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3대 강국, 정말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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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정부는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출범시키며 2027년까지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난 지금, 한국의 AI 경쟁력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반도체, AI 모델, 인재 육성이라는 세 가지 주요 분야를 점검해 보겠습니다. 


AI 반도체 : 가능성과 한계

AI 시대의 반도체 경쟁력은 크게 세 가지 요소에서 결정됩니다. 로직 메모리(GPU 등) 설계, 초고속 메모리(HBM), 그리고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입니다.


GPU는 AI 모델이 크고 복잡해짐에 따라 방대한 연산을 빠르게 처리하는 필수 반도체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엔비디아가 가장 큰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팹리스(칩 설계)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엔비디아의 의존도가 심화되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자체 개발이나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국내 기업에게도 기회가 생기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리벨리온, 사피온, 퓨리오사AI 등 스타트업이 이 분야를 이끌고 있습니다. 특히 리벨리온과 사피온은 합병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했고, 퓨리오사AI 역시 메타, TSMC 등 글로벌 기업들의 인수와 투자 제안을 받으며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AI의 일상화로 중요성이 커진 저전력 고효율 반도체라는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칩 설계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일부 벤치마크 결과에서는 동급의 엔비디아 GPU 대비 높은 효율성을 보이면서 성장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https://zdnet.co.kr/view/?no=20241202082537https://www.yna.co.kr/view/AKR20250227090900017


GPU가 빠른 연산을 가능하게 한다면, HBM은 GPU가 요구하는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공급하는 메모리 반도체(D램)입니다. 이 분야는 SK하이닉스의 강세가 돋보입니다. 특히 HBM3E와 같은 차세대 기술 개발에서 앞서가며 엔비디아의 파트너로 낙점받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한편, D램의 전통 강자인 삼성전자 역시 이 부분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두 기업의 경쟁을 통해 한국의 경쟁력은 자연스럽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4218086642074784&mediaCodeNo=257&OutLnkChk=Y


이처럼 GPU 설계와 HBM 분야에서는 각각 가능성과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한국이지만, 반도체 생산을 담당하는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상황이 녹록지 않습니다. 삼성전자가 TSMC에 이어 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격차가 점차 커지고 있는데요. 특히 생산 못지않게 후공정(AI 반도체용 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이 부분에서 우위를 가진 TSMC를 따라잡기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https://www.fnnews.com/news/202502241825504612


AI 모델 : 혁신과 현실의 간극

한국이 보유한 초거대 AI 모델은 총 11개로, 미국 민간연구단체 에포크 AI(EPOCH AI)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미국(64개), 중국(42개)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모델들은 네이버(3개), 삼성(3개), LG(2개), KT(1개), 엔씨소프트(1개), 코난테크놀로지(1개)가 개발했으며, 이를 통해 한국의 AI 개발이 주로 대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50214150900017?input=1195m


최근 글로벌 AI 시장을 흔든 딥시크와 그에 앞서 AI 시대를 열어젖힌 OpenAI는 모두 스타트업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물론 구글과 마이크로스프트, 메타 등 대기업들도 AI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지만, 혁신의 중심에는 여전히 스타트업에 있다는 의미인데요.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의 스타트업이 AI 시장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물론 한국이 처한 환경적인 요인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OpenAI와 딥시크는 각각 마이크로소프트와 모회사인 하이플라이어의 지원을 받아 모델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미국은 글로벌 투자의 기회가 풍부하고 중국은 탄탄한 내수 시장이 있지만, 한국은 두 측면 모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AI 인프라 지원을 통한 스타트업 육성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양적·질적 측면에서 모두 부족한 실정입니다. 


숫자로 살펴보면 상황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2023년 기준, 한국이 보유한 H100(고성능 GPU)은 총 2,000개에 불과한 반면, 미국의 메타는 단일 기업만으로도 15만 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내년 상반기까지 1만 8천 개의 고성능 GPU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글로벌 경쟁 환경을 고려할 때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수준입니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2GP20RI926


한 가지 긍정적인 신호는 딥시크의 등장입니다. 딥시크는 ChatGPT에 버금가는 AI 모델을 약 600만 달러(약 88억 원) 수준에 개발했다고 발표했는데요. 물론 실제 개발 과정 전체에서 더 큰 비용이 들어갔을 거란 분석이 우세하지만, 과거 AI 모델 개발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던 점을 고려하면, 비용 부담이 상당히 줄어든 것임은 분명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영상 AI 분야에서 글로벌 인정을 받으며 엔비디아의 투자를 유치한 트웰브랩스나, 뛰어난 SLM 개발 역량으로 투자 혹한기에도 천억 원 규모의 투자를 확보한 업스테이지와 같은 유망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있는 만큼, 시의적절한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한국이 글로벌 AI 시장에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https://it.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3092126563https://www.ddaily.co.kr/page/view/2024041614121184417


인재 육성 : 가장 느린 변화

중국이 AI 분야에서 지속된 성장세를 기대할 수 있는 요인은 바로 체계적인 인재 육성시스템입니다. 딥시크의 CEO ‘량원평’과 개발의 주역인 ‘뤄푸리’가 중국의 순수 국내파라는 사실이 이를 방증하는데요. 실제로 AI 논문 수에서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서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1081https://www.imaeil.com/page/view/2024070712590891791


반면, 한국은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종로학원의 조사에 따르면, 내신 1.06등급 이내로 대학에 합격한 학생 125명 모두가 의약학 계열로 진학했다는 결과가 있는데요. AI와 반도체가 그 다음으로 선호되는 분야이지만, 이 분야의 우수 인재들마저 해외 유학으로 눈을 돌리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https://www.mk.co.kr/news/society/11078670


대학 입학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실무형 인재 양성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중소/중견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업조차도 전문 AI 엔지니어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AI 모델 개발과 데이터 처리, 클라우드 운영 및 서비스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역량을 갖춘 인재가 필요한데, 국내 대학과 교육 기관에서는 아직 이런 수요에 걸맞은 커리큘럼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도 과거에 비해 해외 취업 기회가 확대되면서 국내외 급여 격차로 인한 인재 유출을 방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https://www.mk.co.kr/news/editorial/11229654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AI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체계 개편과 전문 트랙 확대, 그리고 해외 인재 유치 등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여전히 현장의 체감도는 낮은 상황입니다. 해외 인재 유치뿐 아니라 국내 AI 교육 확대, 현장 중심의 교육 프로그램 구축 등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큰 상황입니다. 


결론 : 화수분 AI가 필요한 한국

지금까지 AI 경쟁력을 결정짓는 반도체, 모델, 인재 등 세 가지 주요 축을 살펴보았습니다. 반도체와 모델 분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인재 육성 부문에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아 보입니다. 특히 인재 육성은 AI 경쟁력의 세 가지 축 중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됩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한국 프로야구의 ‘두산 베어스’는 인재 육성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두산은 ‘화수분 야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주축 선수가 이탈하더라도 탄탄한 육성 시스템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인재가 등장해 공백을 메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강팀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시스템이 갖춰지고 나면, 적은 비용으로도 우수한 선수를 꾸준히 공급할 수 있어 효율적인 팀 운영도 가능합니다. 


한국의 AI 산업도 이와 같은 ‘화수분 AI’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처럼 글로벌 투자 기회가 풍부하지도, 중국처럼 강력한 내수 시장이 존재하지도 않는 한국으로서는 인재 육성만이 가장 확실한 전략입니다. 우수한 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이들이 국내에서도 충분히 인정받으며 연구와 개발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환경을 조성하지 못한다면, 2027년 AI 3대 강국으로 성장하더라도 그 지속성이 오래 유지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인재의 해외 유출을 방지하고 이를 통해 국내 기술력 향상과 해외 투자 유치를 동시에 이루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한국은 지속 가능한 AI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 글은 ‘테크잇슈’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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