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쿠팡 랭킹순’ 검색 순위 조작과 직원 동원 리뷰를 문제 시 삼아, 쿠팡과 씨피엘비(CPLB)에 시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1,400억 원을 부과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과징금 이슈는 여러모로 업계에 상당히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선 제재 대상이 이커머스 시장 1위 플랫폼 쿠팡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고요. 과징금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점에서도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공정위 제재가 중요한 건, 이로 인해 업계 전반에 미칠 파급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번 발표가 나기 전부터 유통업계의 PB(Private Brand) 판매가 제약이 걸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기사화될 정도였고요. 그래서인지 공정위는 아예 보도 자료에 PB 상품에 대한 일반적인 규제가 아니며, 심지어 오프라인의 경우 상품 진열이 제한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을 아예 명시하기도 했습니다.
PB(Private Brand): 유통업체가 제조업체와 협력해 생산한 뒤 자체 브랜드로 내놓은 상품, 코스트코의 커클랜드, 이마트의 노브랜드가 유명하며, 쿠팡의 경우 탐사, 곰곰 등의 브랜드를 판매 중
더욱이 쿠팡이 매우 적극적으로 이에 항변하면서 이슈가 가라앉기는커녕 불이 더 붙고 있고 있는데요. 물론 원래도 쿠팡은 뉴스룸 내 ‘알려드립니다’ 코너를 통해 언론 보도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다만 이번 대처는 선을 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데요. 공정위 발표가 있던 당일,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로켓배송 서비스’가 불가능하다는 강수를 두었습니다. 6월 20일 예정된 부산 물류센터 기공식마저 취소하였고요. 다만 너무 예민한 반응에, 여론은 상당히 부정적이며, 그간 쿠팡이 옹호받던 것과 달리,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은 상당히 갈립니다. 대체로 양측의 논리가 모두 다 허술한 부분이 있으며, 공정위의 과징금은 과도하나, 이에 대한 쿠팡의 반박 역시 논점이 맞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이번 공정위 쿠팡 과징금 부과 이슈에 대해 주요 쟁점 별로 제 나름의 해석을 전달해 드리려 합니다. 명확한 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다 보니, 이번 기회에 한번 더 같이 고민해 보면서 더 나은 해답을 함께 찾아가 봤으면 좋겠습니다.
쟁점 1) ‘조작’인가 ‘진열’인가?
현재 공정위와 쿠팡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건, 검색 순위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드렸듯이 이번에 공정위가 문제 삼은 건, 검색 순위 알고리즘 ‘조작’ 및 임직원의 ‘조직적’ 구매후기 작성과 높은 별점 부여입니다. 일단 검색 순위를 임의로 정했다는 것 자체는 쿠팡 또한 부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둘의 입장이 갈리는 건, 공정위는 랭킹이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보기에 이러한 임의적 조정이 ‘조작’이라고 보는 반면, 쿠팡은 유통업계에서 흔히 하는 ‘진열’ 행위라고 여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러한 이커머스 플랫폼의 ‘상품 노출’ 관련해서는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에서도 여러 이견이 존재합니다. 비교적 최근 들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법적 소송에 들어가긴 했으나 이렇다 할 선례는 없는 상황이지요.
우선 공정위처럼 쿠팡의 행위를 불공정하다고 보는 쪽의 핵심 근거는 쿠팡이 입점 업체들의 상품 판매를 중개하는 동시에, 직매입과 PB를 통해 직접 판매하기도 하는 이중적 지위를 가졌다는 겁니다. 중개자는 공정해야 하는데, 수많은 판매자 중 하나인 자신을 더 우대한다면, 그건 공정하지 못한 경쟁 활동이라는 걸 지적한 겁니다. 여기서 쿠팡이 억울해하는 건, 왜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매장의 PB 상품 우선 진열은 문제가 아니냐는 건데요. 공정위는 이러한 항변에 대해 오프라인 매장은 통상 자기의 상품 만을 판매하고 있으므로 경쟁 사업자의 고객을 유인하는 경우는 발생할 수 없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판매 중개나 직매입 등 업태의 차이가 이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어차피 다 똑같은 자기 상품이라면, 왜 대형마트는 PB를 고객의 눈에 가장 잘 띄는 골든 존에 진열하고, 일반 제조업체들은 이를 싫어하는 걸까요. PB상품을 판매할 때 수익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한정된 진열 공간에 임의로 PB 상품을 우선 노출하는 건 당연히 어떤 업체에게는 피해로 돌아갈 수 있고, 모든 상품을 직매입하는 업태라 할지라도 결국 이중적 지위 논란을 온전히 회피할 순 없습니다.
어쩌면 쿠팡은 중개상품이든 직매입 혹은 PB상품이든 동일한 ‘자기 상품’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큽니다. 업체 간 계약 구조가 다를 뿐이지, 물건을 사는 고객은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며, 쿠팡 입장에서도 거래액 대비 취득하는 매출이나 수익률이 다를 뿐이니까요. 그렇기에 만약 중개상품 중에서도 쿠팡에게 수익이 더 돌아가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더 노출하려 할 겁니다. 이처럼 본질적으로는 같은 행위이기 때문에, 한쪽은 완전히 허용되고, 다른 쪽에서는 금지되는 건 공정하진 않다고 봅니다. 물론 공정위 보도자료에 자세히 설명된 것처럼 한눈에 진열된 매장을 확인할 수 있는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은 실질적으로 노출을 아예 제로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이러한 ‘진열’의 영향력이 클 순 있어서요. 보다 더 엄격한 기준이 온라인에 적용되어야 할 순 있을 것 같습니다.
쟁점 2) 어디까지 객관적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여기서 이어져 나올 수 있는 질문이, 쿠팡랭킹과 임직원 후기처럼 기업의 주관적 입장이 반영되는 것을 소비자 기만 혹은 불공정 경쟁 활동이라 봐야 하냐일 듯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커머스 플랫폼에서의 검색 노출 순위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무언가라고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많은 대중이 쿠팡을 비난하는 지점은, ‘랭킹에 대해 속았다’라는 인식 때문이긴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랭킹 자체가 플랫폼 사업자의 가치 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쿠팡이 하던 행위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다른 플랫폼에서도 대부분 하고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알고리즘을 만드는 주체가 쿠팡인데, 스스로 알고리즘을 조작했다는 프레임 자체가 사실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알고리즘 자체가 객관적이지 않아서가 문제인지, 혹은 쿠팡의 주관이 반영될 수 있다는 사실이 충분히 고지되지 않아서 문제인지 상당히 문제가 모호합니다. 검색 순위 자체는 본질적으로는 진열과 다를 바 없으며, 무엇을 앞에 내세울지는 쿠팡이 정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로켓 배송 상품이 아닌 경우, 노출 순위를 의도적으로 하락시킨다는 조건을 걸었다면, 이 또한 조작일까요? 이미 공정위는 이번 제재 발표 당시의 질의응답에서는 배송일 때문에 상위 노출 되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물론 쿠팡이 전혀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설사 업계의 관행이라 할지라도, 공정위 자료를 보면 확실히 쿠팡의 정도가 지나쳤다는 말이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블라인드 등 커뮤니티에서 내부 직원들에게서조차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공정위가 지적한 두 번째 문제, 임직원의 조직적 구매후기 작성과 높은 별점 부여 관련하여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물론 쿠팡의 주장처럼 높은 별점도 아니었고, 강제적인 것도 아니라 임직원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졌으며, 실제 후기 수가 전체의 극히 일부라고 하더라도요. 입점업체에게는 이를 금지하면서 자기 상품에는 후기를 작성케 하는 것까지 정당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와 같이 플랫폼들은 최소한의 공정성은 지켜야 하고, 선을 넘었다면 처벌받아 마땅합니다. 다만 문제는 공정위가 이를 판별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매우 복잡한 이슈이기 때문에, 이번처럼 쿠팡이 법을 어겼다고 단순히 결론을 내려 버리면, 이후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어떤 업체든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지금의 논리라면, 로켓배송 배지를 단다거나, 필터 값을 적용하는 것 또한 중개상품에 대한 차별일 수도 있고요.
그리고 동시에 쿠팡을 비롯한 플랫폼 기업들도 자정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실제와 달리, 이들 기업들은 마치 검색 순위 등이 마치 객관적인 것처럼 고객이 인식하게 하여 무형의 이득을 취해온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쿠팡 랭킹순’이 아니라 ‘쿠팡 추천순’ 같은 조금 더 주관성을 담아 표현하고, 보다 명확하게 이를 고지했다면 여론도 이렇게 부정적이진 않았을 겁니다. 과거와 달리 소비자가 오인하도록 하는 디자인 요소는 이제 다크패턴이라고 하여 점차 규제 대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쿠팡 등도 먼저 변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겁니다.
쟁점 3) 로켓배송 중단 발언은 과도한가?
그런데 이번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만큼이나, 논란이 되었던 건 쿠팡의 대응 방식이었습니다. 공정위의 발표가 있던 당일, 로켓배송 서비스가 중단될 수도 있다고 밝힌 것이 여론을 자극하였고요. 일부 언론에서는 ‘배 째라 식 엄포’, ‘고객을 향한 협박’이라고 이를 맹렬히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백번 양보해 쿠팡의 행위들이 문제 될 소지가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이 로켓배송 중단을 운운한 건, 아무리 그간 쿠팡을 응원해 왔던 고객들이라 한들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간 쿠팡의 전략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명확했습니다. 오직 최종 소비자에게 최대한의 편의성과 혜택을 보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확보한 시장 지배력을 토대로, 다른 이해 관계자들에게 최대한의 수익을 만들어 내겠다는 거였는데요. 그러다 보니, 시장 내 적들이 많았지만, 고객들의 열렬한 지지 아래 이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번처럼 여론의 지지를 잃는다면 앞으로 이어질 법정 다툼 과정에서도 불리해질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경한 기조를 이어가는 건, 그만큼 이번 이슈가 쿠팡 전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쿠팡은 로켓배송 자체로 돈을 버는 기업이 결코 아닙니다. 직매입 후 직접 배송하는 커머스 사업으로는 손해만 보지 않아도 다행이라 싶을 정도로 이익을 내기 어려운데요. 무료 배송과 무료 반품, 그리고 최저가 정책까지, 비용 구조는 무겁고 마진은 박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물류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동시에, 늘어난 거래액을 무기로 매입가를 낮춰서, 어떻게든 흑자를 만들어 왔지만 이후 수익 규모를 키우기 위해선 그 이상의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쿠팡이 집중하는 건 판매자 대상 리테일 미디어, 즉 광고 사업과 PB 브랜드 육성입니다. 전자가 추가적인 수익을 만드는 구조라면, 후자는 제조 마진까지 가져와서 무거운 비용 구조 이상의 수익을 만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번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는 이 2가지 사업 모두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쿠팡의 알고리즘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광고주의 지불 의향이 하락할 수밖에 없고요. PB 상품 판매도 향후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현재 로켓배송을 토대로 확장시켜 나가려던 중장기 계획이 일그러진 상황이라, 만약 이번 공정위 결정이 대부분 법원에서도 받아들여진다면, 대규모 투자 계획 등을 재검토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겁니다. 그렇다고 쿠팡이 문을 닫지 않는 이상 로켓배송을 진짜로 중단할 일은 없긴 하지만요. 물론 공정위가 지적했듯이 쿠팡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수익을 늘릴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그러려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보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먼저 만들어져야 할 겁니다.
오히려 지금이 적기일 수 있습니다
이번 공정위-쿠팡 갈등 사례는 보면 볼수록 복합적인 감정이 듭니다. 명확한 기준 없이 일단 제재를 가한 공정위와 잘못에 대한 조금의 반성도 없이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는 쿠팡, 일견 이해가 가면서도 현재의 대치 상황이 정말 갑갑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논란이 장기화된다면, 결국 유통업계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러한데요. 이미 쿠팡은 다른 회사들을 끌어들여 본인들의 방어 논리에 사용 중이고, 공정위는 애써 선을 그으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분리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 지켜보는 관계자들은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건 완전한 자율도, 그렇다고 강력한 규제도 하나 만으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완전한 자율은 독점의 폐해를 불러올 수 있고, 반면에 강력한 규제는 시장을 왜곡시켜 또 다른 역효과를 만들어 낼 테니까요. 그렇기에 자율과 규제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충분한 공론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현시점에 이렇게 이슈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 자체는 좋은 일일지 모릅니다. 지금까지는 아마존과 같은 완전한 지배적 사업자가 국내에 없었지만, 쿠팡이 지금처럼 성장한다면 앞으로 비슷한 입지를 구축할 가능성이 크고요. 이후에 시장에서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전에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는데요. 재판 과정을 통해 단지 판결로 승패를 가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 공정성과 관련하여 명확한 사회적 합의 및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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