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2025년 09월 24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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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옆만 고집하는 패션 매장
여기, 패션 기업치고는 특이한 플레이를 하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론칭 1년 반 만에 전국에 매장 130개를 열었지만, 서울 매장은 단 두 곳뿐. 대부분의 매장은 공장 밀집 지역이나 도보 접근이 어려운 외곽에 자리해 있죠. 여기에 티셔츠는 5천 원대, 바지는 1~2만 원대, 아우터는 3만 원대부터 시작하는 파격적인 가격까지 더해진 이곳. 이미 ‘남자들의 다이소’로 입소문이 난 작업용품 판매점, 바로 ‘워크업’입니다.
사실 기묘한 님이 워크업을 분석해 보라고 추천하기 전까지, 저 역시 이 브랜드를 전혀 몰랐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워크업의 주요 타깃은 산업 현장의 작업자들이고, 저는 전형적인 사무직이니까요. 주변 지인들도 대부분 워크업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워크업은 빠르게 성장 중입니다. 오픈 1년 반 만에 130개 가까운 매장을 열었고, 매장당 연매출이 평균 20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는 워크업이 본래 타깃인 작업자층을 확실히 잡았고, 더 나아가 가성비 소비층과 캠핑족 같은 인접 고객층까지 성공적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뜻이죠.
실제로 워크업 매장을 들여다보면, 의류 비중이 높은 저가 작업용품점에 가깝습니다. 입지나 고객 타깃 모두를 고려했을 때 ‘공사판 버전 다이소’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이 워크업을 운영하는 트레이딩포스트가 ‘패션 대기업’ 대명화학의 자회사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꽤 놀랐습니다. 패션 브랜드가 공장 옆에 매장을 낸다고?
저는 패션을 전공했다가 창업 씬으로 흘러들어온 사람이기에, 패션 업계 사람들에게는 ‘핫하다’는 이미지와 ‘있어빌리티’에 대한 집착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워크업은 그 정반대의 전략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브랜드가 가능했을까 궁금해졌고, 론칭 배경을 살펴보니 납득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워크맨' 한국 버전이 탄생하기까지
워크업의 운영사 트레이딩포스트는 2013년 의정부에서 ‘고릴라캠핑’이라는 매장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브랜드는 코로나 시기 캠핑 열풍을 타고 2021년에는 매출 900억 원대 기업으로 성장했고, 2022년 대명화학에 인수되죠. 하지만 이때가 분기점이었습니다. 2021년까지 이어지던 성장세가 2022년부터 꺾이기 시작했거든요. 즉 트레이딩포스트는 캠핑용품 외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했고, 마침 대명화학에 인수된 타이밍과 맞물려, 그 대안으로 내놓은 브랜드가 바로 워크업이었던 겁니다.

워크업 덕분에 트레이딩포스트는 2023년을 기점으로 다시 반등할 수 있었습니다
워크업은 일본 워크웨어 브랜드 ‘워크맨’을 벤치마킹한 브랜드였습니다. 의류 비중이 높아 기존 캠핑용품 기업이 독자적으로 전개하기엔 쉽지 않은 콘셉트였죠. 대명화학이라는 모회사의 자원이 없었다면, 애초에 시도조차 어려웠을 겁니다.
실제로 방교환 대표가 워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대명화학 권오일 회장이 ‘워크맨’ 관련 자료를 건네며 시장 조사를 권했던 일이었다고 합니다. 즉, 패션 기업의 노하우와 공산품 유통 마인드가 절묘하게 맞물리며 가능했던 조합이었던 셈이죠.
결국 ‘패션계의 다이소’인 워크업은, 대명화학의 패션 DNA와 고릴라캠핑이 쌓아온 박리다매형 운영 전략이 결합된 결과물입니다. 워크업의 행보가 기존 패션 브랜드들과 사뭇 다른 이유는, 브랜드를 전개하는 주체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고요.
방 대표가 여러 인터뷰를 통해 반복해 강조했듯, 워크업의 핵심은 바로 ‘공산품 마인드’였습니다.
워크업,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워크업의 전략은 일본의 ‘워크맨’과 거의 유사합니다. 워크맨은 1982년 시작된 일본의 작업복 브랜드로, 내구성 좋은 제품을 바탕으로 라이프스타일까지 확장하며 일본의 국민 브랜드로 성장했는데요. 그 유니클로를 위협한다는 평가까지 받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2024년 기준 워크맨의 매출은 1752억 엔(약 1조 6486억 원)에 달하죠.
과연 워크업은 워크맨의 어떤 전략을 벤치마킹했고, 그것이 한국에서는 어떻게 작동했을까요?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① 고객: 떠오르는 블루칼라
[일본 워크맨의 전략]
워크맨은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았습니다. 이들은 장비를 회사에서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작업복도 금방 닳기 때문에 반복 구매가 필수였죠. 자연스럽게 매장 방문이 잦아지고 충성도 높은 고객층이 형성되었습니다. 이후 워크맨은 이러한 ‘기능성 제품’ 기반의 브랜드 이미지를 바탕으로, 아웃도어 취미층과 가성비 소비층까지 타깃을 넓혀갔습니다. 워크웨어 포지셔닝으로 대형 브랜드로 성장한 대표 사례라 할 만하죠.
[한국 워크업의 전략]
워크업의 핵심 타깃 역시 작업자 계층입니다. 제품군, 가격, 유통 방식 모두 이들을 중심으로 설계됐고, 여기에 캠핑족과 가성비 소비자까지 흡수하며 ‘남자들의 다이소’라는 별칭까지 얻었습니다. 특히 기존 패션 업계에서 접근이 어려웠던 블루칼라 시장을 개척한 점은 대명화학 입장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방교환 대표의 말처럼, ‘패션이 아닌 공산품’으로 옷을 바라보는 고객층은 전통적인 패션 문법만으로는 절대 도달하기 어려웠을 테니까요.
② 가격: 패션이 아닌 공산품
[일본 워크맨의 전략]
워크맨의 또 다른 특징은 ‘저렴한 가격’입니다. 이는 워크맨의 ‘시나이(하지 않는)’ 경영 철학과 연결됩니다. 유행을 좇지 않아 제조비용을 줄이고, 정가 판매로 가격 신뢰를 확보했으며, 과도한 서비스를 줄여 인건비를 낮췄죠. 반품 없는 거래 조건으로 납품가를 낮추는 등 기존 일본 산업계 관행도 깨뜨렸습니다. 모든 상품의 원가율을 63%로 고정한 것도 주효했는데요. 이처럼 ‘기능성’과 ‘저렴함’을 동시에 잡은 것이 워크맨의 핵심 경쟁력이었습니다.
[한국 워크업의 전략]
워크업도 ‘가성비’를 핵심 무기로 삼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방교환 대표의 ‘공산품 마인드’와 유통 경험입니다. 그는 패션 산업의 마진율이 지나치게 높다고 보고, ‘완사입 + 저마진 + 빠른 회전’ 전략을 고수해 워크업의 마진율을 크게 낮췄습니다. 한 매체에 따르면 워크업의 판매가는 원가 대비 1.8배 수준으로, 일반적인 패션 브랜드의 4~5배보다 훨씬 낮은 수준입니다.
둘째는 대명화학 계열사와의 유기적 연결입니다. 워크업은 자체 브랜드 외에도 50개 이상의 브랜드가 입점한 편집숍이며, 이들 대부분은 대명화학 산하 또는 기존 협력처입니다. 상품 기획부터 생산, 납품, 유통, 판매까지 대명화학 생태계가 직접 관여하는 구조 덕분에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거죠.
이처럼 공산품처럼 만든 옷을 공산품처럼 파는 전략은 ‘패션계의 다이소’라는 별칭에 잘 어울립니다. 최근 ‘5,000원 플리스’를 앞세운 다이소와 진짜 경쟁 구도가 펼쳐질 날도 멀지 않아 보이네요.
③ 유통: 공장 노동자 곁으로
[일본 워크맨의 전략]
워크맨은 2025년 기준 1,051개 매장을 운영하며, 오프라인 유통망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습니다. 주로 주차가 쉬운 교외 지역에 매장을 열고, 1,700종의 품목을 구비해 ‘출근 전 5분 쇼핑’이 가능하도록 매장 레이아웃을 표준화했죠. 온라인 주문 비중이 높아지는 시대에도, 워크맨 온라인 주문의 66%가 여전히 오프라인 픽업일 만큼 매장 기반 충성도는 여전합니다.
[한국 워크업의 전략]
워크업도 비슷한 유통 전략을 펼칩니다. 매장은 공장 밀집 지역과 외곽 위주로 배치돼 있으며, 이는 작업자의 출근 동선과 차량 이동 경로를 고려한 결과입니다. 서울 매장이 단 두 곳뿐인 것도 이 때문인데요. 그마저도 가산디지털단지와 성수, 모두 공장 지역이죠 ‘서울공화국’이라 불리는 한국에서 서울을 후순위에 둔 전략은 오히려 더 과감하게 느껴집니다.

다른 패션 브랜드들과 달리 매장이 딱 서울 지역에만 비어 있는 게 상당히 흥미로운 포인트입니다
온라인 판매도 우선순위는 아닙니다. 워크업은 공식 홈페이지가 있지만, 구매 기능 없이 카탈로그용으로만 운영됩니다. 이는 워크맨의 ‘시나이 경영’과 닮아 있죠. 남들 다 가는 서울, 남들 다 하는 온라인, 모두 ‘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하지 않던 결정’을 가능케 한 것
워크업은 올해 말까지 200개, 궁극적으로는 500개 매장을 전국에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매장당 연 매출 20억 원, 총매출 1조 원 규모의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포부죠. 만약 워크업이 불황형 소비 트렌드를 등에 업고 성장해, 워크맨처럼 국민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된다면, 대명화학의 ‘워크맨 벤치마킹’은 매우 성공적인 실험으로 기억될 겁니다.
혹자는 워크업을 두고 단순히 ‘워크맨 따라 했으니 잘 됐겠지’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워크맨은 이미 1980년대부터 존재해 온 오래된 성공 사례고, 패션 업계가 그것을 몰라서 못 따라 했던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워크업의 세부 전략을 뜯어보면 볼수록, 이 브랜드의 등장은 대명화학과 트레이딩포스트라는 이질적인 두 기업의 만남 덕분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역량이 맞물려, 서로에게 없던 것을 채워주고 있던 것은 더 살려준 결과. 그렇게 ‘패션계의 다이소’가 등장할 수 있었던 거죠.
무엇보다 대명화학이 트레이딩포스트를 인수하면서 얻은 건, ‘시나이 경영’이라는 철학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이 아닌 현장, 트렌드가 아닌 제품 수명, 고마진이 아닌 빠른 회전. 옷을 ‘패션’이 아닌 ‘공산품’으로 보는 순간, 고객도, 가격도, 유통도 모두 ‘그전엔 하지 않던 결정’이 가능해졌습니다.
어쩌면 이미 포화 상태인 시장에 새로운 것을 들고 나올 때 필요한 것은 오직 ‘남들 다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각오’뿐이지 않을까요?
글쓴이 소개 - 윤작두
한때 IT 기자로 일했습니다. 당연하지만 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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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윤문 | 기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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