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아티클은 에디터의 브런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https://brunch.co.kr/@gounsun/27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직업 3위… 촬영감독?
2022년 1월,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발표한 리포트에서 촬영감독이 ‘기술 측면의 자동화 위험’으로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직업 3위에 올랐다.
1위가 문서 정리원, 2위가 도박장 직원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되는 직업들이다. 그런데 촬영감독이 3위라고? 내가 아는 촬영감독들의 열받은 얼굴이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최근 촬영기자재의 발전을 생각해보면, 어떤 의미에서 촬영감독이 순위에 들어갔는지 짐작은 된다. 요즘 카메라들은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다양한 일들을 해낸다. 화면 안에서 사람 여부를 판단하고, 얼굴을 감지하고, 배경을 구별해낸다. 그 상황에 맞는 다양한 조건을 계산해 최적의 촬영 방식을 제안하고 결정한다. 예전에 촬영감독이 판단하고 결정했던 것을 카메라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 촬영 때 처리하지 못한 부분은 인공지능이 들어간 프로그램을 통해서 편집하고, 색보정하고, 합성을 해낸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촬영감독이 필요 없어질까? 인간 능력의 가치가 최적값을 빨리 찾아내는 것에 있는 게 아니잖은가. 때론, 최적화의 상반되는 값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이 또 다른 진보를 촉진시키기도 한다. 이런 생각이 인공지능 시대에 저항하는 영상산업 관계자의 방어 논리일 뿐인지 모르겠다. 나 같은 사람이 저항을 하든 말든, 이미 인공지능의 시대는 왔고, 광고업계도 영향을 받고 있다.
일본 덴츠에서 이미 오래전에 인공지능 카피라이터 AICO(AI Copywriter, 아이코)를 소개한 바 있다. 친근한 캐릭터를 부여하여, 문과계열의 여성으로 우뇌형이며 소설이나 만화화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연극을 너무 좋아해서 무대에 선 적도 있다는 소개가 재미있다. AI + Copywriter라 AICO 인데, 일본의 여성이름의 뒷글자에 흔히 들어가는 코(子)와 발음이 같아 여성으로 세팅한 것 같다. 일본에서 뒤에 ~코로 끝나는 이름이 옛날식이라 촌스럽게 여겨진다. 아이코는 한국식 이름으로 치면 애자(愛子)인셈이다. 인공지능이 옛날식 이름을 가진 것이 재미있다.
아래는 AICO 가 쓴 카피로 만든 신문광고다. 일본 신문의 날을 맞이하여 후지 산케이 비즈니스 아이에 실렸다. 인공지능이 뽑아낸 2만여개의 카피 중에 500개를 선정했고, 최종적으로 3개의 카피가 후보에 올랐었다. 불완전한 카피도 많았지만, 인간의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발상과 말투로 신선한 것이 많았다고 한다.
출처: https://www.dentsu.co.jp/news/release/2017/0517-009291.html
인공지능이 스토리를 짠 광고도 이미 세상에 나왔다. 2016년 일본의 껌 브랜드 클로렛츠 민트탭의 제품 광고다. 맥켄 에릭슨 재팬에서 인공지능 CD 베타가 만든 아이디어로 찍은 TV광고이다. 동일한 제품, 동일한 콘셉트로 인간 CD가 만든 작품과 동시에 온에어 시키고, 소비자들이 더 좋은 쪽에 투표를 하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만든 광고다. 당시, 인간 CD가 만든 광고가 54%를 득표해 근소하게 이긴 바 있다.
2018년에는 IBM의 인공지능이 만든 스토리가 렉서스 TV광고의 콘티가 됐다. 인공지능은 지난 15년간 칸 광고제의 럭셔리 광고 부문 수상작들을 분석하고 소비자의 반응을 알고리즘에 반영해 스토리라인을 짰다고 했다.
인공지능이 레퍼런스도 찾아준다. 한국광고공사(KOBACO)에서 제공하는 광고 창작 시스템 아이작의 아카이브는 데이터 베이스에 있는 수만 개의 영상을 인공지능이 분석해서 레퍼런스를 제안한다. 아직은 초기단계라 결과물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지속적인 러닝을 통해 곧 쓸모 있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광고업계의 창작과 기획 영역에서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게 될까? 2023년 6월2일에 올라온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 <ChatGPT took their jobs. Now they walk dogs and fix air conditioners>에 따르면, 이미 일반 기업에서 광고문구를 쓰는 업무를 AI가 대체하면서 실직이 이미 시작됐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전하는 한국 신문의 헤드라인은 <“계약연장 안해요, 챗 GPT로 되네요”…배관공된 카피라이터들>이다. (아시아 경제 6월 5일자)
국내에서도 여러 기업들이 앞다퉈 인공지능 카피라이팅 솔루션을 선보이고 있다. 아직은 고차원적인 창의적 헤드라인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무난한 난이도의 단순한 바디 카피는 왠만한 대리급 사무직 인력보다 더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타겟에 따라 다른 세일즈 메시지를 카피화 한다는 개발회사의 설명 그대로 퍼포먼스가 나온다면, 분명 단순 라이팅 영역에서는 인간의 노력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수준이다.
AI 동영상 편집, AI 이미징 등이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이러다가 언젠가 있을 내 광고업계 은퇴 파티에 사람 대신 AI 카피라이터, AI 감독, AI 디자이너가 참석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인공지능 말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아니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일본 광고에 힌트가 있어 보인다. 나라현에 위치한 이코마시의 직원 채용 광고다.
인스타그램 포스팅 형식의 레이아웃으로 메인 비주얼이 만들어져 있다. 아기 때문에 우스꽝스러운 얼굴이 되어 버린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작은 글씨로 <발달상태와 육아환경을 체크하는 선배>라는 설명이 써져 있다.
AI can’t do, but I can .
인공지능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일본 광고에도 영어로 된 카피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은 라임을 맞춘 쉬운 영어 헤드라인이 인상적이다. 재미있고 쉬운 방법으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지방 작은 도시의 직원 채용 포스터 수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인공지능도 아이의 발달상태와 보육원의 환경에 대해 다양한 수치와 계산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을 하면서 저 아이를 안고서, 체온을 나누며 교감하고, 아이의 장난을 받아주고, 기꺼이 망가진 얼굴로 아이의 웃음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리 완벽하게 프로그램을 짜도 인공지능이 대체하지 못하는 영역은 의외로 많을지 모르겠다.
언제가 될지 모를 내 은퇴식에, 부디 AI가 아닌 인간 촬영감독이 함께 하길 기대한다.
정규영의 더 많은 생각이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