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은 꼭 포함해주세요.”, “트윈 침대면 좋겠어요.”, “혼자 이용 가능한가요?”
여행을 상담 하다 보면 이처럼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하죠. ‘이 요구들을 다 반영해서 만들면, 예약으로 이어지겠지.’ 그래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조식 포함, 트윈 침대, 1인 예약 가능, 말 그대로 고객이 원한 구성을 모두 반영한 상품이었죠.
그런데 예약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고객도, 다른 누구도 이 상품을 클릭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조건을 충족시켰음에도 불구하고요.
🖥️정성 데이터의 함정: 고객의 말과 행동은 왜 어긋날까?
이럴 때 기획자는 묻게 됩니다. “고객의 말대로 다 넣었는데, 왜 결국은 가격 때문일까?” 이 질문에는 중요한 착각이 숨어 있습니다. 정성 데이터(고객의 말)만으로 의사결정을 내린 것이죠.
고객이 상담 중에 말하는 조건들은 분명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기준입니다. 그러나 실제 선택의 순간은 조금 다르게 작동합니다. 상품을 고를 땐, 그 조건이 얼마나 편리하고 유용한지가 아니라, ‘이 상품이 내 여행의 분위기와 맞는지’를 먼저 따지게 되거든요.
지금의 여행자는 단순히 조건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아닙니다. 자신의 시간을 의미 있게 채우려는 ‘의미 중심 여행자’에 가깝습니다. 이들에게 조식 포함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이 여행이 나에게 어떤 아침을 선물할 것인가’라는 질문일 수 있어요.
같은 조식 옵션이라도 누군가는 편한 여행을, 누군가는 가성비를, 또 누군가는 여유로운 아침을 기대하고 있었을 겁니다. 고객은 이걸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그려놓은 맥락과 의도가 있어요.
여행자는 상품 설명서를 다 읽지 않습니다. 조건표를 비교하지도 않아요. 대신 이미지나 가격, 구성의 전체 분위기를 보고 단박에 판단하죠. ‘아, 이건 나랑 맞는다’ 혹은 ‘이건 좀 애매한데…’ 그러니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과, 마음에 들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닻 내림 효과: 기능을 채우는 순간, 설렘은 빠져나간다
“트윈 침대면 좋겠어요”라는 말은 단순히 침대 개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편하게 쉬고 싶다’는 바람이죠. “조식은 꼭 포함해주세요”라는 요청 역시, 단순히 식사 유무보다 ‘아침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고 싶다’는 소망에 가까워요.
기획자가 이 뉘앙스를 놓친 채 표면적 개인화에만 집중하면? 상품은 ‘조건은 많은데 왜인지 끌리지 않는’ 구성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가 요금을 안내합니다. 조식 포함이면 얼마가 추가되고, 트윈 침대로 변경하면 얼마가 더 들어간다고요. 하지만 그 설명을 듣는 순간, 고객은 망설입니다.
가격이라는 수치가 늘어날수록, 처음 기대했던 여행의 설렘이 점점 사라지거든요. 이는 ‘지불의 고통’ 현상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399,000원짜리 항공권과 호텔이 포함된 상품을 내걸었을 때, 한 고객이 상세히 문의를 해왔어요. 조식은 포함되는지, 트윈 침대는 가능한지, 현지 투어가 포함되는지를 물어봤죠. 그래서 이 고객을 위해 조건을 모두 포함한 599,000원의 풀옵션 상품을 새로 기획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고객은 예약하지 않았어요. 다른 고객들도 이 상품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요.
문제는 ‘닻 내림 효과’였습니다. 고객의 기억엔 여전히 ‘399,000원’이라는 닻에 고정되어 있었던 거예요. 기능이 늘어난 만큼 가격도 올랐지만, 기대치는 이미 처음 본 가격에 고정되어 있었던 겁니다. 이후 모든 추가 비용은 합리적 개선이 아닌 ‘지불의 고통’으로 다가왔고, 고객 여정의 매끄러운 흐름을 단절시켰습니다.
고객은 가격을 보며 단순한 숫자만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 가격대에서 자신이 어떤 여행을 하게 될지를 상상해요. 즉, 가격은 상품이 설계한 ‘느낌의 총합’에 대한 신호입니다.
그래서 기획자가 전달하고자 한 분위기와, 고객이 받아들인 인상이 어긋나면 가격은 오히려 방해 요소가 돼요. 고객의 “비싸다”는 말은, 사실상 “이건 내가 기대한 여행이 아니야”라는 말일 수 있거든요.
가격이 비싸서가 아니라, 내가 상상한 만족과 어긋날 때, 고객은 지갑을 닫게 됩니다.
👨💻데이터 기반 검증: A/B 테스트로 가설을 증명하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성 데이터와 정량 데이터의 교차 검증이 필요합니다. 고객의 ‘말’은 중요한 정성 데이터이지만, ‘행동’ 데이터(클릭률, 페이지 체류 시간, 이탈률 등)와 함께 분석해야 해요.
예를 들어, “고객은 A를 원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B 옵션이 포함된 상품 페이지에서 더 오래 머물렀다”는 식으로 말과 행동의 간극을 정량적으로 확인하는 것이죠.
더 나아가 A/B 테스트를 통해 가설을 검증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넣은 상품’ 하나만 출시할 것이 아니라, 가격과 구성이 다른 A안(가성비 중심)과 B안(가심비 중심)을 동시에 테스트하여 시장의 진짜 반응을 확인하는 거예요.
감에 의존하는 기획이 아닌,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으로 나아가는 구체적인 방법론입니다.
✈️선택받지 못한 상품은 실패일까?
모든 조건을 반영하고도 예약이 일어나지 않은 상품. 정말 ‘필요하지 않아서’였을까요? 아니면, 그 상품이 필요한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던 것뿐일까요? 기획자로서는 때로 고객보다 먼저 욕망을 상상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당장의 클릭을 하지 않지만, 그 상품이 마음에 남아 ‘언젠가 나를 위한 여행’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요.
상품을 고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남게 만드는 일. 그것이 여행을 기획하는 사람의 진짜 역할 아닐까요?
“예전에 인터넷에서 이런 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누굴 좋아할지 몰라서, 그냥 다 넣었다.” SM의 다인원 아이돌 그룹을 두고 회자되던 밈이죠.
이 농담에는 실제로 현명한 전략이 담겨 있어요. 누군가에게 완벽하진 않아도, 여럿에게 괜찮게 느껴지는 ‘다채로운 설계’.
여행상품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객이 ‘조식’을 원한 맥락이 ‘여유’였는지 ‘편리’였는지를 완벽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면? 오히려 여러 해석이 가능한 여백을 남겨두는 것이 현명할 수 있어요.
조식 하나도 ‘편리함’을 원하는 사람에겐 간편함으로, ‘여유’를 원하는 사람에겐 느긋함으로, ‘가성비’를 원하는 사람에겐 합리성으로 각자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층적으로 설계하는 거죠.”
그래서 바래봅니다. 몇 월 몇 일에 얼마인지, 조식 포함 여부 같은 일괄적 상품 디스플레이를 넘어서요. 고객의 일상을 상상하고, 그 여백을 채워주는 진짜 큐레이션의 시대가 오기를…
우리는 결국 조건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속에 여행을 시작하게 하는 사람이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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