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지옥의 방
1.3 - 지옥의 방
서늘한 입구
오늘부터 나의 출근지는 창고다.
사무실에서 창고까지는
복도 하나를 지나면 된다.
그런데 그 복도가
이상하게 멀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오가는 사무실에서
아무도 오지 않는 창고까지.
그 거리가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문고리를 잡는 순간,
문틈으로 찬 공기가 새어 나왔다.
에어컨 바람이었다.
사람이 숨 쉬기 위한 바람이 아니라
서버가 버티기 위한 바람.
조대리님이 내 뒤에서 말하는 것 같았다.
“똑바로 해. 알았지?”
놀지 말고.
그리고, 티 나게 하지 말고.”
맨날 말하는 그놈의 티.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티 나게 하는 것이 뭔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그 말의 뜻을 묻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묻는 순간, 일이 생겨난다.
그리고 신입은 미움도 늘어난다.
나는 그곳의 문을 열었다.
지옥의 방, 첫 냄새
냄새부터 달랐다.
종이, 플라스틱, 오래된 먼지.
그리고 전자기기 특유의 열기.
사람이 있는 방은
사람 냄새가 난다.
이 방은 사람이 없어도
기계가 살아 있어
기계 냄새가 났다.
별도의 설명은 없었다.
"매뉴얼에 다 나와 있어요."
그게 전부였다.
격리 구역에는
친절할 소개가 필요 없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쌓여있는 서류와 장비들을 보았다.
번호가 붙은 노트북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검은색, 회색, 흰색.
모두 비슷한 얼굴에
각각 다른 번호가 붙어 있었다.
마치 이름표를 단 사람들처럼.
내가 오늘부터 얘들의 담당이구나.
서버 기계들이 말을 건네왔다.
“앞으로 이거 담당 전부 인후님이 하시면 돼요.”
“이게… 전부요?”
“네. 전부요.”
나는 이곳의 모든 걸 가지고 나서야 알았다.
이곳은 일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잠시 빼두는 곳이라는 걸.
하루의 절반
내 하루의 절반은
이 방에서 흘러갔다.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이
노트북이 쌓여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쌓인 것들이
처음부터 ‘쌓이도록 설계된’ 것 같다.
여기엔 책상이 없었다.
의자도 애매했다.
창문도 없었다.
좁은 공간에 그냥 쪼그려서 일하는 게 편했다.
대신 에어컨은 있었다.
그게 웃겼다.
나는 사람인데
사람에게 필요한 건 없고
기계에게 필요한 건 있었다.
이 방은 늘 서늘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서늘함이 이곳의 ‘룰’처럼 느껴졌다.
서버를 버티려면
공기가 차가워야 했다.
기계는 열을 견디지 못하니까.
사람은?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는 걸까?
회사가 나를 시험해 보는 것 같았다.
여기는 지옥처럼 답답했지만
적어도 시끄럽지는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기대하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그것은 조용히 사람을
없애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단순업무
내 업무는 단순했다.
노트북을 꺼낸다.
고유번호를 확인한다.
전원을 켠다.
부팅이 되는지 본다.
키보드를 눌러본다.
배터리를 확인한다.
느린지 빠른지 본다.
이상 있으면 스티커 부착.
없으면 다시 선반으로.
그리고 다시..
그리고 다음 노트북.
또 다음 노트북.
매일 같은 일.
매일 같은 순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상한 건,
이 단순함이 생각을 지운다는 거다.
‘어렵다’가 아니라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느낌.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그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은 방해가 된다.
여기서는 사사로운 잡념이 티가 된다.
별별 생각을 지워야 한다.
조대리가 싫어하는 것.
남팀장이 싫어하는 것.
이 회사가 싫어하는 것.
티.
반가운 사람
일주일이 지났다.
이곳에 오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
일주일에 세 번, 기사님이 온다.
내가 ‘체크’를 하면 문제가 있는 것들을 고쳐준다.
"담당 바뀌었어요?"
"네, 이번에 제가 맡게 됐습니다."
"전에는 아무도 안 왔었는데."
보통은 본사 담당자가
이곳까지 잘 오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일이 바뀌어서요."
기사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힘드시겠네. 여기 추운데."
그 말에 이상하게 가슴에 남았다.
누군가 내가 '있다'는 걸 알아주는 것 같았다.
기사님은
노트북을 열고
케이블을 만지고
어딘가를 점검했다.
우리는 같이 있을 때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사님이 오는 날이면 내심 반가웠다.
이 방에 나 말고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나는 그와 같은 ‘현장형 인간’이 되어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계약서에도,
입사 배치를 받을 때도 언급된 적 없었던 그런 일이었다.
이 방은 사람을 좌절시키거나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
그냥 조용히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회사에 있지만 회사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누군가와 있다는 것이 잠시 숨을 쉬게 된다.
일주일 세 번의 반가움이 조금씩 익숙해져 간다.
조대리의 칼질
2주째 되던 날이었다.
창고에 혼자 있을 때였다.
“인후님.”
조대리가 문 앞에 섰다.
서류를 들고 있었다.
“노트북 번호,
왜 이렇게 적으셨어요?”
나는 화면을 돌렸다.
엑셀에 정리된 번호들.
기존 방식보다 효율적으로 정리한 것이었다.
“아… 혹시 잘못됐나요?
이렇게 하면 두 번 할 거
한 번에 할 수 있더라고요.”
“잘못은 아닌데요.”
그가 서류를 내려놨다.
탁.
그 소리 하나에
서버실이 조용히 울렸다.
“마케터식 정리 같아서요."
마케터?
순간 첫날이 떠올랐다.
철판 스테이크를 시켰던 그 식사자리.
"제 꿈은 마케터입니다"라고 말했던 나.
나는 지금 마케터가 아니었다.
노트북 관리자였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시간이.."
"인후님."
그가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여긴 새로운 포맷 그런 거 필요 없어.
그냥 있는 대로 하자. 특이하게 하지 말고.”
그리고 특유의 반박자 늦은
웃음으로 말을 잇는다.
“자, 다시 하세요.”
그리고 다음부턴
새로 뭘 하려면 먼저 물어보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효율적으로 일한 게 잘못인가?
생각하는 게 문제인가?
조대리가 나간 뒤,
나는 엑셀 파일을 다시 열었다.
내가 만든 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식.
더 정확하게 관리할 수 있는 구조.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회사는 효율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시키지 않는 것은
'그대로'를 원했다.
나는 ctrl+Z를 눌렀다.
되돌리기.
한 번, 두 번, 세 번.
내가 바꾼 모든 것이 하나씩 지워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원래 방식대로
오랜 시간에 걸쳐서
모든 번호를 두 번씩 확인해야 했다.
티 나지 않게.
생각하지 않고.
행동 변화
한 달이 지나자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
옆부서 전략팀 김과장님을 복도에서 마주쳤다.
"인후, 잘 하고 있지?"
예전 같으면 바로 대답했을 것이다.
"네, 괜찮아요" 웃으며.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네."
짧은 대답.
웃지 않는 얼굴.
김과장님이 잠깐 나를 봤다.
뭔가 말하려다 멈췄다.
"그래. 힘내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예전과 다른 내 대답을 떠올렸다.
예전의 나는 어디 갔을까.
회의실에서도 그랬다.
팀 회의에 참석했을 때 남팀장님이 질문을 던졌다.
"노트북 교체 일정은 어떻게 돼?"
예전 같으면 내가 먼저 손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대리님이 대신 대답했다.
"제가 확인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회의실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사람이 되었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동기들이 모여 있었다.
"인후야, 여기 앉을래?"
예전 같으면 바로 갔을 것이다.
웃으며 합류하고 같이 밥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아, 나 급한 일이 있어서 따로 먹을게."
거짓말이었다.
혼자 먹고 싶지 않았다.
그냥 같이 있는 게 불편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창고에서 노트북 닦는 이야기?
조대리한테 혼난 이야기?
아무것도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구석 자리에 혼자 앉아 밥을 먹었다.
동기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더 적게 웃고,
더 조용히 일하고,
더 작아지는 사람.
퇴근길 지하철.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었다.
덜 웃고,
더 가라앉은 얼굴.
마치 내가 아니라
내 그림자가 일하고 있는 것처럼.
회사원이 된다는 건
이렇게 조용해지는 일인 걸까?
나는 지금
회사원이 아니라
서서히 사라지는 인간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상상도 못할 일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1-4. '쓸모 있는 인간'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