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걸 구매하려면 약간의 ‘공부’가 필요한 제품들이 있습니다. 용도와 스펙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하는 케이블, 성분의 효능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은 있어야 잘 고를 수 있는 영양제, 내 피부톤과 스타일에 어울리는 컬러를 파악해야 하는 각종 뷰티용품까지. 이런 특정 제품군이 아니어도 경쟁이 치열한 모든 시장에서의 쇼핑에는 약간의 공부가 필요합니다. 선택지가 다양할수록 쇼핑의 만족도는 고객의 정보 탐색 수준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죠.
대부분의 고객들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콘텐츠 채널에서 먼저 공부를 합니다. 쏟아지는 콘텐츠 중에서 나름 훌륭하다고 판단되는 콘텐츠를 선별해 정보를 얻습니다. 후보군이 추려지면 직접 각 제품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비교를 해봅니다. 특정 제품에 대해 확신이 들면 최종 판매 채널로 가서 구매를 하죠. 공부하는 채널과 구매하는 채널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시간도 쓰고 머리도 써야 하는, 그렇게 썩 유쾌한 쇼핑 경험은 아닙니다.
판매자 입장에서도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우리 채널에 오기까지 어느 채널에서 누가 생산한 어떤 콘텐츠를 볼 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예측이 어려우면 최대한 넓게 뿌려야 합니다. 우리가 직접 만드는 콘텐츠도 많을수록 좋죠. 마케팅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집’은 이 문제를 플랫폼 내 콘텐츠로 해결한 기업입니다. 애초에 커뮤니티 형태로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많은 사용자들의 콘텐츠를 이미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일반적인 기업들은 이 정도로 풍부한 콘텐츠를 판매 채널 안에 갖추기가 어렵습니다. 커뮤니티로 시작하지 않은 기업은 어떻게 고객의 공부를 자사몰에서 도울 수 있을까요?
출처 : CLARE 공식 웹사이트
고객의 선택에
확신을 심어주는 페인트 회사
페인트를 판매하는 회사가 단순히 좋은 페인트를 제공하는 건 이제 경쟁력이 아닙니다. 클레어도 당연히 몸에 해로운 성분이 없고, 냄새가 적고, 지구에도 도움이 되는 페인트를 판매합니다. 하지만 클레어의 핵심 경쟁력은 고객에게 높은 퀄리티의 페인트를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객의 선택 과정에서 드는 불안감, ‘이게 정말 우리 집에 맞는 컬러일까?’라는 심리적 불편함을 제거해 주는 것입니다. 페인트는 잘못 선택하면 크게 고생하는 제품입니다. 고객의 고생을 미리 막아주려는 클레어의 노력은 고객의 최종 선택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칩니다.
클레어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출신의 창업가가 만든 페인트 쇼핑몰입니다. 판매되는 페인트의 컬러 큐레이션, 자사몰 내에 있는 자체 제작 콘텐츠, 컬러 샘플 원단을 제공하는 방식 등 웹사이트 전체에서 전문가의 느낌이 물씬 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포인트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을 수 있는 1:1 상담입니다.
회원가입 없이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출처 : CLARE 공식 웹사이트)
인테리어 전문가와의
1:1 컬러 상담
웹사이트 내 Take the Quiz라고 쓰인 탭을 누르면 채팅이 시작됩니다. 자신을 ‘당신만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라고 소개한 클레어가 친근하게 말을 걸죠. 처음에는 페인트를 사용할 공간에 대해 묻습니다. 어떤 용도의 공간인지, 공간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 채광은 좋은 편인지, 빛은 어느 방향에서 들어오는지 등 생각보다 질문의 구성이 디테일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고객은 벽의 컬러를 고를 때 어떤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어 컬러 선호도, 원하는 인테리어 무드 등 조금 더 사적인 질문들이 이어집니다. 친절한 보기가 주어져 있기 때문에 대답이 막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애초에 원하는 바가 정확한 ‘인테리어 고수’들은 이런 상담 서비스의 타깃 고객이 아닙니다. 인테리어 초보에게 객관식 보기는 애써 좋은 대답을 생각해내지 않고도 몇 번의 클릭만으로 나에 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편리한 방식이죠.
모든 답변이 끝나면 3가지 색상을 추천해 주고, 각 컬러를 클릭하면 해당 페인트의 상세페이지로 넘어갑니다. 상세페이지에서는 그 페인트를 사용한 공간의 실제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그 컬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택한 또 다른 컬러를 추천하기도 하죠. 여전히 확신이 들지 않으면 클레어 소속의 인테리어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선별된 콘텐츠를 읽어볼 수도 있습니다. 고객은 이 여정을 겪으면서 페인트 색상에 대한 지식을 자연스럽게 습득합니다.
1:1 상담, 상세페이지, 전문가의 콘텐츠를 모두 자사몰에서 학습하면서 고객은 점차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자사몰 안에서 공부와 구매를 동시에 끝낼 수 있는 거죠. 클레어 입장에서는 모든 역량을 자사몰에 쏟고, 고객을 여기로 데려오는데 마케팅 예산을 집중할 수 있습니다. 양측 모두에게 윈윈입니다.
제품에서 눈에 확 띄는 차별화를 만들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기업은 차별화를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모두가 좋은 제품을 제공하면 고객은 자신에게 확신을 주는 기업을 선택합니다. 온라인에 떠도는 무분별한 정보들 중 쓸만한 정보들을 선별하고, 여러 제품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과정을 기뻐할 고객은 없으니까요.
거창하게 소개했지만 사실 클레어 웹사이트에 들어있는 상담 기능은 좀 심화된 버전의 챗봇 기능입니다. 뻔하디 뻔한 ‘챗봇’이라는 수단도 누가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고객을 끌어당기는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새롭고 힙한 수단만을 찾기보다, 이미 있는 수단에 우리만의 깊이를 더해 고객을 진심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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