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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의 “고마워요 토요타”

혼다 F1 최종 경기 신문광고 (2021)
2023-05-25

해당 아티클은 에디터의 브런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https://brunch.co.kr/@gounsun/33

うフェラーリ
고마워요  페라리

ありがとうメルセデス
고마워요 메르세데스

ありがとうトヨタ
고마워요 토요타


“적기(敵機)를 찍으셨더군요”

20년 전쯤 톱클래스에서 한참 잘 나가던 어느 CF감독의 일화다. PPM(Pre-Produciton Meeting: TV광고 제작을 위한 사전회의)을 위해 모 항공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회의에 참석한 임원 한 사람이 감독의 포트폴리오에서 경쟁사 광고를 보고는 “적기를 찍은 적이 있다”고 농담했다는 것이다. 웃으면서 넘어갔지만 살짝 등골이 오싹해졌다고 한다. 빨간 깃발(赤旗)도 좋은 시기(適期)도 아닌 적의 비행기, 적기(敵機)이다.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한 유머였겠지만 두 국내 대형 항공사들 간 치열했던 경쟁의식의 단면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비즈니스에서 경쟁은 총만 안 들었지 실제 전쟁에 가깝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출처: https://www.ajunews.com/view/20191206113437427

경쟁에서 지면 담당자가 문책당하기도 하고, 부서가 없어지기도 한다. 결국 기업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그만큼 기업 간의 경쟁은 첨예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해관계는 비즈니스 현장의 엉뚱한 곳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경쟁사의 비행기를 적기라고 부르는 농담은 귀여운 편이다. 

자동차 기업에서 자사를 방문한 외부 방문객이 경쟁사의 차를 타고 오면 출입을 불허하는 경우가 있다. 회의 때문에 멀리서 온 손님이 외부 유료주차장에 주차하고 방문한 이야기도 들린다. 전자제품이나 스마트폰 등의 경우 경쟁사 제품은 소지하지 않는 게 예의다. 거의 일정한 클라이언트와 일하게 되는 광고대행사와 달리 여러 회사와 일을 하기도 하는 프로덕션의 경우, 노트북을 브랜드별로 구비하는 경우가 있다. 삼성전자와 회의할 때는 삼성 노트북을, LG전자와 회의할 때는 그램을 들고 간다고 한다.  

광고 표현물의 경우는 어떠한가. 미국의 펩시 vs 코크, 버거킹 vs 맥도널드의 경우처럼 첨예하게 공격하는 광고도 있다. 나라마다 업종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광고는 제품력의 우위를 전달하기 위한 싸움이 치열하다. 가끔씩 경쟁사의 표현물을 과대광고로 문제 삼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경쟁사와 관계가 좋기는 힘들다.

그런 상황을 생각해보면, 경쟁사를 일일이 거론하며 감사의 뜻을 표한 혼다의 광고는 매우 진귀한 케이스이다. 혼다가 F1에서 철수를 선언한 뒤, 마지막 레이스에 참여하면서 낸 광고이다.  

출처: https://mag.sendenkaigi.com/brain/202203/images/016_01.jpg

고마워요  페라리

고마워요 로터스

고마워요 브래범

고마워요 맥라렌

고마워요 윌리엄스

고마워요 르노

고마워요 메르세데스

고마워요 토요타

처음 F1에 도전했던 

1964년의 어느 날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경쟁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응원해준 모든 분 사람들,

모든 드라이버들

엄중한 싸움을 함께 헤쳐 나온

레드불, 알파타우리,

모든 동료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자, 마지막, 다녀오겠습니다


실제로 혼다의 관계자들이 저렇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고마워요 토요타”로 광고를 내고 안에서는 토요타 캠리나 프리우스를 적차(敵車)라고 하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100% 혼네(本音: 본심에서 우러나온 말)는 아닐 지라도 경쟁사들에 대한 존경심과 감사를 광고로 낸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치열한 비즈니스 전쟁터에서 큰 용기와 결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광고가 게재된 후 적지 않은 반향이 있었던 것 같다. 이 문구를 직접 쓴 광고대행사 덴츠의 카피라이터 미시마 쿠니히코(三島邦彦)씨는 독자들로부터 경쟁사에 감사를 보낸 광고에  “눈물이 날 것 같다”, “마음이 울컥했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고 닛케이 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상대를 낮출수록 내가 낮아지고, 상대방을 높일수록, 실제로는 내가 더 높아진다는 것은 많은 사례가 보여준다. 2020년 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수상소감으로 감독상 경쟁후보였던 마틴 스콜세지에 대한 존경을 표현한 것도 그런 사례일 것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엄청난 축구실력에 비해 존경받지 못하는 것에는 경쟁자에 대한 태도도 한몫을 한다. 

출처: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211500029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면, 어떤 경쟁의 상황에서 상대방을 치켜세우는 것은 이론처럼 쉽게 되는 일은 아니다. 경쟁이라는 단어는 싸움을 뜻하는 한자 경(競)과 역시, 싸움을 뜻하는 한자 쟁(爭)으로 이뤄졌다. 경쟁의 본질은 싸우는 것이다. 한참 싸우고 나서 ‘너 대단해’라고 하는 건 예전 청춘 드라마에서나 보던 클리셰이지, 평생 살면서 한 번이라도 직접 보기 힘든 장면이다.

원래 이 세상을 나올 때부터 우린 경쟁이란 조건에 놓인다. 유치원 때부터 남보다 앞서가기 위한 교육환경을 찾는다. 학교와 학원에서의 교육도 필요한 내용을 익히기 위한 것보다는, 남보다 앞서기 위한 것으로 바뀐다. 성적순으로 세워진 줄의 앞자리에 서기 위한 경쟁에 휩쓸리고, 더 높은 평판의 학교에 가기 위한 싸움에 내몰린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시작한 사회생활은 더 큰 경쟁의 시작점이다. 회사 안에서, 회사 대 회사로  ‘사회생활’이라고 쓰고, ‘경쟁’이라고 읽는 생활의 연속이다. 경쟁자에 대한 존중과 존경보다는, 싸워서 이기는 것을 요구받는다.

혼다의 ‘고마워요 토요타’에, 봉준호의 ‘존경해요 스콜세지’에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것은 “싸워서 이기라고 강요하는 세상”에 피로를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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