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안경답지 않게 바꾼 ‘젠틀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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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웨어 매장(안경원)에 가본 적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풍경이 있을 거예요. 가지런히 정렬된 안경, 선글라스들 그리고 하얀 가운을 입은 안경사와 시력검사표까지. 아무래도 안경원에 방문하는 대다수의 고객이 시력교정 및 보호를 위해 안경과 선글라스를 찾기 때문에 이런 요구에 맞춰 세팅된 인테리어일 거예요.

이러한 매장 풍경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기존에 안경, 선글라스는 시력교정과 보호의 목적으로 착용하는 아이템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2011년, 어떤 특이한 브랜드가 시장에 등장하면서 지각변동이 일어났습니다. 우선 이 브랜드의 매장이 어떤 모습들인지 살펴볼까요?

©️GENTLE MONSTER

©️GENTLE MONSTER

안경 판매점이라기보다는 전시회장처럼 보이는 이 독특한 매장들은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젠틀몬스터가 처음부터 이렇게 독자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가진 브랜드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젠틀몬스터도 초창기에는 일반적인 아이웨어 브랜드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브랜드였습니다.

젠틀몬스터도 초창기에는 다른 아이웨어 브랜드처럼 안경원에 입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신생 업체이다 보니 입점을 반기는 안경원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냉담한 반응이 계속 이어지자 젠틀몬스터는 전략을 바꿨습니다. “고객들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이 찾아오게 만들자”

안경원에 입점하겠다는 평범한 전략을 버리고 먼저 고객들에게 젠틀몬스터를 알리기 위해 젠틀몬스터는 과감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합니다. 고객들을 초대해서 함께 안경 만들기 클래스를 진행한 <VISIT 행사>와 타투이스트 아프로와 콜라보한 제품을 출시한 것이 바로 그 전략들의 대표적인 예죠.

젠틀몬스터 ‘타투 시리즈’ 안경테  ©️GENTLE MONSTER

이러한 다양한 노력 덕분에 젠틀몬스터는 시장에서 꽤 괜찮은 인지도를 쌓게 됐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성장 모멘텀을 만들만한 ‘결정적인 한방’은 없는 상태였죠. 이런 와중에 타투 시리즈 안경테를 함께 작업하게 된 타투이스트 아프로가 배우 류승범과 친한 것을 알게 된 젠틀몬스터의 김한국 대표는 제품 홍보를 위해 류승범에게 젠틀몬스터 제품을 착용할 수 있도록 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아프로는 놀랍게도 이런 답변을 했죠.

“솔직히 젠틀몬스터 제품 모두 안 예뻐서 류승범에게 권유를 못하겠어요”

김한국 대표는 그의 말에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큰 깨달음을 얻었는데요. 아무리 놀라운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도 결국 중요한 것은 제품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모든 마케팅 예산을 디자인 예산으로 전환하여 예쁜 안경을 만드는데 집중했습니다.

디자인에 총력을 기울인 김한국 대표의 선택은 탁월했습니다. 업그레이드된 제품 디자인에 소비자들은 더 많이 반응하기 시작했고 젠틀몬스터는 더 유명해질 수 있었죠. 그리고 그런 유명세에 힘입어 국내 안경업체 최초로 오프라인 쇼룸을 만들었습니다.

젠틀몬스터 논현동 쇼룸 ©️GENTLE MONSTER

김한국 대표가 젠틀몬스터 창업 초기에 안경원에 제품을 입점시키려 노력했던 것 기억하시죠? 일반적인 안경업체는 자신의 독립적인 매장을 가지려고 하지 않고 안경원에 입점하여 유통망을 늘리는 것에 집중하는데요. 젠틀몬스터는 특이하게도 일반 패션 브랜드처럼 독립 매장을 오픈한 겁니다.

젠틀몬스터는 이런 독특한 행보를 통해서 아이웨어가 단순히 시력교정을 위한 아이템이 아닌 ‘패션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자신들의 생각을 확실하게 대중에게 알릴 수 있었습니다. 기존에는 안경원에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안경테를 고르고 렌즈까지 맞추는 게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젠틀몬스터에서 테를 고르고 렌즈는 따로 맞추는 방식이 됐죠.

젠틀몬스터 HAUS DOSAN(하우스 도산) ©️GENTLE MONSTER

그리고 첫 번째 쇼룸 이후로도 다양한 컨셉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선보였는데요. 독특한 점은 일반적인 패션, 아이웨어 매장의 경우 ‘판매 목적’이 전부이기 때문에 입구부터 제품 진열을 해놓는 반면 젠틀몬스터는 스토어를 만드는 목적을 ‘판매’가 아니라 ‘브랜드 경험’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제품은 최대한 숨겨두고 전시회를 방불케 하는 아트웍을 보여줌으로써 방문 고객들에게 젠틀몬스터라는 브랜드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데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놀라운 전략’은 인스타그램 시대의 흐름에 잘 맞아떨어져서 엄청난 바이럴 효과를 일으켰습니다.

오래된 목욕탕을 개조해서 만든 젠틀몬스터의 쇼룸 ©️GENTLE MONSTER

이렇게 젠틀몬스터가 보폭을 넓혀 갈수록 사람들은 점점 ‘아이웨어 = 패션 아이템’이라는 명제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웨어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패션 아이템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젠틀몬스터가 만약 일반적인 안경 브랜드처럼 안경원에 입점하는 것으로 판매를 시작했다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케팅 구루 세스 고딘은 자신의 저서 <보랏빛 소가 온다>에서 “소비자들은 당연한 것에 놀라지 않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사람들은 당연한 것에 놀라지 않습니다. 당연하지 않은 경험을 했을 때 놀라죠. 젠틀몬스터는 그래서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본질들을 모두 깨버렸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제품의 본질을 ‘시력 교정’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바꿨고, 놀라운 전략을 펼치기 위해서 스토어의 본질은 ‘제품 판매’에서 ‘브랜드 경험’으로 바꿨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란 ‘ㅇㅇ다운 것’이라는 고정관념들을 ‘ㅇㅇ답지 않게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안경을 안경답지 않게 만든 젠틀몬스터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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