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이라는 직업은 없습니다”

세존그룹( セゾングル-プ) 신문광고 (1987)
2023-08-01

유튜버가 되고 싶은 건 회사원들 뿐이 아니다. 초등학생 희망직업 4위가 유튜버이다. 이 신종 직업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매년 발표하는 학생들의 장래희망 순위에 등장한 이래,  줄곧 상위권에 속해 있다. 지난 3년간도 꾸준히 3-4위를 유지했다.  2022년 1월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1위 운동선수, 2위 의사, 3위 교사, 4위 유튜버(크리에이터) 순이다.

다음은 지난 3년간의 자료.

출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41525#home

보도자료에 의하면, 2021년도의 10위권 밖에는 다음 직업들이 줄 지어 서 있다.

11위 만화가

12위 수의사

13위 제과,제빵사

14위 과학자

15위 작가

16위 뷰티 디자이너

17위 시각 디자이너

18위 컴퓨터 공학자

19위 회사원

20위 공무원

여기에 어디를 봐도 ‘월급쟁이’이라는 직업은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다. 월급쟁이는 직업이 아니니까. 월급쟁이는 기업, 공공기관, 단체 등의 피고용인으로서 급여소득을 받는 사람을 말한다. 의사라도 자신의 사업체가 아닌 병원에 속해 있으면서 급여를 받으면 월급쟁이가 된다.  

지금은 많이 쓰지 않지만, 월급쟁이와 비슷한 말로 ‘샐러리맨’이란 말이 있다. “월급=샐러리”니까 같은 말이겠지만 뉘앙스가 다르다. 급여 소득자 중에서 주로 기업에 속해 있는 사무직 노동자를 ‘샐러리맨’이라고 불렀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전후(戰後) 경제가 발전하면서 고등교육을 받고 기업에 취직해 급여를 받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농업이나 수산업 등 1차 산업이나 생산직, 서비스 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육체적인 어려움이 적고 안정적인 직장인을 샐러리맨이라 했다. 화이트 칼러라고도 불렀다. 흰 드레스셔츠에 넥타이를 맨 남자 직장인이 안정적 샐러리맨의 표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중산층을 상징하는 말이다.

샐러리맨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던 1980년대왜 ‘샐러리맨이라는 직업은 없다’는 카피로 광고가 나온 것일까.

サラリーマンという仕事はありません。
샐러리맨이라는 직업은 없습니다

「会社」説明会ではない、「仕事」説明会を行います。
회사 설명회가 아니라 직업설명회를 엽니다.

이것은 세존그룹(セゾングループ)이 1987년에 낸 구인 광고이다.  자료를 찾아보면, 이 광고가 나온 1987년은 직종별로 직원을 뽑는 것이 아니라, 회사별로 뽑던 시절이라고 한다. 직종별 구별 없이 인재를 뽑아서, 내부의 필요에 의해 직종을 나누던 것이었다. ‘샐러리맨이란 직업은 없다’는 헤드라인 아래에는 회사 설명회가 아니라 직업설명회를 개최한다고 부연설명되어 있다.

회사의 월급쟁이가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를 뽑겠다는 구인광고.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시대를 앞서간 발상의 전환이다. 그 차별화된 생각을 그대로 담은 이 문구는 명카피로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30여 년 전의 이 광고가 문득 생각이 난 건, 요즘 유행하는 ‘조용한 퇴직’이라는 말 때문이다. 조용한 퇴직 (quiet quitting)은 실제 퇴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퇴사에 가까운 마음으로 회사에서 주어진 최소한 일만 대응하는 업무방식을 말한다. 미국의 한 20대 엔지니어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라고 한다. 성과와 열정을 강요하는 시스템에 대한 반발이라고 젊은 세대 중심으로 호응이 높다고 한다. 무책임한 근무태만이라며 부정적인 반응도 높다. 한국에서도 언론기사와 SNS 등을 통해 이슈가 널리 퍼지고 있다.

“월급만큼만 일하는 ‘조용한 사직’ MZ세대엔 이미 대세” 같은 기사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언론에서는 기성세대와 MZ세대의 가치관 갈등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태도로 업무에 일하는 사람들은 늘 있어왔다. 20여년전, 내가 광고계에 입문하던 20세기 말에도 있었고, 아마 그 20년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경영대학원의 클로츠 부교수는 “젊은 세대의 새로운 용어로 포장됐지만 수십년간 존재한 트랜드”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BBC ‘조용한 퇴직이 새롭지 않은 이유’)

조용한 퇴직에 찬성하는 마음과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월급을 받기 위해 요구되는 최소한만 한다는 것은, 스스로 업의 전문가가 아니라 그저 ‘샐러리맨’으로 자신을 축소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30여 년 전에 그런 직업이 없다고 선언된 바로 그 ‘샐러리맨’으로.

단순한 월급쟁이와 프로페셔널을 구별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슨 일을 하는가’ 보다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 판매직,영업직,연구직,생산직,관리직,마케팅직 등 무슨일을 하고 있든지간에 주도적인 태도와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는 사람만이 프로페셔널이 된다. 업(業)의 본질(本質)을 이해하고 자신의 업무에 투영하며 일하고 있는 사람이 프로페셔널이 된다.

그저 월급을 받기 위해 책임감도 비전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기업 보다도 직업인으로서 개인에게 더 손해이다. 샐러리맨이란 직업은 없으니까. 있지도 않은 직업을 가지고 급여통장에 들어오는 숫자를 기다리는 일에, 미래는 웃는 얼굴로 찾아와주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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