2022년 6월경 최초 설치되었고, SKT 가입자를 식별하는 키값(IMSI) 기준 약 2,695만 건의 정보가 외부로 새나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SKT는 전 고객을 대상으로 무료 유심(USIM) 교체를 시행하고, 유심 보호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등 피해 확산 방지에 나섰습니다.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직접적 피해 사례는 없지만, 가입자들의 불안감과 유심 교체 과정에서의 피로감은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이번 사태는 산업 전반에 ‘통신망 보안’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국내 기업과 정부 모두 네트워크 보안 강화에 대한 투자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만든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5. 지브리 열풍 : 멀티 모달 AI 경쟁
지금은 다소 잠잠해졌지만, 한때 프로필 사진 대부분은 지브리풍 이미지로 사실상 도배되다시피 했습니다. 이는 ChatGPT가 제공한 지브리풍 이미지 생성 기능 때문인데요. 어떤 사진을 넣어도 꽤 그럴듯하게 지브리풍으로 변환해 주면서 열풍이 확산됐습니다.
샘 올트먼 OpenAI CEO는 지브리 열풍으로 인해 GPU가 녹아내리고 있다며 일시적으로 생성에 제한을 걸기도 했습니다. 과거에도 ChatGPT는 AI 서비스의 대중화를 주도해 왔지만, 이번 열풍을 계기로 다시 한번 대중적 관심을 폭발시키며 역대 최고 수준의 유료 가입자 수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편 구글도 2025 I/O에서 동영상 생성 모델 Veo 3를 선보이며 멀티모달 경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했습니다. Veo 3는 그동안 동영상 생성 모델들이 보편적으로 겪어왔던 물리적 움직임의 부자연스러움과 화질 저하 문제를 상당 부분 개선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텍스트, 이미지, 음성에 이어 동영상까지 아우르는 멀티모달 AI 경쟁이 본격적인 차세대 격전지로 부상하고 있는데요. 멀티모달 AI가 대중화되면 교육, 디자인,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새로운 창작 도구로서 자리매김할 전망입니다.
6. 애플 리퀴드 글래스 : AI보다 UX
2025년 6월 열린 애플 개발자 컨퍼런스(WWDC)에서 애플은 iOS 26과 함께 새로운 디자인 언어 ‘리퀴드 글래스(Liquid Glass)’를 선보였습니다. 이는 버튼·아이콘·위젯 등의 테두리와 배경을 유리처럼 반투명하게 처리해, 주변 환경을 반사·굴절시키는 시각 효과를 특징으로 하는데요.
애플 휴먼인터페이스 디자인 부사장 앨런 다이는 “우리는 기술과의 상호작용을 직관적이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에 집중해 왔다”며, 이번 업데이트가 역대 가장 광범위한 디자인 혁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최대 화두인 AI 기능에서는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발표한 ‘애플 인텔리전스’를 통해 AI 혁신에 나서는 듯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실체를 보여주지 못하며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기도 했는데요.
과연 이번에도 ‘목적 있는 미학’이라는 애플의 특유의 철학이 시장에서 통할 수 있을지, 아니면 AI 개발 경쟁에서 뒤처진 기업으로 평가받을지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7.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 : AI 골든타임
2025년 6월, 정부는 대한민국 최초로 대통령실 산하 ‘AI 미래기획수석’ 직책을 신설하고, 네이버클라우드 AI혁신센터장 하정우(48)를 초대 수석비서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 박사 출신인 하정우 신임 수석은 그동안 네이버에서 한국어 대형 언어모델(LLM) 개발을 이끌어 온 인물인데요.
대통령실은 이 직책이 국가 AI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 인공지능 연구개발 투자, 산업 생태계 육성, 국제 협력 전략 등을 총괄하게 될 것이라 밝혔습니다.

미래 국가 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축인 AI는 현재 미국이 주도하고, 중국이 추격하는 구도 속에 영국·프랑스 등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AI 3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한 번 격차가 벌어지면 쉽게 따라잡기 어려운 AI 산업 특성상 향후 3년이 사실상 골든타임으로 평가되고 있는데요.
하정우 수석은 ‘소버린 AI(자주적 AI)’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빅테크 의존도를 줄이고 자립적 AI 인프라를 구축하여 목표에 다가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민간 최고 기술 인력을 국가 거버넌스 최상층에 배치한 이번 인사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지만, 분명 시의적절한 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니, 2025년 상반기는 기술 발전의 명암이 공존했던 시기였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 혁신이 탄생하는 동시에 예상치 못한 문제들도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요. 대표적으로 지브리풍의 확산은 창작과 저작권 사이의 본질적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단지 하나의 놀이 문화로만 소비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사건들을 통해 얻는 교훈과 앞으로의 대응일 것입니다. 하반기에도 기술은 멈추지 않고 진화할 것이고, 그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텐데요. 테크잇슈는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이 기술의 흐름에 발맞춰 나아갈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
*위 글은 ‘테크잇슈’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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