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2025년 10월 29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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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새끼를 키워 보려 합니다


모바일 세탁·수선 서비스 ‘런드리고’로 알려진 의식주컴퍼니가 100억 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그런데 투자자가 재밌습니다. 세탁기를 만드는 LG전자죠. 런드리고의 초기 모토가 “집안에 세탁기가 없는 그날까지!”였다는 걸 떠올리면, 세탁기를 파는 기업이 여기에 투자했다는 사실이 꽤 아이러니합니다.


포인트는 런드리고가 아니라 LG전자에 있습니다. 런드리고는 오랜 적자로 투자처를 가릴 상황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결국 ‘선택한 쪽’은 LG전자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로 모입니다. LG전자는 무엇을 보고, 가정용 세탁기를 ‘대체’하겠다는 서비스에 베팅했을까요?




B2B, 고객 경험, 그리고 데이터


LG전자 관계자는 이번 런드리고 투자를 두고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재무적 투자가 아니라,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한 전략적 투자”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그 결정의 구체적인 배경을 외부에서 모두 알 수는 없지만, 공개된 발언과 최근의 행보, 그리고 시장의 흐름을 종합해 보면 세 가지 키워드로 이유를 짚어볼 수 있습니다. B2B, 고객 경험, 그리고 데이터입니다.




① B2B


지난해 8월, LG전자는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을 위한 네 가지 전략 중 하나로 ‘B2B 가속화’를 선언했습니다. 2030년까지 전체 매출에서 B2B 비중을 45% 수준까지 확대하겠다는 포부도 밝혔죠. B2B 사업은 소비자 대상(B2C) 사업보다 시장 변동성에 덜 민감하고, 한 번 궤도에 오르면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런드리고는 세탁 솔루션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실험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LG는 북미에서 1·2위 세탁 솔루션 기업에 세탁기를 공급하며 B2B 영역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는 면에서 더욱 그러하고요.




② 고객 접점


요즘 기업들이 가장 중시하는 키워드는 ‘고객 경험’입니다.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고 제품의 강점을 알리기 위해 오프라인 공간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죠. 하지만 가전은 워낙 고가이면서 구매 주기도 길어, 고객이 실제로 체험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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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무인 세탁소 '런드리24'는 LG전자 세탁기와 건조기를 홍보하는 일종의 광고 매체 역할을 맡게 될 겁니다


이번 투자는 그런 한계를 보완해 줍니다. 런드리고 이용 고객은 세탁 서비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LG 세탁기와 건조기의 성능을 경험하게 되고, 더 나아가 무인 스마트 세탁소 ‘런드리24’를 통해서는 직접적인 체험까지 할 수 있습니다. 결국 LG는 이번 투자를 통해 제품을 경험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접점을 확보한 셈입니다.




③ 데이터


마지막으로, LG전자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은 바로 데이터입니다. 가전은 판매 이후 고객의 사용 행태를 직접적으로 파악하기 어렵지만, 런드리고는 고객의 세탁 주기·품목·이용 시간 등 실질적인 생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데이터는 단순한 이용 정보가 아니라, 제품 개발과 서비스 확장으로 이어질 인사이트가 됩니다. 예컨대 세탁기 기능 개선뿐 아니라 유지보수 주기 예측, 세제 추천, 세탁 효율 최적화 등 다양한 비즈니스로 확장될 수 있죠.


결국 이번 투자는 ‘세탁기 제조업체의 역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고객과 더 가까워지려는 LG의 장기 전략에 가깝습니다.




고객과 만나야만 합니다


셋 중에서는 단기적으로 B2B 확장의 효과가 가장 즉각적일 겁니다. 바로 돈을 벌어다 줄 거니까요. 다만 장기적으로는 고객과 직접 만나며 데이터를 축적하는 일이 더 큰 도움이 됩니다. 이제는 고객과 접점을 만들고 소통하는 브랜드만이 살아남는 시대이기 때문이죠.


갈수록 제품 기능만으로 차별화의 벽을 세우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고객의 사랑을 얻고, 꾸준히 대화하며 관계를 쌓는 브랜드가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이 흐름은 산업을 가리지 않습니다. B2B 기업 팔란티어가 성수에서 팝업스토어를 열고, 일반 대중과 만나며 굿즈까지 선보인 이유도 같습니다. 장기적으로 팬덤과 교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LG전자의 런드리고 투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선택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100억 원이라는 과감한 투자를 집행한 만큼, 이를 최대한 활용해 고객과 더 가까워지는 기업으로 진화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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