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센스있다”는 표현은 금지입니다ㅎㅎ>
제가 일터에서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표현들이 몇 가지 있는데요. “센스”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 표현을 안 쓰려고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단어에 함축된 의미와 상황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미즈노 마나부가 센스에 대해 “집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최적화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 표현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의 용례는 너무 포괄적이고 뭉툭한 단어로 남아 있습니다.
리더가 되면서 “센스”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였어요. 팀원들에게 피드백을 줄 때 구체적으로 주고 싶었습니다. “센스 있어요.”라는 표현은, 왠지 동료들의 각기 다른 강점과 기여한 행동을 쉽고 편하게 퉁치고 넘어가는 느낌이랄까요.
주니어 때도 제가 생각하기에 일 잘하는 선배들의 강점을 관찰하고 흡수하면서 성장했는데요. 돌이켜 보면 동료들의 장점을 구체화해서 보려고 했던 태도가 성장에도 도움이 되었던 거 같아요.
주변 동료의 어떤 행동과 말에 감탄할 때, 고마울 때, “센스”라는 표현은 잠깐 접어두면 어떨까요? 일 잘하는 동료를 “센스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신에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면 어떨까요? 내가 왜 그들의 행동이, 그들이 “센스”있다고 느끼는지, 그 포인트가 뭔지 한 번 더 들여다보고 문장화해 보는 거예요.
“오~마침 궁금했는데, 역시 OO님 센스!”하고 넘어가는 대신에, “OO님은 제가 궁금해하기 전에 반발짝 빠르게 먼저 진행 상황을 잘 공유해 주는 거 같아요. 그게 모든 사람이 다 갖춘 역량은 아니거든요. 진행 상황을 알기 쉽게 요약 정리해서 말해주는 구조화 능력과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뛰어나요.”라고 피드백을 줄 수 있어요. (또는 이런 옆 사람을 보고 배울 수 있어요.)
“마침 이 부분 도움이 필요했는데 어떻게 딱 알고.. 역시 OO님 센스!” 대신에, “OO님도 바쁘실 텐데, 항상 이렇게 필요할 때마다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OO님은 배려심도 좋고, 팀원들의 업무 전반을 잘 살피는 시야도 좋고, 본인이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태도도 강점인 거 같아요. OO님은 협업 능력이 정말 좋아서, 동료들이 OO님과 같이 일하는 걸 좋아할 거예요. 우리 팀이 성과에 쫓기면서도 팀 문화가 좋게 유지될 수 있는 건 OO님 같은 동료가 있기 때문이에요.”
“OO님의 문서, 슬랙, 이메일은 정말 센스있는 거 같아요!”라는 말 대신에, “OO님의 공유 내용은 대충 읽어도 이해가 쉬워요. 왜 그런지 생각해 보니, [결과 > 분석 내용과 인사이트 > 다음 액션]을 구조적으로 딱 짚어주더라고요. 저도 OO님의 공유 방식을 차용해서 정리하니, 단순히 구조만 바꾸었을 뿐인데 저도 제가 한 업무에 대해 더 명확하게 파악하게 되었어요.”
뭐 이런 식으로 표현해 보는 겁니다. 표현은 못하더라도 속으로는 생각해 볼 수 있어요. 동료의 강점을 “센스”라고 말하는 대신, 이렇게 구체화하다 보면 그 강점을 캐치해서 자기화할 수도 있고, 그러면서 동료의 강점을 내 성장 자양분으로 삼는 거죠. 그러니 그저 동료의 강점을 “센스 있다.”라고만 하고 넘어가는 건 정말 “센스 없는” 일인 겁니다.
김영하 작가는 학생들에게 “짜증 난다”라는 표현을 못 쓰게 한다고 해요. 너무 많은 감정들이 “짜증 난다”는 표현 하나로 뭉뚱그려지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섬세함을 훈련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합니다. 오래 전에 대화의 희열에서 봤는데, 제가 “센스”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이유와 똑같습니다. 주니어 때나 관리자가 되었을 때나 저에게는 좋은 훈련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적극적으로 권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