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이는 모니터의 커서를 보며 나만의 집을 짓습니다.
창작이 왜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것이 생각의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살고 있는 집에서 나의 진짜 모습을 감출 수 없듯, 창작이라는 집은 나조차도 모르는 나의 생각을 구석구석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줍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만 가지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둥둥 떠다니는 생각과 관념 만으로 나를 쉽사리 알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생각하는 것은 쉽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나른한 주말 아침 이불속에서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수만 가지 생각을 어렴풋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비슷한 생각을 하고, 너와 나의 생각이 비슷하다고 건너 짚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은 쉽지만 창작은 어렵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쉽게 떠오르는 흐릿한 나의 생각과 관념들을, 텅 빈 공책이나 도화지로 옮겨 이것을 빼곡히 채우는 일은 어렵습니다. 마치 상상만 하던 집을 현실로 옮기는 것처럼요. 머리 속의 집을 현실로 옮기려면 수고스럽더라도 벽돌을 직접 하나씩 쌓아 올리고, 발품을 팔며 적절한 가구도 찾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생각이 단단해집니다. 직접 벽돌을 쌓아 올리면서 생각이 고쳐지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고, 불필요했던 부분도 발견해, 결국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멋진 공간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나는 달리기를 좋아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달리기가 어떤 의미이고 그것을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충만한 경험인지, 공책 한 페이지에 ‘달리기’라는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일은 어렵습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음악의 모습은 무엇이고 그 모습이 왜 나에게 특별한지, 텅 빈 도화지 공간에 ‘음악’이라는 가구를 채워 넣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게 직접 쌓아 올리고 채색한 글과 그림이라는 창작물은 내가 달리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가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조차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멋진 집이 됩니다.
그 집의 모습은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입니다. 똑같이 달리기를 사랑하고,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요. 같은 생각과 관념에서 출발하더라도 수고스레 벽돌을 하나씩 옮겨 쌓고, 빈 틈을 찾아 딱 맞는 가구를 찾고 배치하다 보면 각자의 글은 서로 다른 구조를 가지고, 각자의 그림은 각자의 색깔을 가질 테니까요. 누군가는 생각이 잘 이어지지 않는 어려운 부분을 단순하여 직관적인 구조로 집을 지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 어려운 부분에 더 치밀하고 튼튼한 뼈대를 만들어 넣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생각을 창작으로 옮기면, 창작자가 누구인지 훤히 알아차릴 수 있는 공간을 보듯 나를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지은 글이나 그림을 보며, 그 사람을 훨씬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요.
부족한 글솜씨나 그림 실력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창작 실력은 사람들마다 천차만별이니까요. 글이나 그림으로 창작할 수 없다면 그것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무심한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진심으로 무언가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창작자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저 ‘창작’이라는 일이 스스로를 더 깊게 알아차리는데 좋은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 때, 생각의 벽돌을 옮기고 빈틈에 가구를 배치하며 직접 써 보거나 그림을 그려보면 알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을 보며 그 사람을 잘 알게 되는 것처럼요.
우리도 모르는 우리의 진짜 모습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을 할 때가 아니라, 시간을 내어 조금 깊게 고민하며 어려운 일을 할 때 나타난다고 믿습니다. 창작자들이 오늘도 텅 빈 공책과 도화지 앞에서 고심하는 이유는 꿈이 깃든 나만의 집을 짓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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