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제는 서랍이라는 단어에서 출발했습니다.

관료제를 말하는 영어 Bureaucracy는 ‘서랍’을 뜻하는 bureau와 ‘통치’를 뜻하는 kratos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말 그대로 ‘서랍 통치’라는 뜻으로 ‘책상에 앉은 사람들에 의한 통치’라는 의미라고 해요.
관료제의 근간을 이루는 서랍 안은 ‘문서’와 ‘분류’가 핵심입니다. 책상에 앉아서 통치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적절히 요약하고 서로가 합의하여 약간의 주관성을 부여한 문서를 만들고, 이를 어떤 서랍에 넣을지 분류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관료들은 현실을 적절히 분류하고 나누어 질서와 규칙을 부여했습니다.
관료제는 규칙과 보존이 없던 야만의 시절을 끝냈습니다. 이 땅이 누구의 땅인지 서로의 기억에 의존해 다둘 필요가 없게 되었고,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경우 그 문제가 속한 서랍이 따르는 규칙을 적용해 적절히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서랍이 나뉘어지고 질서와 규칙이 중요해지면서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문서 속에 표현된 상호 주관적인 현실’이 더 중요해 진다거나, 담당자들이 각자가 관리하는 서랍 속의 질서와 규칙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문제는 회사에서도 발생합니다.
진짜 문제와 해결보다는 상호 주관적인 현실을 ‘어떻게 보고하고 문서로 남길까’에 집중하게 됩니다. 내가 보고하려는 내용이 이 서랍도 저 서랍도 아니거나, 이 서랍이기도 하고 저 서랍이기도 한 경우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이때 관료제는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서로가 타협하고 합의할 수 있는 주관적인 현실을 도출하고, 이 현실은 어떤 서랍에 넣어 분류해야 현재의 규칙에 맞을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되거든요.
대부분의 회사들이 커지면서 겪는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문서 속 상호 주관적인 현실이 아니라 실상을 파악하기 위한 시간과, 켜켜이 쌓인 서랍을 모두 비우고 지금의 현실에 맞는 규칙과 질서를 다시 만드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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