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실현 가능성은 낮습니다
알리바바가 홈플러스 매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알리바바의 홈플러스 인수 가능성 자체는 그리 높진 않다고 보는데요. 예상되는 몸값은 비싼데 반해, 막상 실적은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5년 현재 주인인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를 무려 7조 2천억 원이라는 거액을 주고 인수했습니다. 이처럼 회수해야 할 자금 규모가 크다 보니, 헐값에 내놓을 순 없는데요. 여기서 문제는 홈플러스의 실적이 인수된 이후 꾸준히 하락세를 보여 왔다는 점입니다. 한때 9조 원에 달하던 매출은 6조 원대로 떨어졌고, 설상가상으로 21년과 22년, 2년 연속으로 적자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통상적으로 거래 후 5년 이내 되팔아 수익을 거둬왔던 MBK파트너스마저도, 홈플러스만큼은 올해가 인수 9년 차인데도 불구하고, 뾰족한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알리바바의 자회사 알리익스프레스의 취약점이 물류센터 부족이다 보니, 홈플러스가 좋은 대안이지 않겠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투자금 회수가 절실한 MBK파트너스와 물류 인프라 확충을 원하는 알리바바가 좋은 거래를 할 수도 있다는 건데요. 하지만 대형마트라는 업태 자체가 물류 거점 활용도로써의 가치는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해선 안됩니다. 일단 당연히 대형마트는 배송 거점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니기에, 이를 물류 거점으로 활용하려면 추가 투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물론 아예 제로베이스에서 창고를 만드는 것보다는 전국적인 물류망을 갖추는 데는 효율적인 대안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알리바바는 굳이 물류센터 수십 개를 단기간 내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어차피 국내 택배 업체들을 이용하면, 소수의 거점 물류 센터만 있어도 주문 후 이틀 이내 배송 정도는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즉 쿠팡 수준의 전국 단위 익일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홈플러스를 무리해서 품을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사된다면?
그래서인지, 알리바바의 홈플러스 매입 검토에 관한 후속 기사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기사화된 이후 진척되거나 새롭게 알려진 사실이 없다는 뜻인데요. 매각 당사자인 양사 역시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소 뜬금없는 알리바바의 인수설은 도대체 왜 나오게 된 걸까요? 일단 앞서 언급한 홈플러스의 높은 가격을 감당할만한 기업은 몇 군데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알리바바이기에, 어떤 경로로든 매입 의사를 물어볼 수 있었을 거고요.
그렇다면 만약 이렇듯 낮은 확률을 뚫고, 알리바바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가능성도 존재할까요? 물류 거점 활용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신유통 기반의 사업 확장을 꾀한다고 할 때, 인수가 실현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어 보이긴 합니다.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은 2006년 개발자 행사에서, 전통적인 전자 상거래는 제거되고,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물류 유통 방식, 즉 신유통이 등장할 거라고 예견한 바 있는데요. 이후 알리바바는 인타임 백화점, RT마트 등의 오프라인 사업자들을 적극적으로 인수합니다. 그리고 지난 2016년에는 이러한 신유통을 상징하는, 신선식품 매장 허마셴셩을 선보이기도 했고요.
한때 신유통 기반 매장들이 오프라인 리테일의 미래로 각광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허마셴셩을 필두로 한, 신유통의 핵심은 오프라인 경험과 온라인의 편의성을 결합하는 거였습니다. 일례로 허마셴셩의 최대 강점은 신선한 수산물들을 직접 만져 보고 고를 수 있고, 주문한 상품을 ‘3km 이내 30분 배송’으로 집까지 고객에게 가져다준다는 거였는데요. 이는 한때 중국 내에서 확산되며, 쑤닝의 쑤프레시, 징둥닷컴의 7프레시 등 벤치마킹한 매장들이 대거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주요 대형마트들이 매장 리뉴얼을 할 때, 대형 수족관을 들이고, 활어 판매에 나선 것 역시 여기서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고요. 또한 재밌는 건 과거 홈플러스 역시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올라인’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홈플러스 역시 신유통 기반의 사업 전략들을 검토하고 일부는 실행에 옮긴 경험을 가진 만큼, 기존의 중국산 초저가 상품 판매만 생각한다면 굳이 인수할 필요가 없지만요. 전혀 다른 측면에선 오히려 매력적인 옵션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만약 알리바바가 이러한 신유통 기반의 비즈니스를 홈플러스를 통해 한국 시장에서 구현한다면, 허마셴셩의 확장성을 증명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더 강화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트렌드가 변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 들어 상황이 다시 급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불과 작년 말까지만 해도 알리바바는 허마셴셩의 기업 공개를 추진 중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대보다 기업 가치가 낮게 나오자, 이를 보류하기로 결정하였는데요. 심지어 올해 초에는 허마셴셩, RT마트, 인타임 백화점 등의 매각을 고려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했습니다. 즉 가장 핵심 사업인 이커머스에 집중하고, 비핵심 사업인 오프라인에 대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는 건데요. 만약 이러한 사업 조정이 이뤄진다면, 오프라인 리테일인 홈플러스를 인수할 가능성은 더욱더 낮아질 겁니다.
그리고 이는 단지 알리바바의 홈플러스 인수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걸 넘어서, 한때 유통의 미래로 여겨졌던 신유통 트렌드마저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전에 수명이 다했다는 걸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매각설이 도는 것과 별개로 허마셴셩은 과거의 사업 모델에서 탈피하여, PB 비중을 극단적으로 높이는 등 하드디스카운트 스토어로 피보팅을 진행 중이라 하는데요. 매장 내 SKU 수를 5,00개 이상에서 2,000개 수준으로 줄이면서 동시에 이들을 PB로 채우고 있습니다. 즉 매장 경험으로 무언가 새로운 수요를 만들겠다는 기존의 전략은 포기하고요. 제조까지 직접 관여하여 확보한 독점 상품을 통해 이커머스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선회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는 이미 해외에선 코스트코, 알디, 그리고 국내에선 다이소등의 성공으로 증명된 전략이기도 합니다.
고객은 보통, ‘내가 원하는 상품(구색)’을 ‘가장 저렴하면서도(가격)’으로 ‘편리하게(편의성)’ 살 수 있는 곳을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신유통이 주창하던 옴니 경험은 분명 매력적이었지만, 이것만으로는 3가지 기본 요소에서 모두 압도적인 우위를 지닌 이커머스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조와 유통을 일원화하고 통제하면서, 경쟁의 방식을 아예 바꾼 곳 만이 현재 살아남고 있는 상황이고요.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이마트가 하드디스카운트 스토어를 준비하는 등 혁신의 방향이 다시금 바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트렌드는 정말 위기에 처한 오프라인 유통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홈플러스는 과연 새로운 주인을 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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