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가 뭔가 어색합니다만
새벽배송 전문기업 오아시스가 11번가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이를 들은 업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인수 주체가 뒤바뀐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는데요. 한때 단일 플랫폼 기준으로는 총 거래액 규모 1위까지 기록했던 11번가를 거래액 1조 원도 안 되는 오아시스가 품는다는 소식은 그만큼 놀라웠습니다.
오아시스가 11번가 인수를 결정한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11번가의 몸값이 5,000억 원 이하로 많이 떨어졌습니다. 2018년 투자 유치 당시 11번가의 기업 가치가 2조 7,000억 원에 달했고, 작년만 해도 1조 원 이상이 거론되었던 걸 감안하면 정말 싼 가격이고요. 그나마도 현금이 아니라 지분 교환 방식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둘째, 11번가를 품게 되면, 오아시스는 가장 큰 약점이라 지적되던 거래액 규모를 단숨에 키울 수 있습니다. 유통 업계에 따르면, 과거 대비 많이 줄었으나 11번가의 전년도 거래액은 5조 4,000억 원에 달한다고 하고, 앱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도 700만 명 이상이라 합니다. 인수만 성사되면 오아시스는 새벽배송 경쟁자 컬리를 추월하는 건 물론, 쿠팡과 네이버에 이은 3위 자리까지 넘볼 위치에 올라설 수 있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11번가 손익을 빠르게 개선하여 흑자로 돌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오아시스 내부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기본적으로 11번가의 오픈마켓 부문은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 연속으로 흑자를 달성했다고 하고요. 적자의 주된 원인이었던 직매입 사업도 12년 연속 흑자를 기록한 오아시스의 노하우를 통해 충분히 반등시킬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솔직히 기대보단 우려가 큽니다
여전히 업계 내 다수의 의견은 오아시스가 11번가 인수를 시도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모회사 지어소프트 대표인 김영준 의장의 강력한 의지를 제외하면 11번가를 인수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실제로 오아시스 투자사 상당수도 반대하는 상황이라 하고요.
이처럼 반대의 목소리가 큰 건, 오아시스가 11번가 인수를 통해 시너지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선 11번가의 트래픽이 오아시스 장보기 서비스 고객 성장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을 겁니다. 이는 네이버 장보기라는 선례가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많은 유통업체들이 온라인 신규 고객 확보를 위해 네이버와 손을 잡았지만, 아직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곳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11번가에 오아시스 직매입 상품이 판매된다고 하더라도 단기간 내 무언가 성과를 보긴 어려울 거고요.
같은 이유로 오아시스가 11번가의 하락세를 반전시키기도 어렵습니다. 오아시스가 가진 강점들은 장보기라는 버티컬 영역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11번가 고객의 일부를 오아시스 서비스로 데려올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오픈마켓 거래액이 다시 반등하진 않을 겁니다. 최전성기 대비 반토막 난 11번가의 총거래액을 연착륙시키는 것이 가장 필요한데, 오아시스의 거래액 규모로 이를 수행하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오아시스 실적에서 거래액 성장에 따라 주요 비용 항목들이 개선되는 모습을 찾아보긴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오아시스의 현재 사업구조로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될 필요가 크지 않다는 점입니다. 오아시스의 성장성이 그간 약점으로 지적받아 왔던 건, 물론 절대적인 볼륨 자체가 작다는 점도 있었지만요. 무엇보다 추가적인 거래액 성장으로 수익성이 좋아질 여지가 적었다는 것이 더욱 치명적이었습니다. 물론 오아시스의 거래액이 커지면 커질수록 매입 단가는 낮출 수 있겠지만, 비용 측면에선 이야기가 다릅니다. 우선 오아시스 물류센터의 자동화율이 낮아서, 입출고 비용은 개선되기 어렵고요. 또한 배송 물량이 늘어나서 배송 집적도가 올라가는 것 역시, 사실상 거의 모든 물량을 외주 계약을 통해 처리하는 오아시스에게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물류센터 물량을 늘려서, 일부 고정비를 낮추는 효과 정도만 기대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정말 신의 한 수가 되려면요
그렇다면 11번가 인수가 성사되고 성공적으로 평가받으려면 어떤 점들이 보완되어야 할까요? 일단 오아시스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면, 손익이 개선될 수 있는 장치들을 빠르게 마련해야 합니다. 이는 물류센터의 자동화 설비 구축일수도 있고, 혹은 배송 기사 직접 고용이 될 수도 있는데요. 중장기적으로 거래액 규모 성장에 따라, 비용이 줄어드는 구조를 만들어야 11번가 인수를 통한 스케일업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또한 동시에 SK그룹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어,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확보해야 합니다. 언론에서 거론되는 것처럼 지분 교환 방식으로 딜이 성사된다면, SK 입장에서도 오아시스의 성공적인 상장이 중요해집니다. 그래야 실제로 지분이 가치를 가지게 될 테니까요. 따라서 오아시스 입장에선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 현재 11번가는 SK의 계열사 중 하나이지만, 그 후광을 충분히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오아시스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SK의 자산을 최대한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고, 인수 협상 과정부터 적극적으로 이를 주지시켜야, 성공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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