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은 사람을 배신한다”

노무라그룹 인쇄광고 (2017)
2023-07-12

“노력과 결과는 일치하지 않아요”

한참 전 TV의 한 예능프로그램에 걸그룹 오마이걸의 효정이 나와서 한 이야기다. 효정은 연예인들이 킬리만자로 산에 올라가는 경험을 담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녀는 노력과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산에 다녀오면서 알게됐다고 했다. (해발 5,885미터의 킬리만자로를 오르면서 예상치 못한 난관들에 부딪히면서 큰 어려움을 겪는 내용이 얼마 후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됐다.) 그동안 맑고 환한 모습만 보여주던 효정이 인생의 쓴 맛을 본 듯 관조적인 표정을 짓는 것이 팬으로서 안쓰러웠다.

tvN 놀라운 토요일 238화 캡처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네.”

“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늘 웃는 얼굴로 열정적으로 촬영에 임하던 효정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보며, 다른 출연자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때 뭔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또다른 출연자, 오마이걸의 래퍼 미미가 던지는 한마디.

“아닌데… 일치하는데…”

tvN 놀라운 토요일 238화 캡처

미미 특유의 어눌한 발음을 자막으로 보여준 뒤, “믿었던 노력의 배신”이라는 위트 있는 자막이 이어졌다. 효정의 팬인 나와 미미의 팬인 아내는 함께 웃었다. 잠깐의 웃음을 준 예능프로그램의 한 에피소드였지만, 서로 다른 인생관의 대립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여운이 오래 남았다. 그 웃음 끝에 나에게도 한 가지 질문이 남겨졌다. 효정의 깨달음처럼 노력과 결과는 일치하지 않는 걸까? 미미의 믿음처럼 일치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해 광고는 어떤 대답을 가지고 있을까. 여기 이 두 가지 다른 관점을 헤드라인으로 쓴 광고들이 있다. 우선 첫 번째 광고는 2007년에 나온 것이다.

출처: 이투데이 기사(https://www.etoday.co.kr/news/view/127072)

“혼이 담긴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KB국민은행이 “대한민국 1등을 넘어!”라는 슬로건과 함께 내건 인쇄광고다. 이 광고가 나온 2007년은 모든 대기업들 마다 “글로벌화”를 외치던 시기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야구선수 이승엽이 대한민국 1등을 찍고,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하던 때이다. 광고 콘셉트에 딱 맞는 모델이 아닐 수 없다.

이승엽은 출중한 실력과 역대급 홈런 기록으로 소속팀이었던 삼성의 팬들 뿐 아니라 온 국민이 사랑했던 스타 선수다. 특히, 국제대회에서의 결정적 활약으로 ‘국민타자’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그 인기를 보여주듯이 그의 좌우명도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졌으니 그것이 바로 광고 카피로 쓰인 바로 그 문구이다. 기사나 자료에 따라서는 ‘진정한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로 나오기도 한다. 아무튼 그의 천재적 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그 좌우명이 그대로 광고의 헤드라인 되었다.

이 무렵에 나온 KB국민은행의 TV광고는 15초 내내 이승엽의 타격 연습 장면만 보여준다. 혼을 다한 노력이 바로 이승엽의 정체성이다. 엄청난 노력으로 자신의 재능을 꽃피워 국민적 영웅이 된 이승엽의 좌우명이니 설득력 200%의 카피이다. 누구라도 고개를 가로저을 수 없다.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는.

그런데, 여기 이승엽의 명언급 좌우명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헤드라인의 광고가 눈길을 끈다.

努力は、人を裏切る。

노력은, 사람을 배신한다.

뭐라? 우리의 영웅이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노력은 사람을 배신한다고? 그럼 우리가 노력을 왜 하는데?

일본 최대의 증권회사인 노무라(野村)증권이 속해있는 노무라 그룹의 인쇄광고이다. 일본의 골프 천재 마쓰야마 히데키(松山英樹) 선수를 모델로 한 광고 시리즈 중 한편이다. 노무라증권은 마쓰야마 히데키 선수 공식 후원사 중 하나다. 그는 2021년 아시아인 최초로 PGA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했고, 2022년에는 소니오픈에서 우승함으로써, 한국의 최경주가 가지고 있던 PGA 아시아인 최다 우승 기록을 깬 일본의 국민골퍼이다. 2022년 11월 현재 세계랭킹 19위에 올라있다.

이 광고는 2017년에 게재된 것이다. 미래의 일본 국민골퍼를 앞세워 한국 국민타자의 좌우명을 반박하는 모양새가 됐다. 무슨 의미로 “노력은 배신한다”고 이야기는 하는 걸까.  “인생은 한방이다” 식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텐데. 바디 카피를 읽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노력은 사람을 배신한다.

항상 노력이 보답을 받는다면

가장 많이 연습한 사람이 정상이 돼야 한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다르다.

무수한 실패와 불운은 운동선수들이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그래도 그의 다음 1보는 훈련이다.

그는 말한다. 마지막에 자신을 믿을 수 있느냐에 따라

승부는 결정된다고. 그걸 만드는 건 연습밖에 없다고.

오늘도 그의 노력은 끝없이 쌓여간다.

“노력이 사람을 배신한다”는 것은, 때론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인생이다. 가장 노력을 많이 하고 연습을 많이 한 선수가 1등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도 공부를 가장 많이 했다고 1등을 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도 노력을 많이 하고 성과를 낸 직원이 늘 먼저 승진하는 것도 아니다. 업계에서 노력을 가장 많이 한 회사가 언제나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인생의 경주엔 수많은 변수와 불운이 함께 섞여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노력 뿐이라고 말한다. 요행이나 한방을 기다리는 이에게 다른 기회는 없다. 노력만이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연습으로 이겨낼 수 없는 변수들마저도 연습을 통한 자신감으로 이겨나가야 하다니. 결국, 노력밖에 길이 없다는 이승엽의 생각과 같은 이야기가 된다.

노무라그룹의 이 광고 카피는 영리한 전략으로 독자를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당연한 명제 혹은 믿음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헤드라인으로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리고는 후속 카피로 반전을 만들어 역설적인 주장에 힘을 보탠다. 헤드라인의 낚시질에 기분이 상하지 않는 것은 바디 카피의 메시지가 충분히 마음에 와닿기 때문이다. 뻔한 “천재의 노력 타령”에 그치지 않고, 공감할 만한 인생의 통찰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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