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다 파는 시대의 종말, 새로운 탄생!
(출처: 캔바)
동대문은 오랜시간 한국 패션의 출발지이에 중심지였습니다. 2000년 초반 친구들과 동생과 자주 다녔던 밀리오레, 두타를 생각해보면 정말 한국의 패션이 얼마나 아시아 트렌드를 선도했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였죠. 항상 전세계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였고, 사람에 휩쓸려 가면서 쇼핑을 했던 기억, 그리고 하루종일 돌아다니면서 쇼핑을 하다 집에 오면 발이 퉁퉁 붓는데도 ‘싸게 잘샀다’ 라는 생각에 흐뭇했던 지난 날이 떠오릅니다.
사업자 입장에서 2000년대 초반 동대문은 사입과 택갈이를 통해 온라인 쇼핑몰 창업붐의 현장이었고, 스타일 난다와 같은 기업들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죠. 하지만 패션의 중심이었던 동대문이 10여년 넘게 쇠퇴와 정체를 반복하면서 상당수 점포들이 문을 닫고 휘청이면서 예전의 아성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출처: 스카이데일리)
빌딩에 들어가면 빼곡히 점포들이 들어서고 항상 시끌벅적했다가 절반이상의 점포가 빠져 을씨년 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동대문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습니다. ‘옷을 떼어다 파는곳’ 이라는 동대문 이미지가 최근 k패션 인큐베이터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인데요. 스몰 브랜드가 탄생하고 성장하며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내일의 꿈을 위해 달려가는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통계로도 살펴볼 수 있는데요. 2023년 기준 국내 의류, 신발 상표 등록수는 1만 1067건으로 2014년(4167건) 대비 약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국내 의류 제조 업체 수는 약 10% 감소했습니다. 이 의미는 생산 공장의 상당수가 해외로 빠져나간 동시에 브랜드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한국, 동대문은 브랜드가 콘텐츠가 되고 콘텐츠가 자산이 되는 시대에 들어서면서 아이디어, 스토리,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디자이너가 스몰브랜드를 만들어 나가면서 동대문의 새로운 엔진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스몰 브랜드의 등장은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전세계적으로도 소규모 브랜드 창업은 눈에 뜨는 변화입니다. 미국은 미 특허청 자료를 보면 2023년 기준 의류 브랜드 창업 관련 신규 등록 상표구사 약 6만 3천건에 이르며, 전년 대비 9.4% 증가한 수치입니다. 그리고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쇼피파이 보고서에 따르면 신규 등록된 패션 브랜드 중 70% 이상이 5인 이하 규모의 창업팀이며, 초기부터 sns 기반 콘텐츠 마케팅을 진행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스몰 브랜드, 팬덤으로 성장하다
과거의 성공 공식을 버린 스몰 브랜드들이 동대문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량 생산 대신 그들만의 고유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세계관을 기반으로 빠른 기획력, 팬덤과 커뮤니티 기반을 중심으로 브랜딩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마뗑킴의 경우 k디자이너 브랜드의 대표 주자로 성장했고, 명확한 디자인 아이덴티티, 여성 중심의 타깃, 팬덤과 리미티드 전략으로 완판 브랜드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주변에 젊은 직장 여성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마뗑킴이 어디에 특가 떴다. 창고 개방한다 이야기가 들리면 난리인데요. 제 바로 주변에서도 마뗑킴이 제법 인기라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출처: 마리끌레르)
오디너리 피플은 디자이너 정형철의 브랜드인데요. 뉴욕 패션위크 진출 이후 한국 내에서도 인지도를 빠르게 높이고 있고요. 동대문 기반 샘플링과 커스터마이징의 강점을 활용해 빠른 회전율을 확보하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벳 필드의 경우 빈티지 야구 유니폼 무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고, 동대문의 원단을 기반으로 하여 기획, 생산, 판매까지 원스탑 솔루션으로 실행하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모호의 경우 건축에서 영감을 받은 구조적 디자인을 기반으로 시즌 컬렉션 없이 ‘작은 시리즈’ 단위로 제품을 공개하면서 매니아층의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모호 역시 동대문 기반의 인프라와 SNS 활용으로 팬덤을 만들어 나가고 있죠.
(출처: 패션비즈)
그 외 2000아카이브스, 가든 익스프레스도 동대문 기반 성공 사례로 손꼽힙니다. 2000아카이브스는 독특한 실루엣과 빈티지 무드로 뉴진스, 에스파, 르세라핌 등이 착용하면서 한국,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고요. 가든 익스프레스의 경우 무신사 W 컨셉에 입점해 있으면서 자연에서 영감 받는 컬러감, 소재 활용이 인상적입니다.
(출처: 패션비즈)
이러한 브랜드들은 공통점이 명확합니다. 단순한 제품이 아닌 브랜드 자체가 하나의 미디어, 하나의 콘텐츠 플랫폼으로 작동하는 거죠.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구심점에 ‘무신사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사실 무신사의 경우 국내에서 온라인 패션 플랫폼 1위를 차지하는 것 외에 동대문 인프라를 통해 신진 디자이너의 인큐베이팅을 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스몰 브랜드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단순히 디자인 감각에만 달려 있지 않습니다. 동대문에는 샘플 제작, 원단 구매, 피팅 모델 섭외, 사진 및 영상 촬영, 커머스 연계 플랫폼 까지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모든 인프라가 모여 있는데요.
(출처: 한경)
무신사 스튜디오는 이러한 모든 인프라를 활용하기 위해 지난 2018년 공유 오피스를 열었고요. 패션 스타트업의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동대문종합시장 4층에 2호점을 오픈하면서 동대문 내의 창작자 생태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죠.
(출처: 무신사)
이러한 공간에는 디자이너, 모델, 포토그래퍼, 유튜버가 한데 모이고, 현장에서 원단을 바로 고르고, 자리에서 바로 콘텐츠를 촬영하며 무신사 플랫폼에 등록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무신사는 이러한 신진 디자이너들의 액셀러레이팅을 통해 새로운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제품을 입점 시키면서 함께 성장하고 있죠. 2023년 기준 무신사의 연간 거래액은 약 1조 8천억원이며 입점 브랜드수가 8천개 이상입니다. 그리고 이 중 약 60%는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입니다.
신진 디자이너의 상당수가 무신사 스튜디오 또는 동대문 기반 창업팀이라는 점은 무신사가 브랜드 탄생 플랫폼으로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죠.
이러한 속도와 밀도는 중국의 C커머스가 절대 모방할 수 없는 독창성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 무신사 스튜디오 출신 브랜드 중에 다수가 글로벌 진출을 시도하고 있고요. 미국, 일본, 동남아 소비자 사이에서 감성있는 K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마케터의 시선
이와 관련하여 ‘옷을 떼다 판다’ 라는 동대문의 오래된 서사는 더이상 통하지 않아 보입니다.
요즘의 패션 소비자는 매장보다 스토리텔링을, 유통보다는 팬 커뮤니티를, 광고보다는 숏폼 콘텐츠를 중심으로 브랜드를 소비합니다.
(출처: 캔바)
이러한 변화는 단지 마케팅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브랜드가 움직이는 엔진 자체가 달라졌음을 의미하죠.
그래서 동대문은 이제 쇼핑을 하기 위한 공간에서 브랜드와 팬덤이 태어나는 창작 플랫폼으로서 의미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동대문은 어릴적, 제 20대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공간입니다. 몇 천원짜리 칼국수를 먹으면서 허기를 달래며 6-7시간 넘게 걸어 다니면서 쇼핑을 하고 5만원 내외의 예산으로 옷을 사면 비닐 봉투 잔뜩 들고 올 수 있었던 낭만이 있는 공간입니다.
동대문이 다시 한번 패션 트렌드의 중심으로 떠오르길 바라봅니다.
#동대문 #스몰브랜드 #마뗑킴 #오디너리피플 #마케터의시선 #리브랜드연구소
이은영의 더 많은 콘텐츠는
생산적이고 세상의 변화에 발 맞춰 함께 변신중인 것 같아 너무 좋아보입니다. 과거의 음침한 동대문은 상상도 안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