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하는 네이버, 뛰어드는 알토스
지난 2월 알토스벤처스(이하 알토스)가 소프트웨어 중심 풀필먼트 기업 테크타카에 약 126억 원 규모의 투자를 단독으로 집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알토스는 쿠팡, 배달의민족, 토스, 당근 등에 투자한 것으로 잘 알려진 곳이고요. 스타트업 창업자와 재직자들로부터 ‘가장 투자받고 싶은 VC’ 순위에서 수년간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상징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러한 알토스가 다소 뜬금없이 풀필먼트 기업에 베팅을 하다니, 그 배경이 궁금해지더라고요.
물론 그만큼 테크타카라는 기업이 유망한 곳이긴 했습니다. 오늘 처음 이름을 들어보신 분도 많으시겠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초기 투자자로 네이버, 카카오가 모두 참여한 걸로 유명했습니다. 테크타카는 풀필먼트 솔루션 아르고의 운영사인 동시에, 직접 제삼자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특히 22년 3월 NFA(Naver Fulfillment Aliance)에 합류한 것에 이어, 작년 7월에는 네이버 도착보장까지 론칭하며, 출고량이 1년 만에 15배나 증가했을 정도로 최근 성장세도 가팔랐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흥미로웠던 포인트는, 정작 테크타카의 초기 투자자이자, NFA를 만든 네이버는 한동안 물류 투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는 점입니다. 22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네이버의 투자 기조가 물류, 유통에서 C2C와 해외 확장으로 변모하였고요. NFA 참여 업체들과의 관계에서도 일부 잡음이 흘러나오기도 했습니다. 도착보장 서비스 역시 대기업인 CJ대한통운에 물량이 쏠리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며, 풀필먼트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요.
이러한 상황에서 도대체 알토스는 왜 네이버가 한발 물러선, 이커머스 물류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된 것인지, 그리고 풀필먼트 사업은 왜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점에서 기대할 만한지에 대해 지금부터 테크타카 사례를 중심으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풀필먼트 사업이 어려웠던 이유
테크타카를 비롯한 여러 풀필먼트 역량을 갖춘 스타트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던 당시, 네이버가 가졌던 아이디어는 심플했습니다. 유망한 물류 스타트업들을 모아, 투자를 하고요. 여기에 네이버 커머스가 가진 물량을 몰아준다면,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할 거라고 기대를 한 겁니다. 이렇게 되면, 경쟁자 쿠팡의 물류 우위를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따라잡을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을 거고요.
그러나 막상 NFA 출범 초기에는 생각보다 네이버 내 셀러들이 영세하였고요. 더군다나 직접 재고를 보유한 경우가 드물어서, 물동량 성장세 역시 매우 더뎠습니다. 하지만 브랜드스토어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도착 보장을 론칭하며 물량을 몰아주면서, 본격적으로 NFA 파트너들의 물동량도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네이버가 결정적으로 간과한 점은, 이커머스 물류는 그 특성상 물동량이 늘어나면 오히려 비용이 올라갈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재고와 품목 수가 증가하면, 창고 규모도 키워야 하고요. 적재부터 출고, 관리 등의 복잡성도 증대되게 됩니다. 즉 이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한 몸집 불리기가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준비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출고량 증가는 오히려 피해야 합니다
실제로 이용자 수나 물량은 꾸준히 증가했음에도, 이러한 함정에 빠져 적자가 심화되거나, 심지어 NFA에서 탈퇴하는 경우도 종종 나오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신상마켓 운영사로 잘 알려진 딜리셔스는 출고 건수가 월평균 40% 이상 증가하고, 물량 역시 3배 늘었지만 올해 2월 서비스를 종료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들의 풀필먼트 사업 확장에 부담을 느꼈다는 분석이 뒤따르기도 했고요.
초기 풀필먼트 스타트업들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효율성을 증명하려 했지만요.
월간 출고량이 수십만 건으로 증가하며 중소 셀러들의 유입과 SKU가 증가하자, 관리 비용이 급증하여 오히려 적자가 늘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물류센터를 직접 운영했으나, 이커머스 성장 둔화와 함께 인프라 투자가 독이 되기도 했고요. 이런 와중에 자산 투자를 최소화한 풀필먼트 솔루션인 테크타카 모델이 등장한 겁니다.
(엄지용 유통 물류 버티컬 미디어 커넥터스 대표)
다만 그렇기에 오히려 테크타카의 실적이 빛이 나기도 했습니다. 테크타카는 ‘낮은 단가’와 ‘수익성’이라는 2가지 가치를 모두 잡으며, 작년 11월과 12월 공헌이익 흑자 전환에도 성공했기 때문인데요. 특히 ‘저단가 영업’을 기반으로 물량을 늘리면서 거둔 성과이기에 더욱 대단했습니다. 알토스 역시 이번 투자를 결정하게 된 것이, 이러한 운영 효율화를 가능케 한 소프트웨어를 높게 평가해서였다고 밝혔는데요. 특히 인력 운영이나 창고 공간 설계 등이 아니라, 시스템을 통해 만든 성과이기에 앞으로 충분히 확장될 수 있다고 보았다고 합니다.
시장의 흐름은 여전히 불리합니다
이와 같이 IT 기술력의 힘으로 반전을 보여준 테크타카처럼 무언가 가능성을 보여주는 풀필먼트 기업들이 최근 들어 조금씩 등장하고 있습니다. 동일하게 NFA에 참여 중인 ‘품고’의 운영사 두핸즈 역시, 브랜드 대상 풀필먼트 사업에서는 연간 흑자 전환을 달성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 있는 건, 이커머스 시장에서 전후방 가치사슬을 통합한 대형 플랫폼의 경쟁 우위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쿠팡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이들은 앞단의 판매부터, 재고 관리, 출고는 물론 배송까지 온전히 전담하면서 배송 속도와 품질, 그리고 이제는 비용까지도 압도적인 입지를 구축한 상황입니다. 네이버 도착보장 내에서도 CJ대한통운이 우위에 설 수 있는 건, 가장 규모가 큰 플레이어인 점도 있지만, 택배까지 연결하여 제공 가능하다는 것도 한 몫하고 있는데요. 이들은 컷오프 시간을 통제할 수 있기에, 운영의 유연성을 더 많이 확보하고 있는 데다가, 택배 사이드에서 추가적인 마진을 남길 수 있어서 가격 경쟁에서도 유리합니다.
가치사슬 통합을 통해 고객 경험을 개선시키는 동시에 가격 경쟁력 또한 확보 가능합니다
특히 빠른 배송이 고객의 구매를 좌우하는 주요 요인이 되면서, 자연스레 플랫폼들이 재고를 아예 자신들에게 묶어 두는 형태를 셀러들에게 일정 부분 강요하고 있는 일이 점차 많아지고 있는데요. 자체 창고에 재고를 보관하게 하여, 이에 대한 통제권을 일부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플랫폼 입장에선 당연히 좋은 일입니다. 그렇기에 쿠팡은 물론, 지그재그 같은 버티컬 플레이어부터, 알리익스프레스 같은 중국 플랫폼까지 풀필먼트 패키지를 셀러에게 제공하고 있고요. 특히 최근 쿠팡은 플랫폼 내 오픈마켓 판매자들의 택배 위탁마저 테스트하며 이러한 통제력을 더욱 강화하는 중입니다. 이렇게 재고 자체가 플랫폼에게 묶이게 되면 풀필먼트 기업들의 설 자리는 당연히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근데 플랫폼 독식은 쫌 그렇잖아요
이러한 우려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보았는데요. 일정 부분 동의하긴 하지만, 여전히 풀필먼트 기업들에게 열린 시장도 작진 않을 거다라며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아무리 쿠팡이라도 모든 걸 다할 수는 없기에, D2C를 지향하는 자사몰들을 공략한다면, 충분히 큰 매출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더욱이 플랫폼의 지배력이 점차 강해지면서, 이에 대한 반발도 거세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결국 브랜딩이나 수수료 절감 등의 목적으로 어느 정도의 자사몰 비중을 가져가야 하는 건 필수적인 일이 되었고요. 그렇다고 브랜드가 독자적으로 물류를 운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풀필먼트 기업들을 향한 수요는 앞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사실 테크타카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도, 이커머스에서 쿠팡이 제시한 물류 서비스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는데, 이런 것들을 쿠팡의 생태계에 들어가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분명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가 생길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쿠팡에게 종속되지 않으면서, 양질의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수요는 분명 존재합니다. 다만 여기서 나오는 수요의 대부분이 영세한 판매자와 다품종 소량의 재고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고요. 이는 곧 어쩌면 쿠팡도 포기한 이들을 가지고 어떻게든 수익성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아주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시장에서는 다양한 시도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일례로 테크타카의 아르고는 단지 창고 관리를 넘어서서, 운송 관리나 판매자 도구까지 전체 가치사슬을 포괄하는 통합 솔루션인데요. 적어도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쿠팡과 직접 경쟁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더 나아가 부족한 하드웨어 인프라는 우수한 시스템을 기반으로, 다른 업체들을 파트너 센터들로 끌어들여 보완 중이라 하고요. 이러한 노력들이 과연 어디까지 통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시장의 다양성이 유지되려면
지금까지 테크타카 투자 유치 소식에서 출발하여, 이커머스 풀필먼트 시장의 가능성과 한계 등을 살펴보았는데요. 앞으로도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결국 쿠팡처럼 물류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갖춘 곳이 독식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후 이들과 경쟁하려면 중국 플랫폼처럼 막대한 자본을 등에 업은 곳이 아니라면 아예 시장 진입조차 꿈꾸기 어려울 정도인데요.
이러한 소수 플레이어의 독과점은 결국 시장의 역동성을 떨어뜨리고, 더 나아가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는 가치를 장기적으로는 저하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비자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작은 업체들을 이용할 의무는 없으니까요. 결국 이를 보완해 줄 업체들이 필요합니다. 과연 풀필먼트 기업들이 자신들의 비전대로 성장하여, 중소 셀러들과 스몰 브랜드들을 모아 또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지,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빅테크 중심의 시장으로 흘러갈지, 앞으로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소식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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