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하지 마라”

유키지루시 유업 OOH 캠페인 (2022)
2023-07-18

교보문고 자기계발서 베스트셀러 목록을 펼쳐봤다. ‘평범한 본성을 거부’하고 성공을 쟁취하라는 책이 1위라고 한다. 멀티태스킹의 허상에서 벗어나 ‘선택하고, 버리고, 집중해서’ 성공하라는 책이 3위다. ‘작은 습관으로부터 자신을 바꿔’ 성공하라는 책이 6위다. 그 외에도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이기는 법, 관계를 잘 맺는 법 등을 가르쳐주는 책들이 리스트에 올라온다. 

이 책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한 번 더 시도하라”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라”

“기적 같은 아침을 만들어라”

“돈 버는 원리를 깨우쳐라”

“일 잘하는 팁을 배워라”

“성공의 비밀을 깨우쳐라”

출처: 오마이뉴스 2016년 1월 4일 기사 (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5/1228/IE001907923_STD.jpg)

마치 우리가 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로 하는 내용 같이 보인다. 그런데 어찌 생각해보면, 실은 저 내용을 섭취하라고 시대가 우리의 등을 떠밀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의 의지를 그렇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 아닌가? 이것이 고스란히 출판시장에 반영되어 있는 것 아닌가?

한 동안 빡빡한 사회의 시스템에 내 운명을 맡기지 않겠다는 제목들이 유행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같은 책들이다. 에세이 코너에서는 여전히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하는 책들도 넘친다. 그러나, 자기 계발을 비롯한 다른 분야에서는 역시 성공의 길로 가는 법을 제시하는 것들이 압도적이다.


아마 일본의 분위기도 비슷한가 보다. 사회는 여전히 ‘이기는 길’, ‘성공하는 길’로 사람들을 이끈다. 유튜브, 출판, 팟캐스트 등에서 많은 콘텐츠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다수가 그 길을 따라나선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나오는 모양이다.    

전통의 유제품 업체인 유키지루시 유업에서 나온  雪コ(유키코: 유키지루시 커피우유)의 캠페인이 그런 일본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사회에서 ‘열심 경주’에 내몰려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캠페인을 한 것이다.

(출처: https://mag.sendenkaigi.com/brain/202301/up-to-works/025468.php)

캠페인 제목이 일단 재미있다.

自分に甘くなろう。
나에게 달달해지자(너그러워지자)

甘い(아마이)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雪コ(유키코)는 60년째 달달한 맛으로 사랑받아온 커피우유이니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하고 적당한 카피다.

그런데 甘い 에는 너그럽다는 의미도 있다. 달콤한 커피우유는 근면과 열심을 강요받는 사람에게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고 말을 건다. 스스로에 너그러워지라는 위로를 건넨다. 단어의 복합적인 뜻까지 연결시키고 나니, 중의적으로 의미가 착 붙는 완벽한 카피가 되었다. 달달한 커피를 마시자 → 나에게 달달해지자 →나에게 너그러워지자!

각 캠페인에는 경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멋진 한 마디씩을 던진다. 어떤 생각으로 스스로 너그러워질 수 있는지 알려준다. 한 편 한 편의 카피가 귀여운 통찰과 합리화를 담고 있어, 저절로 웃음 짓게 만든다.

1. 작심삼일? 대단하잖아! 3일이나 지속했는데!

(출처: https://mag.sendenkaigi.com/brain/202301/up-to-works/025468.php)

요즘 우리말로 하면 <정신승리> 쯤 되려나. 그럼 어때. 긍정적인 사고방식, 칭찬한다! 이틀 연속으로 하는 것도 얼마나 어렵니? 4일째, 다시 하면 되지.

2. 회사에 사람이 많은 것은 당신의 약점을 희석시키기 위해서다.

(출처: https://mag.sendenkaigi.com/brain/202301/up-to-works/025468.php)

맞는 말이다. 회사는 어벤저스가 아니다. 약점 많은 사람들끼리 서로 힘을 합하는 게 팀이다. 사실 어벤저스 멤버들도 하나하나 보면 약점 투성이다. 재수 없는 아이언맨, 통제 안 되는 헐크, 철없는 스파이더맨, 삐뚤어진 엘리트 닥터 스트레인지, 경직된 캡틴 아메리카 …

3.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하지 마라’ 이것은 터키의 격언이다.

출처: https://mag.sendenkaigi.com/brain/202301/up-to-works/025468.php)

저런 달콤한 격언은 어디에서 찾았을까? 근거까지 제시하니까 할 말이 없어지네. 형제의 나라에서 이런 멋진 말을 남다니…. 앞으로 나도 저 말 자주 사용해봐야겠다.

4. 참는 걸 멋있다고 생각하는 건 쇼와(昭和)

    멋없다고 생각하는 건 레이와(令和)

(출처: https://mag.sendenkaigi.com/brain/202301/up-to-works/025468.php)

쇼와시대는 1926~1989년, 레이와 시대는 2019년부터 현재까지다. 우리말로 하면 “참는 건 쌍팔년도식, 안 참는 게 요즘 스타일”인셈이다.  

이 외에도 치열한 사회 생활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귀여운 위로가 옥외광고와 웹 콘텐츠로 제작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유키지루시 커피 우유의 웹영상 아카이브:
 https://www.yukico-ni-amayakasaretai.com/archives/


참, 광고마다 붙어있는 해시태그는 #雪コに甘やかされたい(유키코에게 응석부리고 싶다)이다. 소비자들의 응석을 받아주는 광고라… 나쁘지 않다.

불경기에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콘텐츠가 많이 나온다는 통설이 있다. 아직 부정적인 전망이  계속되고 있는 한국경제를 생각하며, 우리도 이런 캠페인을 자주 보게 되지 않을까 우려아닌 우려가 든다. 기왕에 이런 캠페인들이 나온다면, 좀더 확실하게 위로해주고 확실하게 응석도 받아주면 어떨까.

정규영의 더 많은 생각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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