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을 떠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연구모임을 통해 만난 분이었는데 사석에서 나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어디선가 나를 봤다는 말이었습니다. ‘거기 가지 않았냐’, ‘아니었냐’ 등 좀 안 했으면 하는 말들을 계속 던졌습니다. 옆에 다른 분들도 계셨고, 그런 불필요한 말보다는 다른 대화로, 공통의 이야기로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이후 그 분과는 연락하지 않습니다.
그가 나에게 던진 어떻게 보면 첫 질문이었던 샘이었습니다. 이제 편해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직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알아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서로의 속도를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게 잘 맞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기다려주는 게 맞다고 봅니다. 말을 하다 보면 밀어내거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심리적, 사회적 거리를 두는 것이죠.
어떤 사람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저돌적으로 밀어붙이기도 합니다. 마케팅은 ‘밀당’입니다.
제가 한 재단에서 진행하는 저녁모임에 참석했던 적이 있습니다. 국민대 윤호섭 교수님이 진행하는 강의였습니다. 대단히 인상적인 시간이었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그린’디자인을 가르치고, 지금도 꾸준하게 사람들을 만나며 ‘돌고래’ 퍼포먼스를 하고 계십니다. 봄, 가을에는 인사동 거리에서 윤호섭 교수님은 시간을 정해놓고 티셔츠에 환경관련한 이미지를 담아, 사람들로 하여금 지구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보호하자’, ‘뭐 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주입이 아니라 사람과 대화하는 매개체로 그림을 그리며, 소통을 합니다. 질문이 거창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도 기회가 되면 한 번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권합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둘레길 갤러리에서 열리는 디자인&디자이너 전시 시리즈 8번째 윤호섭 교수의 10가지 이야기
질문에 관한 글을 쓰면서 윤호섭 교수님을 떠올린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그 공간 속에 주고받는 질문과 답입니다.
오늘 인터뷰가 하나 있습니다. 면접관들이 또 어떤 질문을 할지 생각 중입니다. 대부분이 면접장에서 나올만한 질문이지만,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아차 하기도 하지만, 그 질문을 통해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좋은 질문은 상대가 생각하지 못한 자신의 잠재력을 일깨워 줍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인생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변에 있는 분들은 어떤 질문을 하고 있나요?
철학자 에릭 호퍼는 ‘길 위의 철학자’에서 이렇게 썼다. “언어는 질문하기 위해 창안되었다. 대답은 투덜대거나 제스처로 할 수 있지만 질문은 반드시 말로 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첫 질문을 던졌을 때부터였다. 사회적 정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할 충동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 아름다운 문장을 내 식으로 변형해 마음에 품고 있다. “에디터가 에디터다운 것은 질문을 던졌을 때부터다. 에디터의 커리어적 정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할 충동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
-67쪽, 최혜진의 <에디토리얼 씽킹> 중에서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첫 질문을 던졌을 때부터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못한 현실을 보면서, 질문은 없고 싸움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좋은 질문이 많아지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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