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다 vs 자알~한다

베네세 그룹 신문광고 (2014)
2023-10-11

70세의 노교수가 대학원생으로 공부를 새로 시작한다는 뉴스를 봤다. 평생 건축공학을 연구하고 가르쳐온 고려대 이한선 명예교수의 이야기다. 2019년에 정년퇴임한 이교수가 2022년 가을부터 미국 텍사스의 A&M 주립대의 수학과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연합뉴스 2022년 8월 22일 자)

“70세에 유학을 떠날 수 있는 재산을 부러워해야지!”

끊임없이 솟아나는 열정이 부럽다는 말에, 친구가 철 좀 들라며 농담을 던진다. 그렇기는 하다. 70세에 훌쩍 유학을 떠날 수 있는 노후 자금 관리도 궁금하다. 그렇지만 역시 지적인 열정에 먼저 압도된다. 계속 성장하는 사람에게 나이라는 장벽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진실 앞에 고개를 가로저을 수 없다.

70세의 유학 뉴스에 눈길이 갔던 게 불과 얼마 전인데, 새로운 뉴스 헤드라인에 다시 깜짝 놀랐다. “92세 만학도 ‘국내 최고령 박사’ 탄생.” 1931년생으로 2023년에 성공회대학교에서 사회학과 박사학위를 받은 이상숙님의 이야기다. (경향신문 2023년 2월 14일 자) 1961년에 대학을 졸업한 이상숙님은 87세이던 2018년에 석사과정에 입학해 2년만에 석사학위를 받았고, 그 후 5년 만에 박사과정을 마쳤다는 것이다.

한국대학신문에 실린 이상숙 박사님 사진

‘논문을 쓰면서 연구해보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져 당분간 책을 쓸 계획’이라는 코멘트를 읽다가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낀다. “곧 50살인데 이제 박사 학위를 받아서 내가 뭐 하겠어?”라고 불과 몇 년 전에 나 스스로 얘기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경영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하던 초기에는 의욕이 넘쳤다. 오랜만의 공부가 정말 재미있었다. 수업을 듣고, 주제를 잡고 논문을 준비해 보는 즐거움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 재미있게 공부한 보람도 있었다. 학과 수석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박사 학위까지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회사를 옮기고, 출장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반드시 졸업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고 싶었지만, 결국 긴 휴학 끝에 간신히 추가 학점으로 MBA를 취득했다. 바로 그때 내가 찾은 변명거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으면 뭐 하겠어.”

MBA과정은 학점 추가 이수로 학위취득이 가능하지만, 박사 학위과정을 하려면 졸업논문이 필요했다. 박사 학위에 도전하지 않을 거니까, 굳이 어렵게 논문을 쓸 필요가 없다는 논리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 기억을 92세 박사님의 기사를 보며 떠올리게 된 것이다. 덩달아, 짧은 일본 광고의 카피 한 줄이 떠올랐다. 교육 및 간병 사업을 벌이고 있는 베네세그룹의 신문광고이다.

人は、一生育つ。

사람은 평생 자란다

분할된 화면 양쪽에 아기의 얼굴과 노인의 얼굴이 대칭이 되어 보여진다. 아기의 우는 얼굴과 환하게 웃는 노인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며 눈길을 끈다. 이 아기가 평생 자라서 오른쪽의 노인이 된다는 의미를 담으면서도 교육사업과 간병사업의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 같다. 사진 아래에 ‘사람은 평생 자란다’는 헤드라인이 크고 깔끔한 타이포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바다 카피가 광고의 의미를 뚜렷이 전달한다.

... 아이도 어른도 사람에게는 성장의 힘이 숨 쉬고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고, 응원하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 베네세의 일입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을 믿는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광고는 말한다. 어른에게도 성장의 힘이 숨 쉬고 있다고. 그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장의 힘은 나이에 제한되지 않는다. 앞서 소개한 70세의 대학원 신입생, 92세의 박사의 경험으로 어렵지 않게 증거할 수 있다.

반대로, 성장의 힘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생산적 활동이 둔화되는 노인의 연령에 채 들어서지 않은 젊은 사람 중에도 쉽게 발견된다. 소위, ‘나 때는…’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 나이와 상관없이 바로 성장을 멈췄다는 것이다. 성장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더 채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니, 지나온 과거만 보이는 것이다. 현재도, 미래도 없으니 과거의 ‘나 때는…’만 찾는 것이다.  

사람이 성장하는 것은 대략 3가지로 말할 수 있겠다. 키가 크는 종적성장, 몸이 커지는 횡적성장, 그리고 지성과 인격의 깊이를 더하는 심층성장. 30여년전에 상향성장은 멈췄다. 심층성장까지 멈춘 채, 부실한 생활관리로 끊임없이 횡적 성장만 하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그 조짐이 보이는 것 같다. 조금만 넋 놓고 있다가 내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다는 위기감이 든다.

“사람은 평생 자란다.”

이 카피의 의미를 잘 새겨 ‘평생 잘한다’는 자부심을 가질 것인가, 성장을 멈춘 채 ‘평생 자~알 한다’는 자괴감에 들 것인가. 우리는 그 갈림길에 매일 서 있다.

정규영의 더 많은 생각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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