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무인도에 떨어지면 미키마우스를 그리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디즈니가 저작권에 워낙 엄격하기 때문에, 해변에 그려진 미키마우스를 귀신같이 찾아내 구해줄 거라는 농담이죠.


그런데 이제 이 유머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누구나 SORA에서 미키마우스를 활용해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1. 반전을 선택한 디즈니의 승부수


디즈니가 OpenAI에 IP를 공급하고, 돈까지 투자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10억 달러 지분 투자를 하고, 3년간 200개 이상의 캐릭터와 세계관을 SORA에서 쓸 수 있게 라이선스를 열었습니다. 이번 계약을 통해 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소라 단편 중 일부는 디즈니+에서 스트리밍할 수 있습니다.


이 딜이 상징적인 이유는 분명합니다. 앞서 말했듯 디즈니는 수십 년간 IP 방어에 가장 공격적인 플레이어였고, 생성형 AI는 그 IP를 가장 쉽게 '복제'하는 기술이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 '지브리풍' 이미지 생성이 논란이 됐던 맥락과도 겹칩니다. 그런데 디즈니는 소송이 아니라 허가된 생성을 택했습니다. 지키는 방식이 바뀐 겁니다.



2. 응원과 우려가 교차하는 시선


디즈니의 결정에 대한 반응은 엇갈립니다. 물론 아쉽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AI와 인간의 구도에서, 인간이 한 발 물러선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디즈니도 버티지 못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동시에 이런 반론도 나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브리 사례에서 보듯, 디즈니 캐릭터들 역시 이미 AI로 어렵지 않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팬아트의 영역을 넘어 품질도 빠르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생성물을 일일이 추적하고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런 상화에서 디즈니 입장에서 선택지는 많지 않았을 겁니다. 제대로 지키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돈이라도 받고 파는 쪽이 합리적이었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디즈니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AI 시대의 IP 활용 방식에 대해, 반박자 빠르게 주도권을 쥐고 ‘표준’이 되고자 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무단 사용은 막고, 허가된 생성은 연다. 그리고 그 규칙을 플랫폼이 아니라 IP 보유자가 먼저 제시한다. 이번 결정은 패배 선언이라기보다, 주도권을 빼앗기기 전에 먼저 쥔 선택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3. 실리를 챙기는 전략적 동맹


앞에서는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디즈니의 전략으로 해석했지만, 계속 눈에 밟히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지분 투자입니다.


만약 목표가 오직 IP 활용의 통제권이었다면, 굳이 OpenAI의 주주가 될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라이선스 계약만으로도 충분했겠죠. 그러나 ‘투자’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쉽게 말해, OpenAI가 잘돼야 디즈니도 잘될 수 있는 구조를 선택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런 가설도 가능합니다. 이번 딜의 주도권이 과연 디즈니에게만 있었을까요? 만약 OpenAI가 이렇게 제안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지분 투자 기회를 줄 테니, 공식적으로 IP를 열어달라.”


생성형 AI 플랫폼이 콘텐츠 산업과 제대로 손을 잡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가장 먼저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첫 파트너로 디즈니만큼 상징적인 이름은 없습니다. 이 거래는 누가 이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미래에 베팅한 동맹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4. 험지에서 다이아몬드를 구별하는 법


멀리서 보면 큐빅과 다이아몬드는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는 분명하죠. 그래서 똑같이 반짝여도, 시장은 늘 다이아몬드에 더 높은 값을 매깁니다.


디즈니는 지금까지 다이아몬드만 유통해 온 회사였습니다. 모든 세공을 직접 했고, 품질 기준도 스스로 정했습니다. “디즈니 로고가 붙었다면 이 정도는 보장한다”는 신뢰 위에 브랜드를 쌓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결정은 다르게 읽힐 여지도 있습니다. 의도는 통제된 생성이지만, 소비자의 눈에는 이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디즈니도 큐빅을 파는 건가? 라고요.


큐빅은 분명 불티나게 팔릴 겁니다. 접근성도 좋고, 만들기도 쉽습니다. 하지만 큐빅이 넘쳐날수록, 다이아몬드의 기준은 더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디즈니가 풀어야 할 과제는 명확합니다. 어디까지가 큐빅이고, 어디부터가 다이아몬드인지. 그리고 그 경계를 누가, 어떻게, 얼마나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느냐입니다.



5. 중심을 잃은 동심, 마법은 유효할까


물론 기업이 생존을 위해 내린 결정에 대해, 외부에서 가타부타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디즈니의 선택 역시 냉정하게 보면 충분히 합리적이고 계산된 판단입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질문은 남습니다. 과연 이제 아이들이 디즈니랜드에 가서 자신이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캐릭터를 보며 예전처럼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요?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AI로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가 여전히 “평생 기억에 남는 만남”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디즈니는 이번 결정으로 아이들의 동심을 팔아버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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