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플랜대로라면, A프로젝트는 무기한 홀딩(차마 취소한다는 말을 못 꺼냈다)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프로젝트 조정이 좀 필요해 보이네요.”
얼마 전의 일이다. 이번에 새로 제작해야 하는 디자인 템플릿에 대한 미팅을 진행 중이었는데, 유관부서에서 앞으로의 서비스 마케팅구좌 운영 플랜에 대해 얘기해 주셨다. 근데 이 플랜을 들어보니… 팀 내에서 지금 진행 중이던 A프로젝트 관련 구좌의 운영을 대폭 축소하려 한다고 하더라. 운영 방침을 이렇게 바꿔보자! 는 결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앞으로 유예 기간을 거쳐서 수정된 플랜대로 운영한다고 알려줬다.
새로 제작하는 디자인 템플릿에 대한 얘기는 매끄럽게 진행되었으나, 미팅이 끝나고 나서 팀장님과 나는 바뀌는 운영 플랜과 관련된 A프로젝트 진행에 대해 얘기했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지난달부터 특정 이벤트페이지를 고도화하는 A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음.
2. 마케팅 구좌 운영 플랜이 바뀌면서, A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될 이벤트 페이지 운영을 축소 또는 Fade out 할 계획이라고 함.
3. A프로젝트 무기한 홀딩(거의 뭐… 취소), 해당 이벤트 페이지는 유예기간 동안 유지보수만 진행
결론만 말하자면, 우리가 진행하고 있던 A프로젝트는 중단 결정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이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라서 더 깊게 들여다보기 전에 중단된 것이라고나 할까(눈물).
점점 더 빠르게 바뀌는 마케팅 플랜,
그에 따라 계속 바뀌는 고도화 프로젝트
나의 디자인 프로젝트와 결과물에 큰 애정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지만, 이런 일은 마케팅 필드에서는 꽤 흔한 일이다. 마케팅 활동이 서비스의 매출과 성과를 부스팅 하는 역할을 하는 만큼 성과의 상황과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운영 방침이 자주 바뀐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그 바뀌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 듯하다. 때문에 그 주기에 맞춰서 디자인 프로젝트도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나 같은 경우, 마케팅 활동에 대한 디자인 업무요청을 1주일 단위로 받고 있다. 1주일 단위로 받는 정기 요청, 그리고 짧게는 하루 내에, 길게는 2-3일 내에 긴급 제작 및 수정 건에 대응하는 상시 요청이 대다수다. 아마 이 업무들이 마케팅 디자인 업무의 70~80%를 차지할 것이다.
여기에 중요도가 높거나 유관부서가 많은 업무는 이와 별개로 업무가 진행된다. 빠르게 제작하고 단기간에 라이브 되는 평소 업무와는 다르게, 작업물 수가 많거나 고민을 많이 해봐야 하는 디자인이거나 또는 서비스기획 부서나 개발 부서가 함께 봐야 하는 경우 업무량은 많아지고 그만큼 업무 기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업무는 마케터와 디자이너가 어느 정도 일정 협의를 하고 진행하는 편이다.
프로젝트 업무들은 짧으면 1달, 길게는 2달 넘게 진행된다. 업무 특성상 2달 넘게 매달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이 정도면 마케팅 디자인에서는 꽤 긴 시간 동안 진행하는 업무에 속한다.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고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서는 앞으로의 마케팅 방향에 더 중요도를 두는 [미래 그리기]에 가깝다.
고도화 프로젝트는 마케터나 디자이너 한쪽에서 먼저 과제 발의를 하지만, 마케팅 플랜에 따라 움직이는 디자인인 만큼 마케터와의 협의가 없다면 진행하기 어렵다. 어디까지나 [디자인 고도화]이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먼저 과제화 하고 진행하는 것이 좋지만, 마케터와 충분한 협의가 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결국 마케팅 활동에 쓰일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케팅 플랜이 바뀌면 아무리 프로젝트성 업무라고 해도 유동적으로 취소되거나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프로젝트 취소를 받아들이는 자세
글을 쓰다가 떠오른 게 있다. 분명히 내가 예전에 이런 비슷한 얘기를 브런치에서 했던 거 같은데?? 생각해 보니 [디자인 가이드의 딜레마]의 내용과 비슷한 것 같다. 그때에는 오랜 시간 고민하고 만든 가이드가 단 하루 만에 바뀐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던 거 같은데, 이번에는 그 프로젝트가 갑자기 취소되는 건에 관련해서 쓰고 있다. 이런 상황은 지난번에 얘기한 디자인 가이드도 해당될 수 있다. 열심히 배너 가이드를 만들고 있는데 갑자기 그 배너를 안 쓴다고 하면?? 어..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돌이켜보면 이에 대한 나의 반응은 2가지였다. 상황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거나, 현타를 세게 맞거나.
A) 이 상황을 받아들인다.
상황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데에는 몇 가지 엉뚱한 생각도 들어있다. 대체로 짧은 템포의 업무에 익숙한 탓에 긴 호흡의 프로젝트 업무를 버거워했는데, 그 버거운 업무가 갑자기 취소되었다고 한다면 “오히려 좋아!”를 시전 할 수도 있다. 나를 옭아맨 이 프로젝트에서 드디어 벗어나는구나! 이젠 숨 좀 쉬자! 하는 그런 마음. 물론 이렇게 취소되는 상황을 자주 좋아하면 절대 안 된다. 디자이너에게 프로젝트 업무는 새로운 도전이고 나의 포폴에 넣을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루트인데, 이 프로젝트가 취소된다고 해서 내 마음은 즐겁겠지만 이 상황이 내 커리어에 좋진 않다.
대체로 이런 상황을 자주 맞닥뜨린 직장인들은 프로젝트가 취소되는 상황에 오히려 덤덤한다. 아마도 실망할 시간에 빠르게 다른 프로젝트 건을 찾거나 다음 업무를 준비하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프로젝트가 취소된다고 해서 내 업무가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B) 세게 현타를 맞는다.
대체로 모든 디자이너들은 이런 반응일 것이다. 정말 프로젝트에 애정을 가지고 나의 업무시간을 모두 바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였는데, 갑자기 취소된다고?? 이 프로젝트가 나의 커리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이 상황에 크게 실망할 것이다. 물론 회사라는 조직에서 대놓고 이 실망감을 드러낼 수는 없겠지만, 아무리 숨긴다고 해도 은근히 그 아쉬움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대체 뭐가 잘못되어서 잘 진행되던 프로젝트가 취소된 걸까. 프로젝트 취소가 작업자의 멘탈에 좋은 영향을 미치진 못한다. 중요한 것은 B의 상황에서 A의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업무를 시작할 자세가 되어있어야 한다. 현타가 지속되면 그 영향이 다른 업무에도 미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프로젝트 취소가 작업자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은 없어 보인다. 프로덕트 디자인이나 브랜드 디자인은 모르겠지만, 마케팅 디자인에서는 프로젝트 업무가 어그러지는 경우가 꽤 있다. (물론 이전에 말한 것처럼 프로젝트가 무사히 끝나도 계속 바뀐다) 아마 오래 일한 디자이너라면 프로젝트 취소는 한번 이상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결국 이 프로젝트 업무 취소를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관건이다. 당연히 실망하고 아쉬워하겠지만, 이를 얼마나 빠르게 떨쳐내고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이번 마케팅 디자인 프로젝트가 취소되는 경험을 오래간만에 겪으면서 크게 깨달았다. 특히나 이러한 프로젝트성 과제를 만들어야 하는 연차가 되면서 더 생각이 많아진다. 이번에 프로젝트 취소를 겪었는데, 이다음에 이렇게 취소되지 않으려면 어떤 주제를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할까. 프로젝트 함께 했던 친구들에게는 이걸 보완해서 포폴에라도 넣어보라고 해야 하나 등등.
그렇지만 아쉬움과 불안감은 어쩔 수 없이 남는 것 같다. 틈만 나면 자주 바뀌는 마케팅 플랜,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사업 목표, 잦은 변경과 취소에 따른 불투명한 우리 조직의 미래… 아마 이다음 프로젝트를 한다 해도, 작업하는 마음에서 10% 정도의 불안감이 존재할 것이다. 프로젝트는 끝나도 계속 바뀌기도 하지만, 끝나기도 전에 취소되는 것도 빈번하다. 우리 모두 불안감과 추진력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취소되더라도 실망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할 준비를 해야 한다. 나 역시 다음 과제 업무를 수립할 때에는, 그나마 취소될 확률이 적은 걸로 주제를 잡고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마쳐본다.
HYO의 더 많은 글이 궁금하다면? 👉 https://brunch.co.kr/@designerh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