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가슴이 뛴다면 가야 할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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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몇 명이 모인 자리. 꼬리에 꼬리를 물던 이야기가 ‘설렘’이란 주제로 이어졌다. ‘요즘은 가슴 뛰는 일이 없다’는 한 친구에게 반대편에 앉아 있던 녀석이 술잔을 기울이며 던진 말.

“이젠 가슴이 뛰면 부정맥을 의심해야 해”

감성 에세이가 갑자기 메디컬 다큐로 장르가 바뀌며 모두 한바탕 웃었다. 직장에서나, 사생활에서나 가슴이 뛸 만한 일이 없는 아저씨들의 자조가 담긴 한마디였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던 0.00001 초도 안될 그 짧은 사이에, 씁쓸한 기운이 스친 것은 그저 기분 탓이었을까.

일찍 졸업한 친구는 90년대 중반에 취직했다. 늦어도 90년대 후반에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 모두 최소한 25년 이상은 사회인으로서 살아온 셈이다. 특히,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친구들은 진작에 그만뒀거나, 그렇지 않으면 슬슬 남은 기간을 계산하고 다음 행보를 준비하는 시기이다. 그런 이들에게 업무를 하면서 가슴이 뛰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모를 리 없다. 하지만 하루에 최소한 8~10시간 이상, 여전히 가장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자신의 직업을 기대감 없이 건조하게 대하고 있다는 자각은 왠지 모르게 우릴 팍팍하게 만든다.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가보면 우리는 어땠을까. 모두 꿈이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금융, 제조, 유통, 광고로 업종은 흩어졌지만 모두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는 사회생활을 시작했었다.

그 시절 가슴이 뛰는 건 미래에 대한 희망뿐 아니라 이성에 대한 설렘 때문이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이성을 보면 가슴이 뛰었다. 말 한마디 걸어보고 싶어서, 더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함께 하고 싶어서 마음이 두근거렸다. 한 때 가슴이 뛰는 미래와 이성을 향해 달렸던 우리가, 이젠 가슴이 뛰면 달려가야 할 곳이 병원이라니.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는 그 설렘의 흔적을 되돌아보게 하는 광고가 있다. 일본 리쿠르트의 TV광고.

迷ったら、ドキドキする方へ。
망설이고 있다면, 두근거리는 쪽으로.

어느 평범한 동네의 골목에서 시작한 카메라가 놀이터를 거쳐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다. 원테이크로 아파트의 집집을 스쳐서 베란다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는 여학생에게까지 이어진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 올지 알 수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의 마음만이 반응하는 그 두근거림은

당신이 발견한 당신만의 것.

누구와 비교하지 않아도 좋고

평가 따위 받지 않아도 좋고

당신이 두근거리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것이 중요한 거야.

Follow Your Heart

망설이고 있다면

두근거리는 쪽으로

당신의 가슴이 가리키는 곳을 향하라. 삶의 다양한 순간을 원테이크로 이어 보여주는 표현기법과 결정적인 클라이맥스에서 오디오를 오히려 없애는 파격적인 편집이 메시지를 강렬하게 남기는 수작이다. 이 영상을 만든 광고대행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주변의 목소리, 세상의 큰 소리가 아닌 내 목소리를 듣는 것, 내 마음의 두근거림을 믿는 것을 응원하고 싶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광고전문 잡지 브레인 2021년 10월호)

브런치를 막 시작했던 2022년 11월에 쓴 글에서도 거의 똑같은 카피를 소개한 적이 있다. 조니워커 블랙라벨의 TV광고에 나온 카피이다. 일본어 단어 하나가 다를 뿐 해석은 완벽하게 똑같았다.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https://brunch.co.kr/@gounsun/15 )

迷ったら、ときめく方へ。
망설이고 있다면, 가슴이 뛰는 쪽으로

조니워커의 광고에서 가슴이 뛰는 선택을 하라는 것은 인생의 방향에 대한 것이었다면, 리쿠르트의 광고에서는 ‘직업선택’이라는 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리쿠르트가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좋은 직장들을 찾아줄 테니, 당신은 가슴이 뛰는 선택을 하라는 메시지.  

광고의 약속대로 젊은이들이 가슴 뛰는 선택만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경기가 위축되면서, 가슴이 뛰는 일자리를 고를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지금의 청년들이 주변의 이야기에 흔들리고 싶어서 흔들리겠는가. 내 마음의 소리와 두근거림에 관심을 두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고 있겠는가.

가슴이 뛰는 건 다음 문제이고, 적절한 일자리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려움이 많은 때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난리다. 그렇지만, 구직자들에게 무조건 기준을 낮춰서, 취직 자체를 목적하라고 할 수만도 없다.


더 많은 청년들이 가슴 뛰는 선택을 위한 도전에 나설 수 있으면 좋겠다. 부딪혀보고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더 많은 것을 얻으며 성장하면 좋겠다. 비록 20여 년 뒤엔 가슴이 뛰는 게 부정맥일 때뿐이 될지라도, 그 시절에 할 수 있는 가슴이 뛰는 선택은, 그때가 지나면 좀처럼 하기 힘든 것이니까.

정규영의 더 많은 생각이 궁금하다면?

✅ 브런치 https://brunch.co.kr/@gounsun

정규영
글쓴이

정규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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