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주 사이에 OpenAI를 중심으로 수백 조원의 돈이 오갔습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두고 설왕설래가 벌어졌는데요. 그 설전의 내용이 흥미로워서, 저만의 방식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수익성 없는 기업, 그런데 줄 서는 투자자들
OpenAI는 신기한 기업입니다. 비영리기관으로 출범한 만큼, 투자자 입장에서 단순히 수익성만을 보고 선택하기엔 매력이 크지 않습니다. 2019년 일부 구조가 바뀌면서 수익을 배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긴 했지만, 여전히 투자 대비 수익은 제한적입니다.
게다가 설립 이후 지금까지 막대한 R&D와 인프라에 투자를 이어오며 흑자는커녕 천문학적인 적자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오라클 같은 거대 기업들의 투자를 하겠다며 번호표를 뽑고 줄을 서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뭘 보고 OpenAI에 '베팅'을 하는 걸까요?
표면적인 이유는 분명합니다. 기술적 리더십, 시장 선점, 그리고 미래 성장 가능성. OpenAI는 ChatGPT를 통해 생성형 AI 시대의 문을 연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이며, 그들의 기술은 이미 전 세계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OpenAI가 미래 AI 생태계의 핵심 플랫폼, 즉 과거의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믿음'에 베팅한 것인데요. 그러나 이 설명만으로는 여전히 설득력이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합법적 카르텔, 현대판 자본 연금술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거대한 자본을 가진 기업들이 서로를 부풀리며 가치를 만들어내는 '합법적 카르텔'이 꾸려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최근 오라클과 엔비디아가 얽힌 계약과 투자 사례는 그 작동 방식이 꽤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지난 9월 10일, 오라클 창업자 래리 앨리슨의 자산은 단 하루 만에 100조 이상 증가했습니다. 잠시이지만, 일론 머스크를 제치고 세계 최고 부자 자리에 오르기도 했는데요. 오라클의 주가가 전일 대비 30% 이상 급등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식이 상승한 배경에는 OpenAI이 5년 간 약 3,000억 달러, 한화로 약 400조 원에 달하는 클라우드 계약 소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천 억 원은 흔히 들려 감각이 무뎌지기도 했지만, 400조 원은 한 나라의 국가 예산에 버금가는 수준입니다. 참고로 2025년 한국 정부의 예산이 약 673조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데요. 막대한 적자를 내고 있는 OpenAI가 어떻게 이 거대한 계약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궁금증의 끝에 엔비디아가 등장합니다. OpenAI에 최대 1,000억 달러(약 140조 원)를 투자하겠다는 소식과 함께 말이죠. 이 투자금의 명목은 Open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있지만, 이는 동시에 OpenAI가 오라클에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하는 담보가 돼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퍼즐 조각. 오라클이 OpenAI에 AI 컴퓨팅 자원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요? 바로 엔비디아의 AI 칩입니다. 결국 엔비디아의 돈은 OpenAI를 거쳐 오라클로 흘러가고, 최종적으로는 다시 엔비디아로 돌아오는 순환고리가 완성됩니다.
스타게이트로 완성되는 연결고리
이 거대한 자본의 연결고리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서 정점을 찍습니다. OpenAI 주도로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2029년까지 최대 5,000억 달러가 투입될 예정인데요. 이 프로젝트에는 오라클의 참여와 투자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AI 인프라 사업인 스타게이트에도 역시 엔비디아의 AI 칩이 필요합니다. OpenAI는 이 칩을 직접 구매하는 대신 리스(임대) 방식으로 도입해 초기 비용 부담을 줄이고, 남은 자금으로 추가 투자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하는데요. 여기에 사용되는 자금 역시 엔비디아의 투자금에서 비롯됩니다.
이런 형태는 자본의 먹이사슬 최상단에서 꽤 자주 보이는 전략입니다. A가 B의 미래 가치에 투자하고, 이 소식만으로 B의 기업 가치가 폭등합니다. B는 부풀려진 가치를 기반으로 C와 천문학적인 계약을 맺고, C의 기업 가치 역시 상승합니다. C는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다시 A의 제품을 구매하면서, A의 기업 가치 또한 치솟습니다. 부가 순환하는 고리 속에서 세 기업은 서로의 가치를 키워 올리는 거죠.
구분이 필요한 환상과 현실
투자자들이 OpenAI에 베팅하는 이유는 단순히 AGI라는 장밋빛 미래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은 OpenAI가 '카르텔'의 핵심 연결고리이자, 미래의 약속을 현재의 자본으로 바꾸는 '연금술사', 그리고 AI 패권 전쟁의 전략적 요충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허공에서 만들어진 환상은 아닙니다. 각 기업이 실제로 막대한 자본력과 검증된 기술력을 갖추고 있기에 가능한 전략입니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AI를 둘러싼 화려한 담론이 언제나 두 개의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는 실제 기술적 진보와 구체적 성과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시장이 만들어내는 기대와 미래 시나리오입니다.
이 이중 구조를 이해하면 우리가 취해야 할 접근법도 명확해집니다. AI 거품론과 성장론이 팽팽히 맞서는 지금, 'AI의 미래'라는 비전에서 어디까지가 검증 가능한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투자 논리에 기반한 전망인지를 구분하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기술과 자본이 만들어내는 급격한 변화 속에서 진짜 기회와 과대포장된 위험을 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 글은 '테크잇슈'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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