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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CJENM, SKT와 KT의 계열사 등과 같이 모두가 아는 대기업부터 일반인은 잘 모르는 중소기업까지 다양한 곳의 마케팅 및 컨설팅 프로젝트를 담당해 왔다.
브랜드 컨설팅과 마케팅을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것은 내부적으로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기 때문일 테다.(물론 내부에서 직접 할 수 있지만 그 시간에 더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하기 위해서 외부에 맡기는 경우도 있다) 고객이 의뢰한 문제들은 일견 복잡하고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그중 상당수는 예상외로 쉽게 풀리곤 했다. 모두가 아는 ‘기본기’로 돌아가기만 하면. 나는 이를 ‘고단수’라고 부른다.
질 들뢰즈는 철학자를 ‘개념을 창출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는데, 나는 철학자는 아니지만 종종 이렇게 개념을 만들곤 한다. 이때 한 가지를 주의하는 편이다. 어렵게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때에 따라서 개념 자체가 멋져 보여야 할 필요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모두가 이해하기 쉽게 이름 지으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일단 차치하고,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외래어’로 이름 지으면 세련되게, ‘한국어’는 상대적으로 덜 세련되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조금씩 변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단수’라고 어찌 보면 촌스럽다고 느껴질 수 있게 이름 지은 이유는 고객사의 직원 모두가 쉽게 이해하고 기억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기본기로 돌아가자고 호소하는 전략의 이름인데, 이름부터 어려우면 모순일 테니 말이다.
고단수는 ‘고객중심’의 ‘고’, ‘단순유식’의 ‘단’, ‘수행가능’의 ‘수’를 따서 만든 말이다. 이 세 가지만 다시 생각해도 많은 문제는 쉽게 풀린다. 이를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토스의 사례와 함께 설명해볼까 한다.
* 주거래 은행이 신한은행이라 토스와 비교하는 것이지 신한은행에 그 어떤 악의도 없음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아이 러브 신한은행, too)
1. 고객중심
누군가에게 돈을 받는 일을 하고 있다면 ‘고객중심’은 절대 잊으면 안 된다. 물론 고객의 범주를 어디까지 두어야 하는 문제는 있겠지만, 여기서는 일단 돈을 지불하는 사람으로 한정해서 생각해 보자.
고객이 은행 앱(App.)을 이용하는 주된 이유가 무엇일까? ‘저금’하거나 ‘대출’하거나 ‘이체’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즉 고객중심으로 사고한다면 앱의 첫 화면에는 이 세 가지 가능이 아주 잘 보여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을 신한은행은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고, 토스는 반영하고 있다. 신한은행 앱에서는 ‘이체’와 ‘계좌관리’만 크게 보일뿐이다. 이와 다르게 토스는 고객이 원하는 세 가지 기능을 보기 좋게 나란히 배치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고객 입장에서 느끼는 편의성에는 큰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언제나 더 편한 쪽으로 이동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고객중심’이 만들어내는 큰 기회다.
2. 단순유식
모든 업계에는 그들만의 용어가 있다. 마케팅 업계에서도 ‘CTR(Click Through Rate: 클릭률)’, ‘CPV(Cost Per View: 조회당 가격)’같이 일반인이 전혀 알 수 없는 영어로 된 약어를 자주 쓰곤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전문용어를 그대로 고객에게 쓰면 안 된다. 이해불가능한 말을 하는 것은, 상대와 말을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과 동일하다. 침묵보다 더욱 강력한 불통의 신호다. 이는 비단 전문용어에 국한되지 않는다. 고객이 이해하기 어려운, 조금이라도 더 생각해야 하는 메시지는 이와 비슷하게 작용할 수 있다.
언어가 ‘복잡’할수록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고객은 스스로를 ‘무식’하다고 느낄 수 있다. 즉 단순히 불편한 것을 넘어 불쾌해질 수까지 있다. 그렇기에 고객에게 발신하는 메시지는 최대한 ‘단순’화해서 고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고객이 스스로를 ‘유식’하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은행업계는 예전에 쓰던 한자어를 관행대로 지속해서 써왔다. 고객이 큰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으니 이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이체’, ‘예금’, ‘상환’ 등의 단어를 기성세대가 잘 이해하니 신세대도 잘 이해할 거라고, 이해하지 못하면 공부해서라도 배울 거라고 불편함을 그들에게 전가했다. 물론 누군가는 이를 두고 상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토스는 그 상식에 도전했다. 은행업계에서 늘 써오던 ‘저금’, ‘송금’ ‘이체’ 등의 한자어를 유치원생도 이해가능한 ‘채우기’ ‘보내기’와 같은 순우리말로 변경했다. 단순유식의 극치를 달성한 것이다.
공급자의 고민의 시기가 늘어날수록 고객의 고민의 크기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메시지는 그래서 단순유식해야 한다.
3. 수행가능
은행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한 단어로 말하면 ‘돈’ 아닐까? 돈을 ‘더 싸게 빌려주고’, ‘더 비싼 이자를 주고’, ‘돈 때문에 망할 가능성이 적은(신뢰)’ 그런 은행을 고객들은 높게 쳐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쟁력에 집중했다면 토스가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었을까? ‘낮은 대출 금리’와 ‘높은 예금 금리’로 승부를 보라고 하면 아마도 수행불가능했을 것이다. 작은 스타트업인 토스가 수백조 원의 자산을 자랑하는 기존 거대금융사와 ‘돈’으로 경쟁하는 것은 사람이 치타와 100m 달리기로 승부하는 것보다도 더 터무니없는 일이다.
토스는 이대신에 본인들이 수행가능한 지점을 노렸다. 토스가 기존금융사보다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을. 토스는 반짝반짝한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직원들과 조직문화가 있었고 훌륭한 개발자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토스는 이것에 집중했다. 토스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 것이다. 고객편의성을 극대화한 UX/UI 라이팅, 다른 은행이 시도하지 않은 신박한 이벤트, 모든 금융사가 외면한 중금리 대출 등이 그것이었다.
상당수의 기업이 헤매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수행불가능한 정답에 매달리는 것이다. 수억 원의 비용을 지불하여 컨설팅 회사로부터 정답을 받지만 그것은 ‘정답’같아 보이는 수행불가능한 ‘오답’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성공으로 이끈 전략이 나에게 꼭 적합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토스는 이 점을 알고 있었다.
토스는 이러한 ‘고단수’전략으로 단시간에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은행으로 성장했다. 물론 이밖에도 수많은 노력과 다양한 변수가 작용했음은 분명하다. ‘고단수’전략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모든 것을 극도로 단순화한 점은 양해 바란다.
만약 일을 하면서 길을 잃은 느낌이 든다면 한 번쯤 ‘고단수’를 떠올려보자. 생각보다 수월하게 다시 길을 찾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대부분의 답은 당신도 아는 기본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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