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의 마음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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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시작하기 전에 ]

매일 나갈 데가 있고 만날 사람이 있던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을 때, 저는 겨우 쉰두 살 즈음이었습니다. 

부모나 상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던 시간을 마감하고, 이제는 삶의 당당한 주인으로 우뚝 설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시간은 짧고, 이내 삶은 허망해졌습니다. 

혼자 다른 세상에 남겨진 것처럼 외롭기 그지없었습니다. 오십이 되면 하늘의 뜻을 알고 중심을 잡을 수 있다고 했던가요?

천만에! 저는 오십이 넘어서도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한 불안과 고독에 이리저리 흔들렸지요.

분명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점점 변화하게 되고 분명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앞서서 그런 상황을 맞이한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지를 생각한다면 좀 더 좋은 준비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오십의 마음 사전은 무엇인지 한 번 들여다보도록 합시다. 


 Ⅰ. 나를 알기 위한 수업료

세상에서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때로는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서 더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상황을 땅 속 줄기 캐기에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처음 파낸 줄기에 붙은 감자가 썩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나를 알려하지 않는 행동은 그 뒤로 나올 알맹이도 썩었을까 봐 두려워하며 그냥 땅속에 두는 것과 같은 행동입니다. 내 마음 알기를 시도했다가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매번 이렇게 도망만 치다 보면 가장 밑바닥에 붙어 있을지도 모를 튼실한 알맹이와 만날 기회를 영영 잃게 됩니다. 보고 싶은 부분만 보려고 든다면 내 속 사람의 온전한 모습을 평생 모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나이테를 보려면 나무를 베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밑동을 잘라 내는 아픔을 감내해야 나만의 역사가 담긴 마음테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잘린 단면에 드러난 마음테를 들여다보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내 마음이 마주하는 일입니다. 

어느덧 50개 이상 새겨진 마음테에는 수많은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신나고 힘찬 에너지의 흔적도 있지만, 수치스럽고 혐오스러운 모습도 남아 외면하고 싶을 수도 있겠지요.

나를 알기 위한 첫걸음인 내 마음과 마주하기는 때로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자기 자신과도 잘 지내려면 설령 고통스러운 순간이 이어지더라도 내 마음과 마주하는 자기 탐색의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그 시간의 힘듦은 나를 알고 배우기 위해 치르는 수업료입니다. 


Ⅱ. 나만의 나무를 새롭게 심을 때

인생의 절반을 앞만 보고 달리다 갑자기 멈추면 문득 스스로가 낯설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를 때,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가장 우울해집니다. 

역할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자녀의 대학 입시 뒷바라지에 가진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은 부모는 자식의 대학 기숙사에 짐을 옮겨 주고 오는 길에 허망해집니다. 이런 까닭에 오십 즈음의 역할 상실은 자기 상실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자기 상실감은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정체성을 혼미하게 만듭니다. 

자기로부터 소외당한 사람은 나라는 주체가 없어지므로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두문불출하며 고립을 자초합니다. 스스로 우울의 방 속에 들어앉아 문을 잠가 버리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우울의 방 대신 나만의 동굴에 들어가 봅니다. 그 동굴에서 스스로를 만나고, 그 후에는 세상 속 광장으로 나와야 합니다. 광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그들의 눈동자를 응시하고 그 풍경을 통해 나를 알아 가야 합니다. 

나만의 동굴에 들어갔다 광장으로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내 마음과 마주하고 다른 사람의 눈동자를 응시해 보십시오. 이를 되풀이하다 보면 누구보다 내 마음테를 잘 해석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생길 겁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깨우친다면, 이제 남은 인생에서 키워 나갈 한 그루의 나무를 새롭게 심을 때입니다. 


[ 글을 마치며 ]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더 이상 젊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물론 마음만은 젊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마음만 젊을 뿐 외모는 이미 중년의 모양새를 갖게 되었다. 

매일 자신과 마주하다 보면 자신은 자신의 나이를 착각하게 되지만 실제로는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럴 때에 육체적으로만 나이를 먹고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예전보다 못한 상황이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마음이 들 때에 나를 한 번쯤 돌아보게 해주는 책인 것 같아 좋았다. 무엇보다도 오십이 되는 내가 가장 크게 고민하고 있는 것은 자유로운 시간이 날 때에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가 이다. 

초중고 대학을 나오면서 매일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면서는 점점 더 자유로운 시간에 대한 갈망이 높아지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시간이 나게 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가장 크게 한다. 

하릴없이 휴식을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휴식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보람차게 보낼 때에 진정한 휴식이 되는데 그런 것을 잘 못 찾고 있는 듯하다. 언젠가 책에서 봤을 때 은퇴 후 나의 삶을 잘 알고 싶다면 현재의 주말을 상상해 보면 된다는 말이 있었다. 

주말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향후 은퇴 후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일이라는 뜻이다. 지금 내가 주말에 가장 많이 하는 일은 독서를 하고 그것을 정리하는 일이다. 그러면 은퇴 후에 독서를 많이 한다는 말이 될 수 있는데 한 편으로는 바람직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인가에 대한 의문점이 생기게 된다. 

결국 아직 진정으로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정확하게 찾지 못했다는 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뭐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어렸을 적에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좋아했는지를 떠올려 보자.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서 호기심을 옮겨가면서 다양한 것들을 배워보는 것에 시간을 많이 쏟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일의 대부분은 그다지 생산적인 일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결국 생산적이지 못한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인데 취미 활동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결국 제자리라고 생각이 들기는 한다. 좀 더 다양한 것들을 해보고 그중에서 무엇을 좋아할지 혹은 그 과정 자체를 좋아하는지 고민해 봐야겠다. 

결국 나의 문제가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참고 도서 : 오십의 마음 사전 (강현숙, 차봉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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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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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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