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토요일’이란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매주 토요일 케이블 TV 시청률 3위안에 꼬박꼬박 드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고정 출연자들과 게스트들이 대중가요의 가사를 받아 써 맞추는 것이 이 방송의 뼈대.
고정 출연자 중 샤이니의 ‘키’를 볼 때마다 감탄을 한다. 보통 사람들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른 리듬의 노래와 랩을 척척 받아 적어낸다. 놓친 부분이 있으면 영리한 두뇌회전으로 추리해내기도 한다. 그야말로 자타공인 프로그램의 ‘원탑 에이스’이다. 오죽하면 별명이 키어로(Key+Hero)다.
놀라운토요일 173화 캡처
그런데, 나머지 출연자들도 키 같은 능력자들로 바꿔 채우면 프로그램이 더 재미있어질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키의 활약을 샘내며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핀잔만 듣는 한해, 똑똑한 듯하지만 엉뚱한 실수를 하는 태연, 늘 바보 취급받으면서도 웃음을 주는 김동현, 하이에나처럼 남의 실수를 틈타 정답을 가로채는 신동엽 등 여러 캐릭터가 섞여 있다. 거기에 분장과 코믹한 춤으로 웃음을 주는 박나래, 90년대 음악의 달인 문세윤, 초식동물처럼 당하기만 하는 넉살까지. 이들이 투닥거리며 만들어가는 에피소드에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이다.
‘아는 형님’에 강호동 같은 캐릭터만 7명이 등장하거나, ‘무한도전’에 유재석 같은 에이스만 6명이 나왔다면 그렇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마치, 이대호 9명으로 야구팀을 꾸리거나, 손홍민 11명으로 꾸린 축구팀 같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장점과 서로 다른 능력이 합해질 때 가능성이 터져 나온다. 이는 여러 경영학 연구 결과로도 소개된 바 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2018년 발표에 따르면 경영진의 다양성 수준이 높을수록 더 나은 혁신과 재정적 성과를 낸다고 한다. 인종이나 성별 등의 다양성이 평균보다 높은 기업은 평균 이하의 기업에 비해 수익이 19%, 영업이익은 9% 높다고 한다.(www.bcg.com/publications/2018/how-diverse-leadership-teams-boost-innovation)
맥킨지의 연구보고서는 젠더 다양성이 제일 높고 낮은 기업 간의 성과는 48%까지 나온다고도 한다. (한경 에세이 2021년 5월 27일 자) 이 외에도 많은 연구들이 있다. 다양성이 성과에 미치는 긍정적 역할은 거의 진실의 영역에 가깝다.
부동산 기업 미츠비시지쇼(菱地所株)의 기업 PR 광고는 바로 이 점을 감성적인 스토리로 바꾸어 말해주고 있다.
몸집이 작지만 민첩한 고지로(小次郎)와 덩치가 크고 힘이 센 다이스케(大介)는 어릴 적부터의 친구이자 경쟁자이다. 두 사람은 함께 성장하며, 같은 고등학교 럭비부로 연습과 시합을 반복하는 가운데 늘 상대방을 의식한다. 고지로는 다이스케의 몸집과 파워가 부럽다. 다이스케는 빠르고 날렵한 고지로가 부럽다. 자신의 특징을 장점이 아닌 콤플렉스로 여긴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이 팀으로 승리하는 것은 서로의 손을 맞잡을 때이다.
결정적인 시합. 파워풀한 다이스케가 공을 지켜내 친구에게 건넨다.
발 빠른 고지로의 스피드로 결정적인 점수를 만들어낸다.
영상 내내 서로의 장점을 부러워하던 소년들은 결국 깨닫게 된다.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음을. 소년들의 독백이 힘차게 울린다.
僕にしかできないことがあるんだ。
나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숨 막힐 듯한 득점의 순간. 단독자막이 무게감 있게 시청자를 향해 터치다운 한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오직 ‘나’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함께하면 오히려 강해진다는 것. 어쩌면 교과서적인 뻔한 스토리가 될 법한 시놉시스이다. 하지만, 감각적인 구성과 서정적인 음악이 어우러지면서 감동을 주는 영상이 되었다. 이 광고는 2019년 세계 럭비대회 개막에 맞추어 방영되었다고 한다.
동영상 보기 : https://youtu.be/gShr-WBljoI
서로 다르다는 것이 큰 힘이 되는 것은 광고업계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자유롭고 다른 이는 꼼꼼하다. 어떤 이는 논리적이고 다른 이는 감성적이다. 어떤 이는 예민하고 다른 이는 거침없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자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을 쏟아낸다. 그렇게 치열하게 부딪히며 멋진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참 다행이다. 날고 기는 재주꾼들이 횡행하는 광고계에서, 나 같은 범생이도 쓰임새가 있으니 20여 년 이상 자리를 차지하고 내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무엇이었을까? 나 아니면 안되는 것은.
정규영의 더 많은 생각이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