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팀에는 뛰어난 2인자가 있다.

영화 '노보우의 성' 포스터 (2011)
2023-11-28

어느 조직에서나 리더십은 중요하다. 작게는 두세 명, 많게는 몇백만 명이나 되는 글로벌 기업까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리더십의 영향을 받는다. 알바 한두 명을 둔 작은 음식점이나 직원수 11만 5천 명의 삼성전자, 220만 명의 월마트나 리더십의 중요성은 다르지 않다.

그래서 현대 경영학에서 리더십은 중요한 연구분야 중 하나이다. 대학의 경영학과마다 리더십 관련 과목들을 개설되고 있다. 당연히, 리더십과 관련된 책들도 쏟아져 나왔다. 인터넷 교보문고 홈페이지에서 ‘리더십’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국내도서와 외국도서를 합쳐서 4만여 권의 책이 등장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탁월한 성과를 낸 리더가 주목을 받으면,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그의 이름을 딴 리더십 책이다. 스티브 잡스 리더십, 잭 웰치 리더십, 손정의 리더십, 엘론 머스크 리더십, 정주영 리더십, 이건희 리더십 등 경영인에 대한 책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리더십이 강조되는 스포츠에서도 히딩크 리더십, 김성근 리더십, 김기태 리더십 등 유명 감독들을 프리즘으로 연구한 책들이 등장한다.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등 역대 대통령의 리더십을 다룬 책도 많다. 자료를 찾다 보니 심지어 전두환 리더십이란 책까지 출간된 바 있다.

이에 비해 No.2 즉, 2인자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다. 당연하다. 기억해야 할 1인자도 넘치는 세상이다. 2인자 리더십, 참모 리더십이라는 관점의 콘텐츠들도 찾을 수 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검색을 해보면, 저자의 이름이 ‘이인자’님인 경우가 더 많다. (그러고 보니, 이 분들은 본의 아니게 평생 이인자로 사셔야 하는 운명이다.)

이렇게 눈에 잘 띄지 않는 2인자의 가치를 끄집어 말해주는 카피가 있다. 2011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 노보우의 성 (のぼうの城) 포스터 문구이다.

優れたチームには
優れたNo.2がいる。

뛰어난 팀에는
뛰어난 No.2가 있다.

영화 ‘노보우의 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일본 통일 전쟁을 벌이던 시절, 그의 세력에 대항하던 작은 성의 이야기다. 주인공 나리타 나가치카는 성주의 사촌이다. 평소 덜떨어져 보이는 행동으로 멍청이라는 뜻의 ‘노보우’로 불리지만, 권위의식 없이 평민들과 어울리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그는 어쩌다 총대장을 맡아 500명의 농민병으로 2만여 명의 토요토미 히데요시 군과의 대결을 지휘하게 된다. 바보 같은 겉모습과 달리, 부하와 백성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뚝심으로 정예부대로부터 성을 지켜낸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2014년 한국에서 ‘무사 노보우: 최후의 결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적 있다. 일본에서는 박스오피스 1위까지 한 흥행작이지만, 한국에서는 관객이 2,003명에 그쳐 흥행에 실패했다. 한국 관객의 관심을 끌만한 소재도 아니었고, 영화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눈 높은 한국 영화팬들을 만족시킬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감독이 만들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또 아쉬운 점은 카피의 적절성이다. 노보우는 2인자의 자리에서 시작하지만,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은 포용과 소통의 1인자 리더십이다. 2인자 본연의 역할을 잘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이 아니다. 한국의 광고인 입장에서 보면, 영화 자체는 좋은 카피로 과대포장된 평범한 제품의 느낌이랄까. 그나마, 이 카피는 영화의 메인 포스터에 쓰인 것도 아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프로모션용 포스터에 쓰였다. 

“뛰어난 팀에는 뛰어난 2인자가 있다.”

어찌 보면 참으로 평범한 카피다. 그러나 생각을 깨우는 강력한 힘이 있다. 당연한 사실임에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기 때문이다. 

탁월한 성과를 낸 팀이 있다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리더나 팀원이다. 훌륭한 리더가 있거나, 실력 있는 팀원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조직문화로 팀워크가 잘 다져져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적절한 투자와 지원의 역할을 거론하기도 한다. 어느 누구도, ‘그래, 훌륭한 2인자가 있기 때문이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면, 2인자들은 수많은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리더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조력을 하고, 그를 대신해 궂은일도 직접 해야 한다. 리더와 팀원들 간의 원활한 소통의 창구가 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리더의 책임을 대신 지기도 한다. 때론 자신의 실력을 통해 1인자에게 건강한 긴장감을 불어넣기도 한다. 좋은 2인자가 좋은 1인자를 만들고, 결국 그 리더십으로 좋은 팀을 만드는 사례도 많을 것이다.  

쉽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게 리더와 팀을 강하게 만드는 2인자. 그 가치를 발견하고 전면으로 끄집어낸 점이 이 카피의 미덕이다. 세상의 모든 2인자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문장이다. 이 카피는 2013년 도쿄 라이터스클럽 카피연감에도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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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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