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2025년 11월 26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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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가 고래를? 자주 보이는 건


퀸잇의 SK스토아 인수 도전 소식에 업계가 술렁였습니다. 퀸잇보다 SK스토아의 덩치가 훨씬 컸기 때문인데요. 퀸잇이 떠오르는 커머스 플랫폼이라 해도 아직 신생 기업이고, 게다가 대기업 ‘SK’의 자회사를 인수한다는 점이 화제를 더 키웠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낯선 일은 아닙니다. 커머스에선 정육각의 초록마을 인수가 있었고, 범위를 넓히면 토스의 LG유플러스 PG사업 인수, 직방의 삼성 SDS 홈 IoT 부문 인수도 있었죠. 결국 실패로 끝나고만 정육각 사례를 들어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토스처럼 성공한 경우도 있어 무작정 부정적으로 볼 일만은 아니긴 합니다.


다만 분명한 건 ‘도박에 가까운 선택’이라는 점입니다. 몸집이 더 큰 회사를 인수하면 보상도 크지만 위험 역시 큽니다. 그럼에도 이런 딜이,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더 잦아진 이유는 스타트업의 기본 생리, 투자 자본을 지렛대 삼아 성장 속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압박 때문입니다.




축복인 동시에 저주인 투자


스타트업은 보통 투자를 받아 성장합니다. 정확히는 투자 자금으로 성장 속도를 높이곤 하죠. 돈으로 시간을 사는 셈인데요. 대신 그 대가로 투자자에게 더 큰 이익을 돌려줘야 하고, 보통 시간제한도 있습니다.


그래서 스타트업이 대기업 사업부를 인수하는 건 매출과 이익을 가장 빨리 키울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시간을 산다는 원래 목적에도 정확히 부합하죠. 다만 ‘사는 것’에서 끝나선 안 됩니다. 인수 자산을 발판으로 시너지를 내 성장해야만 투자자 기대에 부응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커머스로 좁히면 이 절박함은 더 커집니다. 이커머스는 선두 주자 쏠림이 강한 산업이라 먼저 자리 잡은 플레이어가 유리합니다. 이미 고객 습관을 만들어 둔 탓에, 그 틀을 깨 우리 플랫폼으로 옮기게 하려면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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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시장 성장이 둔화되면서, 현재의 성장 속도를 유지하는 것도 점차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최근 시장 성장세 둔화로 이 현상은 더 심해졌습니다. 패션 플랫폼만 봐도 무신사·지그재그·에이블리 같은 선행 주자들은 한때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이 ‘기본값’이었지만, 지금은 전체 시장이 둔화됐습니다. 퀸잇은 그 단계에 오르기 전부터 성장이 정체돼 조급할 만합니다. 퀸잇이 아무리 초반에 4050 세대를 날카롭게 공략해 안착했더라도, 대형 플랫폼이 영역을 넓히면 버티기가 쉽지 않거든요.


사실 정육각의 초록마을 인수도 같은 맥락의 절박함에서 나왔습니다. 쿠팡이 장보기를 선점해 컬리조차 빈틈을 찾기 어려운 판에서, 정육각은 오프라인으로 나가 판도를 바꾸려 한 겁니다. 결과적으로 무리한 자금 조달 끝에 기업회생 신청으로 이어지고 말았지만요.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퀸잇은 ‘승자의 저주’를 넘어 의도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론 쉽지 않다고 봅니다. 퀸잇의 기본 전략은 패션으로 고객을 확보한 뒤 카테고리를 넓혀 규모를 키우는 것이었고, 그 연장선에서 ‘팔도감’을 통해 식품으로 외연을 확장해 왔죠. 이번 인수 배경에 대해서도 퀸잇은 “홈쇼핑과 타깃이 유사하고, TV·모바일 채널이 상호 보완적”이라고 설명합니다.


다만 겉보기와 달리 간극은 큽니다. SK스토아의 핵심 고객은 50대 이상, 퀸잇은 40대가 중심입니다. 주 이용 채널, 선호 브랜드·상품도 적잖이 다릅니다. 이 격차를 메우지 못하면 인수로 ‘규모의 경제’를 얻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SK스토아가 T커머스 1위라 해도 ‘홈쇼핑 전체’로 보면 선두권은 아닙니다. 어렵게 자금을 조달해도 이후 더 치열한 경쟁이 기다린다는 뜻이죠.


영화 ‘어쩔 수가 없다’의 주인공 만수처럼, 위기 국면에선 당사자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판단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됩니다. 퀸잇도 성장이 막힌 건 사실이지만, 지금이 그런 도박을 감수할 타이밍인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희망 요인은 있습니다. 이번 딜을 함께 주도하는 알토스벤처스는 토스의 주요 투자사이고, 토스는 대기업 사업 인수로 스케일업에 성공한 전례가 있죠. 관건은 인수 후에도 공격적 투자를 이어갈 ‘탄약’이 충분 한가입니다. 추가 자금이 뒤따른다면 다른 결말을 만들 여지도 있습니다.


결국 퀸잇이 ‘승자의 저주’를 피해 토스의 전례를 따를지는 두 가지에 달렸습니다. ① 인수 자금 이상의 추가 투자 유치, ② 고객·채널·상품 포트폴리오를 실제로 통합해 시너지를 내는 실행력. 이 두 축을 증명하지 못하면, 이번 인수는 성장의 지름길이 아니라 부담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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