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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오늘도 여전히 줄이 깁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이 롯데백화점 잠실점에 오픈한 지 어언 2달이 되어가지만 인기는 식을 줄을 모릅니다. 최소 2시간 이상 대기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손님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곳 잠실점엔 이렇듯 줄 서는 매장이 런던베이글뮤지엄뿐이 아닙니다. 바로 옆에 문을 연 블루보틀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요. 올해 3월 문을 연 노티드월드 역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몰린 인파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하나의 의문이 생기곤 합니다. 과연 이들 식음료 매장들이 백화점 매출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리고 이들의 파급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백화점 MD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물론 이러한 핫한 매장들이 얼마나 매출에 기여했는지는 내부자가 아닌 이상 정확하게 알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잠실점 전체를 찬찬히 둘러보면서, 단지 유명한 맛집을 입점시킨 것이 아니라, 그 뒤에는 얼마나 철저한 기획과 고객 경험 설계가 숨어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엿볼 순 있었습니다.
개미지옥을 만든 건 공간 설계
우선 맛집이 백화점의 핵심 테넌트가 된 것은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긴 합니다. 2015년 현대백화점 판교점 돌풍을 상징했던 매그놀리아 베이커리가 대표적이었지요. 하지만 최근 이들 맛집 테넌트가 맡은 역할은 다소 변화한 걸로 보입니다. 과거에는 집객 자체가 이들의 임무였다면, 최근에는 집객은 물론 체류시간을 늘리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줄 서기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부터 더욱 강화되고 있는데요. 과거에는 2-3시간 이상 대기를 해야 하는 경우 고객이 포기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았지만요. 최근에는 대기를 걸어두고, 자연스레 근처 매장으로 이동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과거에는 대기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지역 명물 음식의 팝업스토어처럼, 구매 자체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이제는 단지 음식을 즐기는 것을 넘어서, 공간에 머무르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트렌드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오프라인 MD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렇게 대기를 걸은 고객이 매장 밖으로 이탈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머무르게 만드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함께 각광받게 된 곳이 바로 체험 요소를 강화한 리테일 매장이었습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위치한 롯데월드몰 1층에는 블루보틀뿐 아니라, 애플 스토어, 젠틀몬스터, 이솝, 르라보 등의 매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바로 매장 경험을 중요시 여긴다는 거고요. 일단 캐치테이블이나 테이블링으로 줄 서기를 한 고객들은 자연스레 이들 매장을 방문하여, 시착과 시향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매장 안에 머무르게 되는 건데요. 여기에 예약이 아닌 웨이팅은 언제 차례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트리거가 더해지자, 더욱 고객들의 발길은 멀리 떠나지 않고 붙잡히게 됩니다.
다양한 입점 브랜드들의 확실한 역할 분담으로, 롯데 잠실점이라는 공간의 매력도는 크게 증대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당연히 최종 목표인 매출 전환까지 고객을 이끌어야 하는데요. 이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구매 전환 효율이 좋은 SPA 브랜드 매장들입니다. 잠실점엔 유니클로, 자라, H&M은 물론, COS, 마시모두띠 같은 프리미엄 SPA 브랜들까지 모두 입점해 있습니다. 체류시간이 길어지면서 고객들은 자연스레 부담 없는 이들 매장에서 구매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당장의 매출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이후 이들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재방문과 재구매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여기에 마르디 메크르디 같은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나, 강력한 팬덤을 지닌 아더에러, 칼하트윕 등의 매장을 입점시켜 더욱더 이러한 시너지를 강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듯 철저한 공간과 고객 경험 설계가 있었기에,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한 번 방문하면 빠져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이 되어가고 있고요.
보다 더 치밀해져야 살아남을 겁니다
이처럼 오프라인 공간의 고객 경험이 주는 시너지는, 이들 경험의 총량이 커질수록 더욱 강력해지게 됩니다. 더현대 서울이나, 롯데백화점 잠실점 같은 대형 쇼핑몰들은, 이와 같이 철저하게 역할을 분담한 여러 브랜드들이 시너지를 내면서, 더 큰 차별성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요. 이렇게 쌓아 올린 명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핫플들을 재차 수혈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더현대 서울이 팝업에 집착하거나, 롯데백화점 잠실점이 끊임없이, 매장 내 브랜드를 리뉴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요. 그래야만 고객이 질리지 않고, 다시 매장을 찾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지 리테일 매장뿐 아니라 상권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과거 다른 곳들과 달리 성수동이 더 오랜 기간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집객을 담당한 팝업스토어들과 기존부터 상권을 만들어온 특색 있는 F&B 매장들이 서로 상부상조하며 안정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 다른 상권들이 젠트리피케이션과 함께, 대형 브랜드 위주로 거리가 재편되면서 매력을 잃었다면요. 팝업이라는 요소 덕분에, 성수동 상권은 그 차별성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점차 더 사람들의 관심사가 파편화된 시대에, 꾸준한 집객을 통해 상권을 유지하려면 결국 보다 치밀한 공간 기획이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한 두 매장이 큰 명성을 얻으면 근처 상권 전체가 같이 흥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새로운 상권이 뜨려면 이러한 스타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계속 상권이 유지되고 더 나아가 성장하려면, 더 오랜 시간 고객이 머무를 수 있도록 여러 매장들이 역할을 잘 분담하는 건 물론, 신선함을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치 또한 있어야 한다는 걸 앞으로 명심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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